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판교로 출근 - 상시 출입 등록된 건물 들어가 프로젝트 룸에서 컴퓨터 셋팅 시작했다. 기존에 아마 세 분 정도가 여기서 작업하셨던 것 같은데, 아무도 안 계신 김에 - 딱 눈에 들어오는 체리 MX 3850이 보여서 잠시 사용해 보았다(역시 명가는 명품을 만든다). 같은 층의 사내 카페도 가보았는데 밀크티가 저렴하게 잘 나와서 좋았고,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칠 수 있는 당구대도 두 개 보였다. 이 넓고 여유로운 공간, 역시 대기업은 대기업 태가 나네. 좋은 학벌 달고 나와 번듯한 대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일생은 다음 언젠가의 윤회로 미루고 - 스스로 채찍질이 모자라진 않았는지 다시 점검을. 대체 언제까지 월급 말고는 더 먹을 것 없는 판에서만 놀 거냐 - 머지않아 베팅의 시간이 온다.
셋팅이 예상보다 오래 걸려서 오전 시간 다 쏟아붓고 구내식당에서 점심까지 먹고 회사 복귀. 복귀하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갑자기 버스가 멈춰서고, 지하철에선 잠깐만 눈 붙이려고 붙였는데 정신 못차렸다가 역을 지나치고, 다시 거꾸로 가는 열차는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고. 회사 복귀 후에는 어제 하던 코딩 계속했다. 마음 같아선 미리 다 개발해 놓고 싶다.
이 대리님은 휴가에서 복귀하신 모양이고,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었던 김 대리님과의 인사는 전화로 나누었다. 항상 조용하고 어딘가 슬픈 눈을 가진 듯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는데 - 꼭 한전 정직원 되시길 바라고, 여자친구 분도 꼭 훌륭한 수의사 되시길 바란다. 사실상 고시생의 길로 접어드는 것일텐데,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고된 것을 - 그래도 어린 나이가 깡패라 굳이 못해볼 것도 없긴 하다. 다음주는 3일간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