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용인에 있는 태권도장에서 사범으로 일하던 때다. 네 가족이 주공아파트 2단지 단칸방에서 - 그 좁디좁은 곳에 각자의 이불을 깔고 - 인간 테트리스 하듯 머리와 다리를 끼워맞춰 잠을 자던 때였는데, 그래도 코미디언 김신영 씨처럼 자다가 얼굴에 빗방울 맞을 일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도 그때 나름 많이 힘들긴 했었던지 좋지 않은 생각까지 해보기도 했었고, 바로 그 다음날 새 통장을 만들어 보기도 했었고.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의 소개로 당시 압구정동에 있던 한 레스토랑 - '젠하이드어웨이'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 월화수목은 태권도장, 금토일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휴일 없는 투잡의 시작이었다.
레스토랑 일은 처음이었는데, 할일이 꽤 많았다. 아침에 출근해 매장 전체 바닥을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으로 시작 - 식기비품 관리, 테이블 셋팅, 주문 받기, 음식 나르기, 중간중간 화장실 청소와 정원 관리, 유리 닦기, 화분, 어항 등등. 건물은 레스토랑 전용이었는데, 너무너무 예뻤었다. 원래는 미용실이 입점했던 건물이라 얼핏 들었는데 - 구조가 'ㅁ' 자로 되어 가운데 공간이 뚫려있고, 그 가운데 공간에 아름다운 정원과 새장이 꾸며져 있는 곳이었다. 복층 구조여서 2층에서 1층의 정원을 내려다 보는 것도 1층 자체를 즐기는 것만큼 좋았다. 사장님이 모 유명 의류 브랜드도 함께 운영하시던 분이어서 매장의 각종 테이블이나 인테리어 등에도 아낌없이 투자하셨고(여유가 있으시니), 또 인력 규모나 매장 운영(장비나 비품 등등)에도 아낌없이 투자하셨고 - 덕분에 귀에 무전 이어폰을 끼고 매니저 님의 지시를 받으면서, 아무리 바빠도 순서 있게 일할 수 있었다. 당시 매니저 님은 숏컷과 정장 콤보의 멋진 여성분이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만나본 상사들 중 손꼽을 정도로 유능한 분이셨다.
어쨌든 지어진 건물 자체와 인테리어/익스테리어(아웃테리어)는 물론이고 테이블이나 식기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미려하다 보니 나도 덩달아 최선을 다해 일하게 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 매장을 내가 계속 깨끗하게, 아름답게 유지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심리였을까. 테이블 셋팅도 제대로 각 맞춰서 메뉴얼대로 - 테이블 위에 종이를 놓는 위치, 그릇의 각도, 나이프의 방향과 각도 등등. 한창 힘 좋을 때여서 창문도 잘 닦았고, 무거운 그릇이나 짐도 잘 날랐다(그릇들이 꽤 무거운 것들이었다). 특히 여자 화장실 바닥은 - 사람들이 쓰고 버린 핸드타올을 활용해서 - 지저분하게 물기가 튀어있지 않고 깨끗하게 바싹 말라있는 화장실 바닥을 유지하려 노력했었다. 어찌보면 정말 낮은 일, 더러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매장의 격은 올라갔으리라(사진 찍는 사람들도 참 많이 다녀갔었다). 돈 많이 줄테니 다시 그때처럼 열심히 일하라고 하면 아마 못 할 듯싶다. 그만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했었고, 당시 시급으로 원래는 매월 4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받았어야 했는데 - 실제 통장에는 50만 원이 들어왔었다(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일). 레스토랑의 철학 자체도 퀄리티 높은 서비스를 사람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누리다 갔으면 좋겠다는 철학. 이는 사장님의 의류 브랜드에도 적용되어 있는 철학인 듯 - 실상 올 여름 그 브랜드의 신소재 옷(가격도 합리적인)이 아니었다면 땀에 절은 티셔츠로 매일 고생했을 것이다.
이것저것 배우기도 많이 배웠었다. 당시 셰프는 사장님의 지원으로 다른 나라에 음식 견학도 다니셨었고, 동남아에서 온 요리사들도 있었다(아시아 퓨전 푸드였다). 직원들과 매출을 나누고 사기를 북돋우는 법도 생생하게 목격했고. 테이블이나 장식품 등등 진짜 좋은 걸 얻으려면 세계 곳곳을 많이 둘러보고 그만큼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도 어깨너머로 배웠고. 식기는 절대 물기가 묻은 상태로 두지 않고 하나하나 린넨으로 닦아서 - 절대 물방울 자국 없는 식기로 만든 뒤에야 손님들에게 내놓을 수 있었다. 스팀기에서 나온 와인잔을 린넨을 이용해 맨손 접촉 없이 - 최종적으론 진짜 아무런 자국(당연히 물방울 자국도) 없이 깔끔하게 닦아 걸이에 걸어놓는 법도 배웠고(손이 빨라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손님이 시야에 있다면 테이블을 치울 때 음식을 마구 잡탕으로 섞어 치우지 않도록 주의. 덕분에 다른 레스토랑에 가서 서비스를 받다 보면 이 매장이 가격 대비 어느정도의 서비스를 하고 있는지 꽤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돈 많은 동네라고 그럴싸하게 매장 꾸민 뒤 가격 높게 잡아놨는데 - 숟가락에는 물방울 자국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직원들이 저들끼리 낄낄거리다 커피잔에 커피 질질 흘려서 내오고 있으면 - 뭐라고 하진 않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창 일하던 때 - 웨이터는 Waiter라 가만히 서서 손님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향해 기다리다가 - 1층 정원을 감싸고 있는 유리창 속 햇살을 틈틈이 쳐다보면 시나브로 밀려오기 시작하는 피로.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정원 안으로, 마치 매장 이름(Hideaway) 처럼 도망쳐 잠 자고 싶다고. 매장에 울려퍼지는 잔잔한 음악들까지 어찌나 잠을 부추기던지. 하지만 그 음악들 중 - 갑자기 이게 뭔가 싶게 빠르고 힘찬 템포로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음악이 하나 있었다. 맨처음 'A~ boy~'로 시작하는 가사. 마치 유리창에 비친 나를 지칭하는 듯 - 하지만 이후 가사는 'went back to Napoli~ because he missed the scenery~'여서 어찌보면 나와는 상관 없는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뜬금없이 튀어버림에도 - 이 음악을 너무너무 좋아한 나머지, 최소한 전생의 내 이야기였을 거라 굳건히 믿고 머릿속으로 가사 하나하나 따라부르기 시작. 이 템포에 맞춰 일하면 정말 힘든 기분 하나 없이 즐겁기만 했었다. 바로 Sophia Loren의 'Mambo Italiano'다. 역시나 요즘에도 종종 듣곤 하는데, 덕분에 버킷리스트에 관련 항목까지 하나 생겨났다. 바로 '이탈리아 나폴리의 경치 좋은 테라스에서 Mambo Italiano를 들으며 맛있게 피자 먹기'이다. 물론 그저 환상으로만 남겨둬야 할 부분일 수도 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2시간 넘게 줄서야 들어갈 수 있는 레스토랑 - 기껏 들어갔더니 동양인들만 모아놓는 반지하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들과 합석 - 팁 달라고 징징대는 웨이터/웨이트리스의 불친절과 마주해야 하는 - 그렇다고 하더라는 냉정한 현실이 이탈리아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러가지 에피소드들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모 (여)배우가 손님으로 왔던 일. 보통 나는 앉을 때 의자를 빼주는 서비스까지는 해드리지 않았는데, 이 배우의 표정에는 '쓸쓸함'이 짙게 묻어있었다. 해서 앉을 때와 일어설 때 모두 의자까지 빼드렸고, 배우도 여기에 고마움을 표시했었다. 나중에 남편과의 이혼 이슈가 터졌을 때, 나는 누구 잘못인지 곧바로 나름의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혹자는 말한다. 바람 피운 사람 잘못 아니냐고.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많이 외로웠었고, 그건 남편 잘못이다. 남편이 할 도리를 다 했는데도 바람을 피웠다면 그때는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길게 일하지는 못했다. 본격적으로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던 즈음 - 매장 창고 근방에 와인 창고를 따로 짓기 시작하던 시기에 그만두게 되었다. 이유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휴일 없이 월화수목은 용인까지 출퇴근하는 태권도장, 금토일은 또 정신없이 몸 써야 하는 레스토랑이니 - 그 체력 좋은 20대 초반에도 더는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귀가 후 틈만 나면 쓰러져 자던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레스토랑에선 정직원으로 일하라고 계속 이야기 했었는데, 나로서는 - 어찌보면 조금은 도제식이기도 했던 태권도장의 일을 휙 관둘 수가 없는 상태였다. 특정 시기 이후부턴 관장님이 돈을 전혀 받지 않고 계속 나를 지도해 주셨었으니, 나로서도 최소 일정 기간 일을 지속하는 게 도리였다. 투잡으로 받은 돈을 총 합산하면 대략 130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사범 일만 주 5일 했다면 대략 88만 원이 나왔을 테니 - 실로 88만 원 세대였다.
몇 달 전 어머니가 모델 수업을 모두 마치고 수료식 겸 패션쇼를 하신 일이 있었다.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 자신의 가치와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어머니를 응원하면서 - 근처의 레스토랑을 알아보다가, 예전에 내가 일했던 '젠하이드어웨이'가 떠올라 오랜만에 찾아봤으나 - 아쉽게도 더이상 영업하지 않는, 없어진 가게가 돼버렸다고 한다. 그러게, 압구정 상권은 죽어도 너무 죽어버렸다. 갈수록 상인들이 버티기 힘들어지고, 갈수록 청년층의 소득이 줄어든 이명박근혜 치세 속에 압구정동의 불빛이 유지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서 먹었던 음식은 게로 만든 가라아게에 커리를 부은 음식으로 기억하는데, 가끔씩 맛보고 싶은 음식 하나가 이렇게 '잃어버린 맛' 목록에 추가됐네. 제주도에도 매장이 하나 있다는데, 가보고 싶어진다. 아마 그곳도 하나의 도피처 처럼, 편안하고 미려하게 꾸며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