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 꿈으로 매개된 착각의 장 속에서 - 네트로피를 녹이는 뜨거운 인식으로
생마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16. 6. 20. 22:58 회고

 지난 주말 오랜만에 거실 소파에 앉아 K리그 경기, 수원FC 대 울산의 경기를 보니 수원FC는 영락없는 2부 강등 위기였다. 리그 종료와 함께 승격과 강등의 희비가 교차되는 지점이 올텐데, 선수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벌써부터 좌절감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선수들의 좌절을 주제삼았던 '청춘FC'라는 프로그램 이야기가 떠오르면서(아직 시청하진 않았다) 다시 문득 - 옛날의 그 형도 함께 떠올랐다.

 그 형을 만난 게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지, 6학년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내가 방과후 수영 학원에 다닌 줄 아셨겠지만, 나는 가는 척만 하고 혼자 동네 놀이터 혹은 학교 운동장을 배회하고 다녔었다. 수영복과 수영모 등은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시기 전에 락스를 살짝 푼 물에 넣어 수영장 냄새가 나게 해뒀었고. 아마 같이 다니는 친구 없이 혼자 버스 타고 수영 학원에 다니는 게 재미가 없었던 모양. 하루는 학교 운동장에서 당시 느끼기에 엄청 크고 나이 많아 보이는 운동복 차림의 형 하나가 함께 축구하자며 나를 불렀는데, 양쪽 농구 골대 사이의 비교적 좁은 공간을 토대로 골대 기둥 맞히기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 수영 학원에 가는 날, 꼭 그 시간 마다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 그 형에게 축구 교습도 받고, 시합도 했었는데 - 간단히 대각선으로 치고 달리기와 접기 두 가지만 배웠는데도 또래들이 허수아비로 보이기 시작 - 자신감과 재미가 동시에 붙기 시작했었다. 아마 이 인연이 아니었다면 중고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축구를 그렇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을까? 그 형은 20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었다. 인연은 길지 않았다. 몇 주쯤 지난 언젠가 부터 그 형이 나타나지 않기 시작한 것. 비록 짧았지만, 그래도 기억으로 남기엔 충분한 인연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도 한두 살씩 계속 먹어오다 보니, 비교적 늦은 나이에 어떤 분야의 프로를 꿈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불가능이라는 비실체적 임시 관념을 부정하며 내면을 불태우는 것이야 말로 인간만의 숭고함이 아닐까(인류는 현실 부정을 통해 집단으로 진화해 왔다 했던가) - 해서 '청춘FC'가 탄생 - 그 과정에 감동했던 주변 지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추천했던 것이 아니었을지. 당시의 그 형은, 진심으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지점. 아쉽게도 척박한 환경 속 실체적 고정 관념이 기억속 그 형을 짓누르고 있네. 모르긴 몰라도 제이미 바디를 꿈꾸는 제2, 제3의 '그 형'들이 요즘도 어딘가의 운동장을 배회중일텐데 - 좌절이 끝이 아닌 환경이 하루아침에 나타나길 바라는 것도 못된 심보겠지. K리그 클래식도 좋지만, 챌린지에도 너무 무관심하지 말아야겠다.

'회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사의 품격  (0) 2018.12.02
카네이션  (0) 2018.05.15
허생과 변 씨도 아니고  (0) 2018.02.18
잃어버린 맛  (0) 2017.10.05
남산골 한옥마을  (0) 2015.09.28
posted by 생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