아마도 국민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국민학교 1학년 때의 기억들이란 그 양도 극히 적고, 그마저도 그리 생생하진 않기 때문이다. 여하간 어느날의 하교길에, 주공 4단지에서 3단지로 건너오는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보도블럭 위에 있던 참새를 한 마리 줍게 되었다. 원래 참새란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파라락 무리지어 날아가버리는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새는 날지 못하는 상태로 이리저리 발로 걷기만 했기에 내가 다가가 손에 쥘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혹시 비행 훈련중이었을까, 혹은 상태가 안좋았던 것이었을까 추측이라도 해보는 것이지만 - 그 당시엔 그 어린 마음에 - 내가 이렇게 작고 예쁜 새를 직접 손에 넣어 만질 수 있게 되었다는, 무진장 신나는 마음 뿐이었다.
새를 손에 꼭 쥐고 집에 도착하였으나 엄마는 집에 없었고, 나도 집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반 계단 아래 창가에 서서 창 밖으로 언제 엄마가 보이기 시작할까 내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휴대폰도 없고 번호키도 없던 시기였기에 - 동네에 잠시 장 보러 나갔거나 어느 아줌마네 가서 수다를 떨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엄마를 그냥 이렇게 기다리는 게 싫었다면 그대로 친구집 근처로 가서 'xx야~ 놀자~'라고 외쳐보거나 혹은 근처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손에는 예쁜 새가 있었고, 나는 이 새가 날아가버리지 않게 꼭 붙잡아 집에 데리고 들어가 아주 예뻐해주면서 잘 키워볼 생각이었기에 평소와는 다르게 친구집이나 놀이터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내 손에서 가열차게 울고 있는 이 새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미있었고, 그 묵직하고 따스한 손아귀 감각도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이미 이 새는 마음속으로 내 생에 첫 애완동물로 등극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엄마가 오는 시간이 좀 늦었다. 나는 혹시라도 이 소중한 새가 날아가버릴까 두려워 의식적으로 손아귀에 힘을 빼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난 시점부터, 새의 울음 소리가 갈수록 작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졸린 것처럼 눈을 오래 감았다가 뜨기도 했다. 새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졌고, 빨리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 내가 이 새를 잡았노라 자랑도 하면서, 그리고 새집을 하나 장만해 달라고 부탁도 하면서 - 새가 혹시 아프진 않은지 봐달라고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도착하기 전에 새는 완전히 눈을 감아버린 후 더이상 눈을 뜨지도, 울지도 않기 시작했다. 몸에 완전히 힘이 다 빠져나간 새를 손아귀에 쥔 느낌은, 묵직하고 따스했던 그동안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새를 쥐었던 손이 좀 축축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혹시 새가 완전히 잠든 건가 싶기도 해서 - 다시 날아가버릴까 하는 두려움을 잠시 비켜두고 천천히 새를 쥐었던 손을 펴보니 - 손바닥 안에는 새가 싼 묽은 똥 같은 것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새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것 - 그리고 정말로 죽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건드리든 더이상 눈을 뜨지도 않았고, 더이상 울지도 않았다. 그리고 차가웠다. 이후에 벌어진 상황들이나 감정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던 동의 바로 뒷편 녹지에 엄마와 함께 내려가 그 새를 땅에 묻어준 것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몇 년 전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서 읽었던 글귀인지는 대강 기억이 나는데, 아마 최영배 비오 신부님이 쓰신 단상집의 한 꼭지 - 지금 검색해 보니 누군가 블로그에 올려주신 그 글귀들을 다시 확인해볼 수 있다. "우리는 그림을 감상할 때 너무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뒤로 물러서지도 않나이다. 항상 적절한 거리를 두고 감상하면 되나이다."로 시작하는 대목들 -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들을 읽으며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어떠한 관계를 좀 더 깊게 맺게 될 때면 적정한 거리는 얼마쯤일까를 떠올려보곤 한다. 계산적 차원이 아닌, 배려의 차원에서 말이다. 최영배 비오 신부님의 글귀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던 그 순간에 - 불현듯 과거의 그 새, 내 손아귀가 꽉 쥐고 있었던 그 새가 떠올랐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