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Po 님이 먼저 오셔서 사무실 문을 열고 계셨다. 덕분에 출근 순서에는 어떠한 패턴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물론 순서에 따른 특이할 만한 이득이나 손실도 없다). 자녀를 통학시키고 온다거나 나이가 많아 잠이 줄었다거나 무슨 집이 가깝다거나 - 이런 것들 다 필요 없이 여기는 그냥 혼돈. 예전 직장들에는 무조건 1등인 분과 2~3등을 다투는 고정 멤버들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뭔가 패턴을 찾아보려 했던 것 같다. 사무실에 모든 임직원이 다 들어차기 전에 - 별다른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 적은 인원끼리 잠시나마 듬성듬성 공기를 나눠 마시는, 나름의 조용한 아침 분위기가 있기도 하다.
오전에 Roma 한 잔 마시고 업무 시작 전에 당구 연습 조금. Zo 님에게 녹즙을 가져다 주는 녹즙 아주머니가 나와 Ph 님에게 샘플을 하나씩 주셔서 맛본 일도 있었다(그냥 딱 녹즙이었다). 중간중간 눈 쉴 때 써보라고 와이프가 챙겨준, 현미로 된 눈 찜질팩은 계속 사용하기 힘들 것 같아 다시 가방에 챙겨두었다. 현미가 은근히 무거워서 일시적이나마 각막에 변형이 오는 관계로, 몇 분 정도 글씨를 잘 못 보게 되기 때문.
vim의 키 셋팅은 다시 복습해 보며 고민했다. 과연 쓸만할까. 물론 익숙해질 만큼 써본 것은 아니나, 리눅스 계열 OS에서 직접 커맨드 입력으로 컴파일하거나 링킹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하지 않는 이상에는 그리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리란 결론. 어제 구상했던, 새로운 레이아웃의 키보드가 있으면 오히려 여러 종류의 IDE 사용시에도 두루두루 효율적일 수 있을 것 같고 말이다.
오늘은 넷빈즈와 이클립스를 모두 설치한 뒤 어떤 게 편한가 비교해 봤다. 결론은 이클립스 승리. 넷빈즈는 벌써 폰트나 글자 크기 같은 기본 설정에서부터 글러먹었다(인텔리J는 살 돈이 없다 - 회사에 사달라고 하기엔 자바가 주업무도 아니고 - 지금 또 수습사원이라). 둘 모두 기본이 K&R인 점은 고통스러웠다. K&R은 에릭 올먼 진인께서 나타나시기 이전 - 사파들이 득세하던 시기에 아주 잠깐(!) 유행했던 스타일이 아닌가 - 이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홍익인간과 일맥상통인 Allman style(The one true brace style)로 재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자바 공부하기. C/C++에서 이미 자바가 탄생돼있는데 C#은 또 뭐하러 만들었냐는 비판들은 - 물론 세부 스펙이나 기능에선 분명한 차이가 나지만 - 또 나름 일리있는 비판들인 것 같다(C# 이미 있는데 스위프트는 또 왜 만들었냐). 둘은 지나칠 정도로 유사해서 오히려 C#으로 입문한 사람이라면 C/C++이 어렵지 자바는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는 게임업계를 바라보고 시작한 입장이라 C/C++로 입문했지만 - 게임업계 제외하고 C/C++을 사용하는 곳들을 찾아보면 대부분이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레거시 프로젝트들이라 갈수록 범용성이 떨어진다(OpenCV 같은 핵심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곳들도 없고).
점심은 연회장에 가보겠다고 말하고 혼자 나와 지하 연회장에 차려진 임시 구내식당(평소엔 뷔페) 맛보기. 닭볶음탕과 미역국이 메인이었는데, 앞선 사람들이 닭 모가지만 빼고 다 가져가서 그런가 닭 모가지 뿐이었다. 덕분에 닭 모가지만 쪽쪽 빨았네. 우연히 Pi 님과 Mt 님도 연회장으로 오셔서 합석했다. 전체적으로는 A사의 구내식당 느낌이 느껴졌다. 그냥 대량으로 만들어 내놓는 짬밥을 싸게 사먹는 느낌. 반면에 G사 구내식당은 조금이나마 더 조리에 공을 들여서 구내식당 치고는 꽤나 정갈하게 내놓는 편이었고(대신 메인 메뉴는 마음대로 퍼갈 수 없었다). 동네가 동네라 그런가 구로 같이 빌딩 밀집촌인 곳에 비해 가격은 천 원 정도 더 비쌌다(5500원). 식후 철봉 조금 하다가 복귀. 오후엔 카누 다크로스트 한 잔 마셨다.
Zo 님은 인사평가서 작성 때문에 조금 스트레스 받으시는 듯했다. 나도 수습 기간 끝날 때 쓰게 될 거라는데 -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수습 평가 안 좋아서 짤리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만약 짤렸다면 실력 미달이니 짤렸겠지 - 회사 입장에서도 수습 제도 정도의 안전장치는 있어야지 않겠나. 솔직히 회사측에선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인사 평가에 큰 관심 없다. 약 2년 뒤에, 내가 프로그래머로서 5년 경력을 채웠을 때 -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에 집중하고 싶은 - 뭔가 여기에 큰 기대감과 환상을 가지게 된달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 것을 한곳에 모았을 때 - 거기에 어떠한 공통점들이 도출되고 있다면 그것은 물론 객관적 결론이 될 수 있겠지만 - 결국엔 타자의 인식 속 hologramatic aspects가 아닌가? 나의 present는 hologramatic하지 않다.
11월 20일에 첫 출근이었고, 오늘이 12월 20일이었네. 어느새 Bond라는 닉네임에 익숙해진 모습. 안마의자 사용법도 능숙해졌고. 청소 노동자가 다녀간다고는 하지만 군데군데 잔손길이 필요한 부분들도 눈에 보이고(거기에 손을 뻗어야지). 누가누가 뒷담화꾼인지도 각이 나오고(하하). 당구채 아예 안 잡는 사람들이 누군지도 알겠고. 인기있는 캡슐 커피가 뭔지도. 그래도 아직 멀었다. 갈 길이 멀다. 이제 겨우 1달. 특히 당구는 치면 칠수록 더 모르겠다. 아무래도 스트로크랑 기본 두께까 어설프면 백날 쳐봤자 실력 안 오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