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판교도 좀 익숙해졌다고 버스에서 잠깐 정신줄 놨다가 한바퀴 도는 바람에 9시 반 쯤 아슬아슬하게 도착 - H 수석님, 안 대리와 함께 회의 시작 전 이야기 좀 나누다가 오전 회의 시작. 이놈의 ZOOM 이제야 세부 사용법을 좀 알 것 같은데, 기대했던 녹화 기능이 뻑나는 바람에 크게 실망했다(좆됐다). 매니저분들도 오셔서 참석하시고, 계열사 분도 열심히 설명 잘 해주시고 - 다른 협력사 분들도 프로젝트 룸을 꽉꽉 채워주신데다 이야기 나눌 것들도 많아 후끈후끈했네. 아무리 봐도 지금이 비로소 설계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기 시작한 상황인데 - 자꾸 지금이 일정상 한창 개발중이어야 되는 것처럼 다들 생각하고 있어서 - 그래서 다들 걱정거리가 많은 게 아닐까란 생각도 잠깐 들었다. 왜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단지, 요식대로 글로 그렇게 적고 말로 그렇게 나누고 있어서? 하지만 진정으로 다들 지금 하고 있는 행위들은 설계이고, 절차상으로도 지금의 논의들은 꼭 필요한 것들 아닌가. 말과 글이 만들어내는 개념의 세계가 진정한 우주의 항상성을 대변할 수 없으며, 진정한 삶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는 도올 선생의 노자 강의를 요즘 퇴근길에 듣다보니 - 연결돼서 생각이 들었던 듯.
점심은 안 대리와 함께 판교역까지 걸어가다가 - 중간에 먼저 들어간 곳은 쌀국수 가게였으나 가장 싼 메뉴가 회사 중식대를 훨씬 웃돌아서 미친 물가에 놀라 그냥 나와버렸고 - 맥도날드에서 여유롭게 먹고싶은 거 하나씩 시켜 먹었다. 함께 가을 날씨를 느끼며 천천히 걷고 대화 나누었는데 - 회사에 있어 문화란 무엇인지, 또 좋은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현실적 방안은 무엇인지 등등 -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가까이 있어 고마웠다. 이력서의 자기소개서를 읽었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었는데 - 어쩔 수 없이 자기소개서라는 형식에 맞게 뭔가를 써내야 하긴 하지만 - 그래도 기왕 쓰는 거 가짜로 쓰지 않고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본 만큼 써낸 느낌이 있었는데 - 역시 스스로를 묘사한 그대로 진지함을 갖춘 사람인 듯하다.
회사 도착 후 상무님과 현황 통화 후 오후에 안 대리와 추가 회의 때 - 조금은 급하게 결정해야 할 수도 있는 사안을 두고 - 과감하고 도전적이지만 잘 풀리면 성과도 좋고 일도 편해질 수 있는 안과 그냥 현행대로 큰 리스크 없게 밟아나가는 안을 두고 의견을 물었는데 - 후자를 택하여서 전자는 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해당 분과의 주도권을 빨리 안 대리에게 넘겨줘야 하는 상황을 앞두고 내 성향대로 결정해서 인계해줄 일은 아닌 듯해서. 반대로 최 대리는 좀 더 경험을 실어주면 나처럼 성향상의 과감함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도 8시 되기 전에 나온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몇 분에 나왔는지도 기억 안 나고 - 결과적으로 이번주에 내가 개발해야 될 항목 관련해선 단 1%도 진행된 게 없는 상황이네. 피로도도 엄청나다. 지난주까지만 좀 고생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제 좀 괜찮아 졌나 싶은 시점에 더 짜증나는 시험의 한 주가 와버렸다. 바로 얼마 전에 농담처럼 가짜사나이 언급했던 것 같은데 - 그래도 다음주는 추석이니 이번주가 진짜 마지막 고비인지도. 퇴근 지하철에선 눈 감고 바로 작년 말 - 사람들 다 도망가고 급박해졌었던 그 프로젝트 막바지 상황 - 어떻게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K 사의 일을 쳐낼 수 있었던가를 복기해 봤다. 그리고 현재와 비교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