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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2. 01:03 단상

 삼일절이다. 지금의 나에게 애국심이란 구운 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얇고 쉽게 바스라지는 - 사실 애국심이 당장 돈벌어다 주는 것도 아닌데다 글로벌 시대에 꼭 국적이란 것에 과하게 목맬 필요가 있나 싶을 때도 많다. 사회 곳곳의 부패와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애국심은 커녕 우리나라가 밉거나 후져 보일 때가 많으며 오히려 옆나라 일본의 상대적 우위들을 목격하며 부러움을 느낄 때도 많다. 결국 애증이자 양가감정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일까.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일상적으로 먹는 구운 김이란 특유의 고소함으로 입맛을 한껏 끌어올려주는 불맛 - 일본인들마저도 '칸코쿠노기무'라며 추켜세워주는 - 얇고 쉽게 바스라질지언정 이미 깊게 새겨진 고유한 특징.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도 언제든 자연스레 집어먹게 되는 식량인 것.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따로 정해진 날은 없겠지만 - 삼일절은 잊지 말고 꼭 과거와 대화를 나눠보라며 조상님들께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특별한 날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 만큼이나 증오를 가진 내게 - 진정 뭐가 그리 불만이냐, 호시탐탐 너를 짓밟으려는 총칼의 군인들이 너를 둘러싸고 노려보고 있기라도 하느냐, 왜 쉽게 버리려 하느냐 묻고 계신 것만 같은 날이다. 목숨을 걸고라도 뛰쳐나와 자주국가, 독립국가, 민주국가를 선언해야만 했던 - 그 강렬한 공분이 폭넓게 축적될 수밖에 없었던 매우 엄한 시대상을 현재의 우리가 당장 피부에 와닿게 가늠해 보긴 힘들지만, 성명서를 든 팔이 한쪽 잘리면 다른쪽 팔로 또 그것을 들 정도로 강렬했던 비폭력 저항이었으니 그 숭고한 정신을 우러러 길이 보전하는 것만큼은 버릴 수 없는 책무로 와닿는다. 울부짖던 조상님들께서 꼭 되찾고 싶었던 것, 꼭 가져보고 싶었던 것을 - 우리가 진정성 있게 가꾸고 있는지, 잘 지켜나가고 있는지 - 그 중요성을 상기하기 위해.

 반면에 가해자였던 일본은 과거를 잊고 싶어하며 부정하고 싶어한다. 냉정히 보자면 우리는 해방 이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지나칠 정도로 관성적으로 또 극과극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또래 세대는 당시를 직접 겪지는 않았던 세대이며, 또 현실적으로도 - 일본의 완전한 사과와 영원한 반성을 이끌어내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최근 몇십 년간 대한민국 다방면의 놀라운 성장은 우리에게 내적인 자신감까지 부여해주었고 덕분에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라이벌 감정은 의외로 큰 폭으로 약화된 것을 느낀다. 여전히 역사 문제나 영토 문제가 불거지면 순간 화가 나기도 하지만 - 역사적으로 오래 맞댄 나라 중에 서로 때리고 맞아본 적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일본이 사과와 반성을 하던 말던 그 이슈와 감정은 잠깐, 우리에게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이슈들이 산적해있다. 일본이 영토로 시비를 걸던 말던 그 이슈와 감정은 잠깐, 그저 잃지만 않으면 될 뿐이다. 더 큰 긴장들이 도처에 있다.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 특정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의 역사와 타국의 상황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의외로 강대국 국민들만이 누릴 수 있는 정신적 특권이자 안일함이기도 하다. 우리처럼 온국민이 바짝 긴장해 외부 상황을 살피고 치열한 경쟁으로 살아남아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만큼 일본은 강하고, 또 안일한 것일 뿐이다. 과거와 관련된 배상 문제나 국제정치적 함의는 좀 더 풀어야 할 숙제기도 하지만 앞으로 한일간의 보다 발전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요인이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일본이 아닌 우리다. 조상님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켜진 우리의 자주국가, 독립국가, 민주국가를 이어나가기 위한 확장적 안보관이다. 특정 국가와의 과거관계, 특히 관성적으로 이어지던 반목 카드 한두 개에 너무 민감하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 당연히 실제 벌어질 일은 아니겠으나 - 행여 우리가 제국주의, 군국주의 대국으로서 일본을 점령하게 된다면 - 우리가 당했던 것과 같은 인간 이하의 짓들을 똑같이 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인간이란, 전쟁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다시 되돌아가 - 삼일절이 발생된 원인의 원인들을 따라가보게 된다. 수많은 인민들이 고통받아도 오직 내것만 잘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부패한 고위 관료들의 숫자가 많았었다. 나랏일과 자기 곳간 채우는 일의 분간 없이 오만방자하게 나라를 팔아먹고 다녔던 인간들이 절대권력에 기생하고 있었다. 우매한 백성부터 잘난 고관대작까지 - 모두가 가까운 과거의 의리와 원한에 얽혀 미래에 다가올 힘의 이동에 눈뜨지 못했었다. 경멸스러운 근시안과 이기심으로 - 오직 귀한 자기 자식들과 이들이 누릴 몇 십년의 영광을 위하며 - 나라의 100년, 200년을 망치는 것에 개의치 않았었다. 과거에 천착된 경직된 사고방식은 빨리 버려야 한다. 계속해서 삼일절을 일본과 얽힌 원한관계로만 읽어내기에는 우리나라가 현재 안고 있는 사회 곳곳의 부패와 정치적/적대적 공생관계가 심각하다. 삼일절의 강렬했던 비폭력 저항을 기리지만, 그러한 상황을 다시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의 환기가 필요할 때다. 이제 내게는 애국심과 반일감정 모두 구운 김 같이 얇고 쉽게 바스라지는 것이 되었다. 여전히 한국인으로서 멀리 할 수 없는 식량이지만 - 더욱 중요한 것은 계속 먹던 것을 먹을 뿐인, 별 의미없는 의미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또 누구와 협력할 것인가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일수록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다고 한다. 좋은 시기에 좋은 흐름이 강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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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