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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10. 14:40 회고/아르바이트

내가 가진 아르바이트 경력은 모두 짧은 기간이지만, 그럼에도 그 기간 뇌리에 박힌 짤막한 인상들은 여전히 - 완전하진 않아도 상당 부분 유효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크라제버거는 지금은 없어진 수제버거 프랜차이즈로, 수제버거 시장 개척으로는 국내 선발주자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20대 중반에 접어들고 양재천 다리 건너 타워팰리스 쪽 상가에 들어온 매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당연히 업무는 일반적으로 하는 레스토랑의 온갖 잡일들 - 테이블 셋팅과 테이블 치우기, 서빙과 설거지는 기본 - 여기에 추가로 맥주 컵에 맥주 따르기와 에이드 만들기를 새로 겪어보았다. 에이드 만들기는 그냥 레시피를 보고 그대로 만들면 되니 크게 별스러울 게 없었으나, 내심 손님이 마시는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재미는 느꼈던 것 같다. 한 번은 손님이 맥주 컵 두 개의 거품 양이 다르고 자기 컵에만 거품이 꺼지면서 양이 줄어 보인다며 클레임을 걸어온 일이 있었다. 그래서 대뜸 '양이 부족하시면 리필해드리겠다'고 대응했다가 윗사람에게 나중에 주의를 들었던 기억 - 정말로 맥주 리필해주기 시작하면 우리 가게 거덜난다고. 당시에는 젊음의 패기인지 아니면 무대뽀인지 - '거품 좀 꺼진 거 가지고 호들갑이냐 또 줄테니 그만 징징대라'라는 마인드도 솔직히 있었다. 그 외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발달장애인이 두 명 정도 껴서 함께 일하는(주로 쓰레기 비우기), 나름 인력이 꽤 있는 매장이었는데 다들 발달장애인에게 너무 못되게 굴던 것. 수제버거는 내가 만들 일도 없었고, 솔직히 맛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매장 특유의 이미지도 기억에 남는 게 없고, 특징적인 냄새도 없었다. 사람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 없네.

안그래도 아르바이트란 그냥 잠시 거쳐갈 뿐인 예비적 사회 경험이란 의식을 가졌던 때인데 - 실제로 나가 일을 해보면 고생한 것에 한참 못미치는 시급이 주어질 뿐이었으므로 - 특별한 매력이나 동기부여가 없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차라리 애초에 못살던 집안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경제관념이라도 똑바로 가지고 있었다면 - 20대 초중반에 어설프게 대학생 행세하며 아르바이트 하고 다닐 게 아니라 - 군대 먼저 빨리 다녀온 뒤에 괜찮은 공장에라도 들어갔거나 혹은 군대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했을지도 모를 일. 여하간 지금보다 더 정신 못차리던 시절에, 여전히 한 달 내 카드값 몇 십 만원 정도는 집에도 아무 무리 없는 줄 알고 그저 노는 걸 더 좋아하던 때의 경험들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나이만 조금 더 먹었을 뿐, 놀기 좋아하는 습성은 그대로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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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