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께 인사 드리고 퇴사하려고 10시 반 쯤 도착하도록 시간 맞춰서 출발. 대표님은 아직 안 오신 상태였고, 소회의실에서 Pi 님과 잠시 대화. 지난번 대표님의 조언 자체가 - 사람 때문에 힘든 거면 못 견딘다, 관두는 게 맞다고 하셨었는데 - 한 번 더 확인해 보니 역시 사람 문제가 맞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Da 님과 모바일로 사직서 작성해 보려다가 잘 안 돼서 그냥 대회의실 노트북으로 제출하고 최대한 조용히 사무실에서 나왔다. Da 님과는 카톡으로 가볍게 인사 나누었고, Mt 님께는 따로 인사 말씀 보냈다. Pi 님이 Po 님에게 인사 하고 가라고 하셨는데, 일부러 인사 안 하고 나왔다. 그 사람이 언제 나를 관리하긴 했나? 아니면 서로 정이 들기라도 했나? 아니면 존경받을 만한 업무 처리를 보여주었던가? 내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일종의 질책이라면 질책이지. 온갖 텃세들 최대한 방조하고 체면 지키다가, 이제와서 내가 대표님이랑 면담 조금 했다고 자기는 미처 몰랐던 척? 프로들끼리 왜 이러실까. 빌딩을 나와 오랜만에 근처 산에 올라가며 부모님께 어버이날 인사 전화 드렸고, 꼭대기에 서서 한강을 내려다 보니 - 지난 금요일에 봤던 것과는 다르게 자연스레 강에서 바다로 흐르는 방향.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
그냥 벌어질 일들이 벌어진 거고, 내가 굳이 남 생각하면서 시간 낭비하는 타입도 아니고. 실질적으로 6개월 정도 버티면서 더 발전한 부분들도 많지 않나. 그냥 앞으로 하시는 일들 잘 되시라 빌고 헤어지면 그만. 하지만 철저히 나를 위해서 - 그간 걸어온 지난 6개월 가량을 되짚어볼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니 - 한 번 볼까.
입사하기 전에 내가 받았던 질문 - 윗사람이 나보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어쩔 거냐? 당연히 상관 없다고 답했었다. 윗사람이라고 무조건 내가 아는 거 다 알고 더 똑똑해야 된다는 법 있나? 똑똑하고 말고의 기준은 뭔데? 능력을 떠나서 직급 더 높고 돈 더 많이 받으면 어때? 최대한 안정적으로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직장 상사인데. 하지만 내가 받았던 질문은 진솔한 질문이 아니었다. 윗사람들 인성이 바닥 수준이면 어쩔 거냐? - 가 질문이었어야 했다. 대표님 보시기엔 그냥 대한민국 평균적인 아줌마, 아저씨 같다고? 한 사람의 인격 평가 방식 중에 가장 빠르고 효과가 좋은 게 바로 - 그 아랫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는 거라는 걸 -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실 리는 없고. 그냥 내가 나이도 있고 지위도 있어서 그런가 애들이 다 잘하는 걸로 보이는데, 니가 말단이니까 그냥 버티면 안 되냐 식의 꼰대 마인드지. 그리고 과연 종이 쪼가리에 1년에 한 번 그 사람의 신뢰나 배려를 주변 사람들이 점수로 평가한다고 그게 공정한 평가가 될까? 어차피 공개되는 건데 - 서로 싫은 눈치 감수하면서까지 이 사람 마음에 안 든다고 신뢰나 배려 항목에 점수 떨궈주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냥 노예들끼리 평가 붙여놓으면 알아서 평균치 나오고 - 연봉도 알아서 비슷해진다는 심산은 아니길 바랄 뿐. 웬만한 대기업들 입사 전 인적성 시험이 왜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회사가 크면 별의별 인간들이 다 들어오기 때문에 인적성 시험으로 또라이를 100% 걸러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5명 들어올 거 2명으로 걸러내는 수는 있겠다고. 글러먹은 인성이 1초도 감춰지지 않고 말뽄새로 순식간에 삐져나오는 저 2명한테 제한 시간 안에 인적성 몇 백 문제 풀어보라고 시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 진심으로 궁금해지거든.
입사하자마자 내가 본 것 - 지폐 4종 중에 2종을 계속 뱉어내는 버그. 대체 언제부터 이래왔는지도 알 수가 없고. 이 사업이 왜 곤두박질 치냐고? 강력한 경쟁자들이 나타나서? 아니지. 그만큼 만만하니까 두드려 맞아온 거지 - 시장을 왕창 선점해두고도 몰락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런쳐 개발? 왜 작년부터 개발한다고 말만 무성한 상태로 여태까지 시간 질질 끌었을까? 난 알지. 프로그래머들은 딱 보면 딱 알지. MAC주소 두 개 있는 보드도 이제야 깨닫고서 - 그동안 애꿎은 Is 님이랑 총판한테 얼마나 지랄지랄을 해왔을까. 기계에 돈 들여서 RF카드 리더기 붙여놨는데, 이건 왜 사용하지 않을까? 난 코드 보고 딱 알았지. 누가 코드 짰는지도 딱 알고. 이따위로 코드 짜놓고 RF카드 리더기로 결제가 되길 바래? 이걸로 결제 됐으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고 - 알아보니까 진짜로 결제된 적 없다고 하네. 성과목표 설정하던 시기에 짐짓 모른 척 이거 왜 안 하시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이유는 없고 정색하면서 이건 무조건 안 할 거라고. 심리가 이해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래도 회사를 위해서라면 돌아가게 만드는 게 - 성과도 되고 좋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웃기는 일 참 많았지. 자기는 패치할 때 XX 가라로 쳐해놓고, 나한테는 괜히 군기 잡고 싶어서 테스트 문서 운운하는데 - 텃세 역겨워서 모른척 해줬더니 의기양양하기가 하늘을 찌르더라는. 테스트 시나리오 설정은 첫째로 해당 프로젝트 구조에 밝은 선임자 혹은 전담 인력이 뼈대를 잡고, 둘째로 팀의 아이디어를 모아서, 셋째로 실행하는 게 기본입니다. 당신 처럼 하급자한테 던져놓고 완장 차고 컨펌 놀이하면 그게 뭐에요? 기본도 모르는 멍청이에요. 런쳐도 돌고 돌아서 웹 개발로 간다고 이야기 나왔는데, 어이없게 웹 SI 출신 - 그것도 경력이 뭐? 8년? 10년? 15년? 두 명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 아 회사 돈 벌어야지 - 빨리 개발해서 런칭하면 될 걸 가지고(진짜로 복잡도 높거나 볼륨이 크면 말을 안 한다) - 대표님이 회사 홈페이지 이야기 꺼내는 것도 그냥 간단하게 리뉴얼 하자는 건데 뭔놈의 이유가 많고. 이사들한텐 비용 가지고 겁이나 주고. 결국에는 자기들 아는 업체 통해서 진행한다고 하는데 어디 커미션이나 안 받아 처먹는지 모르겠고. 웹 SI 출신으로 경력은 매우 많지만 직접 개발할 능력은 없습니다 - 라고 시원하게 말을 못 해. 그놈의 보안 핑계대고 무능 감추는 만큼 보안에 대해 다들 기반지식은 갖고들 계신가? 간단한 타이머도 컨트롤 못하고 전날 오후내내 둘이서 어버버하던 거 다음날 아침에 나한테 던지길래 오전에 바로 고쳐줬더니 - 그냥 가만히라도 있던가. 한 일주일인가 지나서 나보고 말로 명확히 설명 못 하면 제대로 이해하고 짠 게 아니라고 정치질 오지게 하고(코드 보면서 얘기하자니까 그건 죽어도 싫다던데). 아저씨야, 일단 계급장 바꿔 달고 - 니가 짠 코드 중에 내가 딱 하나 짚어볼게 - 나를 이해시킬 수 있을 때까지 똑바로 설명해 볼래? 니가 이걸 진짜로 이해하고 짠 건지 살펴볼까? 미쳐가지고 아무데도 쓰이지도 않는 Endpoint 레거시 흔적은 왜 자꾸 위에다 달아놓고, 빈껍데기 인터페이스 Dispose는 좀 구현을 하고 부르던가 - 왜 자꾸 캐스팅까지 해서 밑에다 달아놓고. 쓸모없는 코드 지워놨더니 그새 또 그게 불안했는지 다시 추가해놓네. DB? 내가 얼마 전에도 썼던 거 같은데 - 어디 항공사나 중대형 쇼핑몰에서 3년차 정도만 데려와도 이사람들 죄다 개박살 날 것 같은데. 인수인계? 1년 넘게 해온 아줌마도 맨날 다시 물어보고 툭하면 어버버 틀리고 있는데 - 누가 누구한테 뭘 인수인계하겠다고? 끝까지 나한테 실제 서버 접근 권한 안 준 이유는 뭘까? 난 알지. 왜 그렇게 남아있는 셋이 똘똘 뭉쳐서 퇴사한 사람들 욕을 할까? 난 알지. 회사 대표는 물론이고 이사들까지 지금 한줌도 안 되는 개발팀한테 가스라이팅 오지게 당하고 있는 중이라, 뭐 나도 당했는데 - 기술적으로 무지한 대표가 어찌 안 당할까. 더해서 지난번에 패치할 때 내가 실수했던 건 그냥 다시 배포하면 되는 거였고, 알고보니까 야근까지 해야 했던 이유 - 아줌마가 실토했잖아. 퍼지 경로 틀려서 그랬던 거라고. 상황이 이런데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대표한테 제가 잘못한 게 있어서 야근합니다 이딴 소리나 내뱉었을까 - 팀 리더라는 인간은 파일 압축 누가 했냐고 - 그와중에 정치질 할 잔대가리나 굴리고 있고. 상상 이상으로 개발팀 수질이 많이 낮아서, 입사이후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이슈들? 차마 더러워서 더는 꺼내기가 좀. 내가 아무리 대표랑 일대일 면담을 해도, 공적으로 이야기 꺼내기 참 애매하고 더럽고 치사한 일들이 많이 있었지 - 직속 관리자가 썩었으니 딱히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Mt 님이 그나마 낌새를 조금이라도 알고 같이 산책해주신 게 아닌가 싶어서 감사할 따름이지. Pi 님도 그냥 Po 님이랑 친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기본적으로 눈치가 더럽게 없는 건지.
인력 문제. 내가 작년 초 M사에서 학을 떼고 도망쳐 나왔던 이유가 바로 사기꾼 PD 때문이었는데. 딱 지보다 못한 놈, 아니면 자기랑 친한 놈만 데려와서 일하려고 - 제가 이거 해봐서 압니다 운운하면서 노인네 등쳐먹고. 그놈의 체면은 또 어찌나 챙기던지. 경영진으로서 걸러내야 할 관리자 타입이 뭔지가 딱 나오는데, 대표님이 인맥으로 사람 뽑는 게 가장 좋더라는 자기 철학을 꺼냈을 때 속으로 많이 놀랐었지. 인맥으로 네이버 출신이니 어디 출신이니 개발자 데려왔다가 정치팀 되고 서비스 개박살난 경우 못 보셨나. 기본적으로 널리 능력자를 구해야지 - 사람 구하기 힘들면 최소한 좋은 사람 구하려고 노력하는 주변 스타트업들 공고를 살펴보기라도 하시던가. 진짜 눈물겹게 노력하는 사람들 많은데. 지금 팀 리더인 Po? 대표가 회사 인수할 때 있던 멤버인데 여태까지 버티면서 살아남은 케이스고. 이 아줌마? 지금 Po가 데려와서 꽂았지. 새로온 Ac도 마찬가지로 Po가 데려와서 꽂았지. Bk 님이 자기 아는 개발자 있는데 이력서라도 좀 보시겠느냐고 Po한테 좋게좋게 이야기 꺼내고 친해지려 할 땐 대꾸도 안 하고 모니터만 쳐다보면서 - 거 표정 꼬롬하기가 레이저 발사할 것 같더니. 우리 아는 사람 있다고 Ac 데려오면서 회사에서 추천비 나온 건 누가 드셨나 몰라. 분명히 Po 아니면 Zo일텐데. 내가 Ac 님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 Ac 님 분명히 자기 분야에서 경력 잘 쌓고 능력있으신 분이겠지만 - 새로 하려는 사업이 어느 방향인지가 뻔한데. 최소한 적지 않은 돈 주고 데려올 거면 딥링크 직접 구현해본 경험에 딥러닝까지 해본 사람도 데려올 수 있는데. 이 사람이 지금 이렇게 입사해서 Ph 한테 앱이랑 연결 되냐 안 되냐 물어보고 있으면, 참. 가뜩이나 기술 환경 변화하면서 관계형 DB 자체의 사용 범위도 좁아지기 시작하는데, Po가 DB 잘 아니까 니가 계속 DB 하라고 맡겨놓고 기본 설계 시작할 건가?
대충 키워드로 묶으면 인성, 가스라이팅, 인력인가 - 인성과 인력은 하나의 카테고리인 것 같은데. 어쨌거나 큰 회사 다니면서 큰 회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던 분이 은퇴하듯 나와서 창업한 소기업 여기 말고도 세상에 참 많다고. 적당히 귀찮은 일들은 밑에 관리자들이 해주길 바라고, 은근히 대접 받고 싶어하고, 정작 기술적인 부분들은 하나도 모르고. 이런 상태로 어디어디 유명 IT 스타트업들 상장한 것처럼 성공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고 - 최소한 인복은 어느정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물론 성공하지 마시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난 신사업 TF팀 좋게 보기 때문에 - 만약 성공한다면 그 팀이 똘똘 뭉쳐서 이뤄낸 쾌거이길 바라지. 어설프게 썩어빠진 개발팀 엮여서 얼레벌레 했는데도 대성공해버리면 - 난 도무지 세상 헷갈려서 -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게 돼버릴지도. 주르르 써놓고 보니 무슨 답답함/울분을 토해낸 것 같기도 한데, 지나온 길을 토대로 앞으로의 방향은 대충 결정할 수 있게 됐네. 젊은 경영진이 치열하게 좋은 조직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는 회사, 그래서 수질이 좋은 회사. 돈이니 기술적 성숙도니 다 필요 없다. 나를 안 받아주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최소한 이 조건은 좀 맞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2대8의 법칙이라 계속 좋은 애들 갖다 심으면 비율이 변하면서 조금씩 조직이 나아지는데 뭐 그래도 하위 퍼센티지의 돌아이들은 어쩔 수 없더라는 - 큰 회사 출신 대표님의 거시적인 통찰력 - 귀에 쏙쏙 박힐 때는 정말 그런가보다 고개 끄덕였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 이게 당최 10명 남짓한 스타트업에 맞는 사고방식인가 잘 모르겠더라. 내가 상위 퍼센티지인지 하위 퍼센티지인지 잘은 모르겠는데 - 정말 어쩔 수 없이 - 계속 짧은 기간 회사 옮겨다니면 커리어에 안 좋을까봐 혼신의 힘을 다해 여기서 6개월 가까이 버텼다고. 앞으로 자소서 장단점 항목에 당당하게 내 장점은 인내심이라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웬만하면 서로 헤어지는 마당에, 좋게 마무리 해야 하지 않을까 - 이런 식의 기록을 남기고 싶진 않았는데. 웬만하면, 웬만했으면 말이지. 좆만한 씹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