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 꽃샘추위 유예기간 |
오전 섭취 | 유자차 한 잔 |
오전 특이사항 | - |
점심 | 다른 빌딩 구내식당 / 혼자 |
점심 특이사항 | 식후 공원 입구에서 철봉 및 일광욕 |
오후 섭취 | Volluto 한 잔 |
오후 특이사항 | 2시 반 쯤 창고에서 30분 휴식 |
퇴근 | 정시퇴근 |
하루종일 성과목표서 작성 진행. Is 님께 예상 매출 문의해서 KPI도 좀 채워넣고 - Is 님은 회사에 나름 오래 계셨던 분이라 이런저런 프로젝트 진행 히스토리도 알고 계실 것 같고 해서 수시로 붙잡고 이런저런 의견 교환했다(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웹 서핑도 좀 해봤는데, 경쟁사 기기들이 한두 개가 아닌데다 희한한 특허도 하나 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결국 퇴근 전까지 성과목표서 마지막 항목 하나를 채우지 못한 채 월요일에 내는 걸로 이야기 된 후 퇴근 - 남은 항목은 한 개지만 고민거리는 더 많아졌다.
일단 이건 개인 성과목표서라고 부르긴 힘들다. 처음엔 기본 업무명세 외에 개개인이 재능기부 느낌으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서 추가적인 점수를 받는 개념이자 각자 평가받는 개념인 줄 알았는데 - 그게 아니라 팀 추진 목표에 맞는 업무들을 서로 나눠가지고 - 공통의 목표에 가중치를 얹어서 팀 전체가 함께 평준화된 평가를 받는 -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 해서 처음에 내가 냈던 5개 중 4개가 거부됐던 것이고. 연구개발이나 자기계발은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 하고.
여기서 문제. 각자 평가든 공통 평가든 기본 개념이야 아무 상관 없는데 - 5개 항목으로 50점을 제대로 못 받으면 손해를 보게 된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목표 자체가 도전적으로 설정되기 불가능하다(일단 보수적인 관리자 선에서 정리된다). 게다가 Input/Output과 KPI라는 정량적 체계로 걸러지기 때문에 수치적으로 매출에 끼치는 영향이 비가시적인 속성의 목표들은 사장돼버린다. 솔직히 나는 그냥 5개 중에 2개만 쓰고 30점 까겠습니다 해도 되는데, 나 때문에 관리자가 피해를 보면 안 되니.
또 하나는 어차피 점수 가중치가 팀 목표에 걸맞는 항목들에 집중돼있기 때문에 나머지 항목들은 좀 부차적인 레벨로 내려가게 돼있는데 - 그만큼 리소스를 덜 투자하면서도 담당중인 사업의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 그걸 증명해낼 수 있는 꿀 같은 아이디어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문제(이러니 남은 항목 하나를 못 채우지). 이 사업만 계속 파왔던 회사 터줏대감들도 도저히 모르겠다는데 - 나도 아이디어 고갈. 일단 아이디어가 있어도 팀장의 의중에 맞아야 하고, 더 위로 올라가면 대표의 의중에 맞아야 하는데 - 사람들 생각/의중이 다 다른 상황에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다하다 안 돼서 Po 님이 그럼 연구개발이라도 두 개쯤 넣어보라고 하시던데, 몇 가지 여쭤보니 눈치상으론 좀 원천기술쪽 연구개발을 원하시는 듯 - 하지만 원천기술 연구개발 레벨로 올라가버리면 내가 1년 내내 팀 목표 다 집어치우고 거기에만 매달려도 될까말까 아닌가. 나라에서 연구소 설립하거나 연구개발 담당부서 보유한 회사에 피같은 세금 혜택을 주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연구개발도 그냥 치워야 할 것 같고. 멀쩡히 잘 달려있는 RF 리더기(T머니)를 안 쓰고 방치해두는 이유도 도통 모르겠고. Po 님은 무조건 이거 안 쓸거라고 하시는데. 창고에 있는 비콘도 썩 내켜하지 않으시는 눈치고.
자연스레 회사의 방향, 팀의 방향과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과연 일치하느냐는 고민을 하게 되는 시점. 일단 담당중인 사업 관련 인수인계를 모두 마친 뒤의 내 모습이, 내가 추구하는 모습과 일치하는가? DBA로서 일/주/월 단위로 DB 뒤적거리면서 금액 정산해서 문서로 돌려주는 업무가 주된 업무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 이게 원래 DBA가 하는 일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 내 생각에 정산은 경영지원팀과 사업팀이 할 일이지 프로그래머를 지향하는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건 개발된 OLAP가 없다는 뜻이고 - 사업팀과 경영지원팀이 OLAP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솔직히 까고 말해서 엑셀 능숙하게 다루는 경영지원팀 소속 직원들 중에 DB 쿼리문 공부해서 해보라고 하면 귀신같이 잘 할 사람 세상에 널렸을 거라 본다. 그런 사람들에게 뷰/매크로/프로시저를 제공하는 게 DBA의 할 일 아닌가? 더해서 이건 그만큼 정산 프로세스 - 더 나아가면 서비스 구조 자체가 그만큼 깔끔하지 못하다는 이야기. 협력사인 M사와도 수시로 통해야 하니 번거롭고(권한도 찢어져있고). 마음같아서는 M사 찾아가서 그만 여기서 손 떼라고 말하고, 한 달 정도 PT 준비했다가 전국 총판 사장들 모아서 설명회 연 뒤에 매장 타입 딱 두 개로 통일할테니 그렇게 알고 함께 가자고 하고 싶은데. 이 사업이 내년에도 있고, 내후년에도 있을 사업이면 이게 맞는 것 같다가도 - 실상 Po 님이 조금 더 비중 높은 사업부문에 더 신경쓰느라 여기에 신경을 덜 쓰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어떻게든 항목 하나 채워서 이대로 진행했을 때 - 1년 쯤 뒤에 나도 이런저런 정산 테이블 만들면서 - 동일노동 동일임금 안 해주냐고 회사에 따질 수도 있을 것이고. 인사평가 받으면서 점수가 더해졌네 까였네 하면서 아 그래도 내가 회사 매출에 조금이나마 도움은 됐구나 자뻑도 조금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얼굴도장 찍고 신뢰를 쌓은 만큼 좀 더 목소리도 내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 어디엔가 불안감이 자라나고 있다. 이제 3년차에서 조금 더 지나면 4년차가 될텐데 - 그동안 내가 못 봐온 훌륭한 서비스/코드 구조를 보면서 더 배우거나 혹은 내 의향대로 이것저것 도전적으로 개발/서비스 해보면서 경험을 쌓거나 - 아무래도 지금 회사는 둘 다 아닌 것 같다. 보수적으로 서비스 유지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직급자들에겐 나름의 인생관과 철학이 있는 것이고. 이제 4개월 된 사원 나부랭이가 거기다 대고 지금 이 서비스 구조는 완전히 틀렸다거나 혹은 왜 내가 원하는대로 안 해주냐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 따로 개발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집에 와서 시도하면 되지 굳이 회사에서 해야 될 이유도 없는 것이고. 신뢰를 쌓아서 뭔가를 추진한다? 매일 상무님과 함께 담배 피우고 낚시 이야기 하시던 우 과장님이 신규 프로젝트 제안했을 때 어디 회사에서 덥석 받아주던가? 회사가 유지해오던 관리적 근성, 관리자들이 장기간 쌓아온 업무적 관성들은 1~2명의 맨파워로는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투자해야 할 시간과 노력 대비 확률이나 결과로 보자면 차라리 환경을 바꾸는 게 나을 것 - 아니면 처음부터 권한으로 밀고 들어가던가). 애초에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과반으로 모이는 게 좋지.
나야 그냥 70점짜리 받아도 된다. 팀원들이 나보고 폐급이라 해도 되고. 그깟 돈 몇 푼 올라가고 내려가고 - 회사의 평가와 주변의 평가에 갇히면 안 된다. 스스로 갖고 있는 여러 잣대, 높은 기준들을 낮추면 안 된다.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 상대방이 아는 내용을 내가 전부 모르는 게 당연하고, 나 또한 과거의 내 발언을 까먹을 수 있고, 나 또한 같은 내용을 재차 질문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커뮤니케이션이다. 회사 분위기 보면 꼭 아마추어들 같을 때가 있는데. 보다 나은 개발/서비스를 위해 기술적인 공부와 함께 협력에 대한 공부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있는 게 향후 발전적인 측면에서도 더 좋다. 이런 관리적, 문서적 조직 보다는 로켓 분위기가 필요하다. 밥 먹을 때도 비트코인 이야기 말고 - 자기 몫의 주식이나 스톡옵션 딱 들고있는 사람 답게 - 내 서비스는 어떻고 경쟁사 서비스는 어떤지 미친놈처럼 그것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방구석 여포처럼 장황하게 써놨는데, 막상 월요일에 회사 가서 커피 한 잔 빨고 의자에 엉덩이 쫙 깔고 있으면 또 어떤 생각들이 들런지. 위 모든 고민과 논의를 지배하는 절대자는 바로 '월급'. 성과목표서 그거 그냥 대충 하나 우겨넣지 뭐. X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