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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25 부두술사 읽어보기
2014. 9. 25. 22:00 게임이야기

부두술사 읽어보기


부두술사 나타나다


 디아블로. 1996년 발매된 1편은 액션 RPG(역할수행게임) 장르의 아버지로서 게임사에 큰 획을 그었고, 2000년 발매된 2편과 2001년의 확장팩은 악마와 같은 게임성으로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이렇게 해당 장르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며 탄탄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디아블로 시리즈는 스테디셀러로 롱런했지만 실상 3편의 출시는 오래도록 기약이 없었고, 덕분에 3편 관련 소식은 항상 뜨거운 이슈였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팬이라면 2008년 WWI(World Wide Invitational – 연 단위로 열리는 블리자드의 축제) 행사장에서 3편의 개발이 공식 발표되었을 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행사장의 거대한 스크린에 악마 디아블로의 형상과 3을 의미하는 세 갈래 불꽃 마크가 떠올랐을 때 게이머들은 악마숭배집단의 광란을 표현하는 플래시몹(불특정 다수의 약속된 행위표현)을 펼치기라도 하듯 흥분했었다. 디아블로3가 곧 발매되리라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인 게이머들은 자기가 생각해오던 디아블로3의 모습과 그동안 불거졌었던 루머, 그리고 실제 블리자드가 발표하는 정보를 오가며 머릿속 퍼즐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제각각 ‘영상이 정말 멋지군’, ‘네크로맨서가 다시 등장할까’ 따위를 떠올려보는 사이 게이머들 앞에 야만용사와 부두술사가 다른 캐릭터들에 앞서 먼저 공개되었는데 - 야만용사를 마주한 반응에는 특이한 점이 없었지만, 부두술사를 마주한 반응은 놀라움, 의문, 실망 등으로 다양하게 갈렸다. 부두술사는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충분할 만큼 상당히 파격적인 모습을 가진 캐릭터였기 때문인데, 대체 이 센세이션의 기저에 무엇이 깔려있었는지 부두술사가 가진 여러 코드들을 파헤쳐보고자 한다.


문명의 충돌


 부두술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야만용사로 개명하기 이전 2편 시절의 바바리안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바바리안이라는 캐릭터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왜 헐벗은 채 커다란 도끼를 쥔 야만인이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그 익숙치 않은 이미지에 적잖이 놀랐었다. 물론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코난(로버트 하워드의 시리즈)의 세계관이라던가 세가에서 발매했던 고전게임 황금도끼 등과 친숙했던 게이머들은 바바리안을 나름 익숙한 이미지로 받아들이며 반겼을지 모르지만 이들은 소수였고, 대부분의 게임에서 - 고결한 대의를 가지고 악마와 싸우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야만스러운 이미지 보다는 주변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었던 기사, 군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왔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을 갖추고, 방패와 칼을 들고, 목걸이 표식에 입을 맞추는 그런 이미지로 말이다.



 2편의 개발팀은 이러한 식상한 이미지로부터 벗어난 신선한 캐릭터(오히려 야만스러운 적으로 등장하던)를 전면에 내세우는 모험을 했고, 이것은 주효했다. 2편의 캐릭터 선택창(주인공처럼 정중앙에 서있다)에서 바바리안을 클릭하면 깜짝 놀랄 정도의 큰 고함과 함께 모닥불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서는 왼손에 쥔 숫돌을 오른손의 도끼날에 불꽃이 튈 정도로 강하게 마찰시키는 연출이 나오는데, 이런 이미지는 2편 세계관 내의 도시에 거주하던 NPC(Non Player Character)들에게마저도 생소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바바리안 캐릭터와 NPC들이 상호작용 할 때의 여러 대사들을 통해 이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도시 밖 저 멀리에 산다고 이야기만 듣던 헐벗은 야만인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났으니 누구든 NPC의 입장이었다면 놀라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겉모습을 통해 ‘저들도 깊은 사유가 가능할까’, ‘저들이 우리의 양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를 섣부르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네크로맨서를 보면서는 들지 않았지만 바바리안을 보면서는 들었던 생각 - ‘저들도 집에 화장실을 갖추고 있을까?’ 혹은 ‘저들도 음식을 불에 익혀서 먹을까?’와 같은 이질적 경계심을 생성시킨 바바리안은 분명히 게이머들에게 문명의 충돌을 가져다 준 캐릭터였다. 하지만 ‘야만스럽다’라는 개념 속에 은근히 포함된, 미개하다고 깔보던 선입견은 게임의 흐름을 타고 점점 무너져갔다. 게이머들은 바바리안이 상당히 발달된 그들의 도시에서 대대로 매우 고결한 임무를 수행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스토리를 진행하며 차츰 깨달았던 것이다. 즉, 문명의 충돌을 통해 생소한 캐릭터를 향한 선입견을 최대한 돋워놓은 뒤에 차츰차츰 친숙해지도록 - 생소한 모습이었을 뿐 그들은 그들 나름의 문화권에서 고결함을 가지며 살아왔노라 캐릭터에 깊이를 가미해주는 것이다.


왜 원시인인가


 부두술사는 우리에게 ‘원시인’의 이미지를 지니고 바바리안처럼 다가왔다. 2편에 이어 3편에서 다시 한 번 문명의 충돌이 온 셈이다. 부두술사 공개 이후 왜 세계관과 어울리지도 않는 원시인이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이냐는 반응들이 적잖이 나오기 시작했고, 과장을 좀 보태자면 자칫 인종차별 논란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1편에서는 소서러(마법사)로, 2편에서는 팔라딘(성기사)으로 멋지게 흑인을 등장시켰으면서 왜 갑자기3편에 와선 논란 가득한 원시인 이미지란 말인가. 워크래프트3의 휴먼 종족에 왜 흑인이 없는가를 주제로 워크래프트3에 동양인과 흑인이 다른 종족으로 등장하는 의미를 나름의 해석으로 파헤쳤던(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글을 썼던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신동호 님이 다시 한 번 부두술사를 주제로 글을 쓰지는 않을까 농담 같은 생각까지 잠깐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바바리안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물론 본능적으로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를 진행하며 부두술사 캐릭터의 대사를 듣고, 특수한 힘을 사용하며 함께 동고동락함으로서 점점 문명의 높낮이로서가 아닌 문화적 생활양식의 차이로서 부두술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친숙해진다’는 것의 의미는 혹시 디아블로 시리즈가 아닌 다른 작품에 이와 같은 원시인 이미지의 캐릭터가 나타나더라도 미개함과 직결시키기 보다는 멋진 밀림의 전사로 인식하게 되리라는 의미다. 얼굴에 주름을 가득 담고 백발을 휘날리며 공개된 야만용사(바바리안)를 보면서 대다수 게이머들이 미개함은 커녕 2편의 역사와 무게감을 더한 캐릭터의 깊이에 감탄과 존경을 느꼈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친숙해진다는 것의 의미가 한층 쉽게 다가올 것이다. 실제 3편에 등장하는 사막의 대도시 칼데움의 시민들은 부두술사를 생소하게 바라보는 대사를 내뱉지만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 칼데움을 장악했던 악마 벨리알을 처치하면서 부두술사는 칼데움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된다.



 블리자드는 이렇게 바바리안과 마찬가지로 부두술사 또한 선입견은 잠깐, 친숙함은 길게 - 라는 공식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고, 실제로 많은 게이머들이 열심히 부두술사를 플레이하고 있다. 이제 야만인도 등장했고, 원시인도 등장했다. 먼 훗날 발매될 듯한 4편에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않는다면 문명의 충돌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캐릭터의 다양한 컨셉 실험을 통해 혁신을 이어온 디아블로 시리즈라면 다시금 기대를 가져봐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부두'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좀비와 부두인형(헝겊인형에 바늘을 꽂는 등의 저주도구)이라는 흥미롭고 강력한 이미지가 부두의 전부인 마냥 사람들의 인식에 고착화 되어있어 많은 오해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종교로서 존재하는 부두교는 실제로 그리 부정적이고 음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은 6천만 명 이상의 신자를 가지고 있는 현존하는 종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흥미롭게도 많은 게이머들은 이미 워크래프트3에서 윗치닥터(부두술사)를 만나봤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통해 부두교의 가르침을 받아보라는 권유 또한 수없이 받아보지 않았던가. 이렇듯 현실에서는 많은 오해를 받지만 의외로 판타지 세계에서는 친숙할 수 있는 부두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디아블로 3편의 부두술사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을까?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를 보면 부두술사는 움바루 부족의 선택받은 존재로서 혼령이나 기타 밀림의 다양한 생물 다루기 등을 무기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종교적인 의미로부터는 살짝 벗어나서 부두'술사'라는 이름에 충실하도록 아프리카 서부에서 시작된 애니미즘(모든 생물과 무생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신앙)을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우리가 밀림의 전사를 떠올릴 때에 흔히 흑인의 뛰어난 신체조건을 십분 활용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과는 달리 혼령을 다루는 심령 전사로서 영적인 능력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이미지로 보이길 원했다는 뜻이다.



 위의 애니미즘은 큰 틀에서 네크로맨서의 오컬티즘과 구별해볼 수 있는데, 네크로맨서의 오컬티즘은 애니미즘에 비해 보다 실체를 추구하는 이성적 메커니즘을 중요시 한다. 골렘을 만들거나 해골을 일으키고, 저주와 영혼을 다루지만 이것들은 철저히 해당 공식에 의한 결과일 확률이 높다. 반면에 부두술사의 애니미즘은 공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영혼세계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 스스로가 이미 영혼세계에 걸쳐있는 상당히 감성적인 개념이다. 외견상으로도 꼭 약에 취한 듯 덜덜덜 손을 떨기도 떨거니와 영혼세계를 오가며 소통하는 기술들은 물론이고, 마을사람들이 고조된 감정에 취해 닭춤을 추면서 닭이나 개 등을 제물로 바치는 부두의식을 모티브로 삼았는지 실제 닭과 개가 등장하는 기술들도 등장한다. 보통 흑인음악을 가리켜 소울이 느껴진다(감미롭다는 의미로)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흑인들은 오랜 세월 대대로 이어져온 애니미즘과 그에 수반되는 영적인 감성을 물려받는 것이 아닌가 한다.


패러독스를 즐기다


 부두술사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 외에 또 하나 중요히 짚어볼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먼저 디아블로 2편의 캐릭터들을 살펴보자. 조상숭배와 야만적인 힘을 다루는 바바리안, 기독교적인 힘의 팔라딘, 유럽신화에 등장하는 모계사회의 여전사 아마존, 오컬티즘(물리적 영역 이외의 다른 영역을 탐구하는 이성적 영성주의)의 네크로맨서, 토테미즘(동물이나 식물 혹은 자연물이나 그 현상을 숭배하는 정신양식)의 드루이드, 원소술사 소서리스, 동방의 무술을 익힌 어쌔신(암살자)이 있었다. 각각의 개성을 지닌 멋진 캐릭터들이지만 특히 네크로맨서는 바바리안과 함께 2편의 공개 당시 뜨거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었고 지금도 2편을 추억하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그 인기 비결은 평소에 게이머들이 막연히 사용해보지는 못하고 그저 상대해오기만 했던 오컬티즘적 흑마법(판타지 세계관에서 악의 무리가 주로 사용하던)을 정의의 편에서 무기로 삼는다는 패러독스의 쾌감을 선사해주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부두술사의 기술들을 살펴보면 밀림의 다양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공격에 활용하고 있는데 - 두꺼비, 거미, 박쥐, 좀비, 혼령 등을 악마를 향해 발사하고 아프리카의 키 작은 피그미족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은 난쟁이 우상족 병사들을 불러내 전투에 합류시키기도 한다. 이미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부두술사가 공격에 활용하는 이러한 요소들은 대부분 디아블로 2편의 3막에서 게이머들이 상대했던 밀림의 적수였거나 환경 속에 담겨있던 개체들이다. 실제로 디아블로 2편에서 3막의 배경이었던 밀림을 많은 게이머들이 상당히 짜증스럽게 기억하곤 하는데, 떼거지로 등장했던 우상족 병사들은 크기가 작아 클릭하기 쉽지 않았었고, 좀비와 혼령들의 공격력이 높았던 등 난이도가 쉽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3편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네크로맨서를 통해 악의 술수로 악을 상대하는 패러독스를 느꼈듯, 우리가 까다롭게 상대했던 밀림의 적수들을 이용해 악의 무리를 공격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컨셉을 설정한 점이 포착되는 지점이다.


의혹의 방랑자


 디아블로3 공식 홈페이지에는 ‘의혹의 방랑자’라는 제목으로 부두술사의 배경이 되는 테간제 밀림 움바루 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베누는 기존의 잘못된 질서를 거부하던 의혹의 방랑자를 마주친 뒤로 심경의 큰 변화를 맞이하며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의혹의 방랑자는 바로 게이머들이 조종하는 캐릭터를 뜻한다.



 안타깝게도 평소 우리는 영적인 감성과 심각하게 괴리된 채 현실에 함몰되어 쳇바퀴 돌듯 살아가고 있다. 음악감상이나 여행 등의 활동을 통해 말라 비틀어지지 않을 만큼 연명해가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영감 없이 팍팍한 일상 속에서 업무공식 이상의 무엇인가를 발굴하기에 현대인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오히려 헐벗었음에도 거침없이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찾아나서는 방랑자 부두술사는 우리가 감히 꿈꾸기에는 꽤나 고급스러운 ‘원시’를 온몸으로 표상하고 있는 캐릭터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단편적으로 비치는 원시인, 미개인이 아닌 기존의 잘못된 질서에 의문을 품고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진실을 찾아 방랑하는 영웅. 팍팍한 현실의 정글에서 벗어나 모니터 속 부두술사가 되어 혼란과 절망을 주는 악마를 찾아 응징의 의식을 치르는 행위는 우리에게 상당한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12년 모 발표회를 준비하며 썼던 글을 블로그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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