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서랍 속의 바다. 패닉의 노래 제목인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에서 따온 블로그 제목이다. 패닉의 노래 가사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제목 자체가 주는 강렬함은 항상 그대로다. 서랍 속에 바다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실로 서랍 속에는 바다가 있다고 알려주려면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잘 모르겠다.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라는 얼핏 봐선 명확하게 구분키 힘든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경험이 기억이 되어 '나'를 구성한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분명한 사실이다. 서랍을 엶으로서 숨켜있던 소리, 냄새, 감촉, 그리고 물건의 의미가 펼쳐진다. 분명히 누군가가 구성해놓은 기억들이다. 내 기억들을 보면서는 다시금 나를 재구성하고, 남의 기억들을 보면서는 다시금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재구성들은 감성의 영역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 같다. 의미 - 과거를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하루하루 죽음과 가까워 가는 나를 느끼는 싸한 감정과 물건에 담긴 에피소드로 돌아가 느끼는 희노애락. 평소가 아닌 어떤 특별한 시점에만 펼쳐지는 의식 - 내가 메말라 부서진 만큼을 기억의 바다가 다시 휘감아 채움으로서 힘차게 내일로 계속하게 만드는 흐름의 의식.
어머니께선 내가 어렸을 때부터 관련된 여러 물건들을 따로 모아 남겨두셨었다. 앨범 속 많은 사진들은 물론이고 유치원 때 만들었던 부채, 탈, 그림일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입었던 연극 코스튬 등등. 시간이 흘러 내가 내 바다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이 바다는 거센 파도가 되어 머리와 가슴을 강하게 때려왔다. '나'라는 게 이렇게 구성되어 왔구나 - 분명한 감동으로서 말이다. 친한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의 낡은 서랍속에서 각종 따조라던가 포켓몬스터 스티커 따위를 발견했던 때엔 친구와 함께 그곳에 빠져 신나게 헤엄치기도 했었고. 아마 평범한 모두가 자신만의 바다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패닉의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겠지.
자아도취 혹은 과거로의 함몰이라는 부정적 시선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설마하니 석가나 예수 보다 자아도취가 심하겠는가). 과거는 결국 자기에게 유리한 식으로 사실과 다르게 재구성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 개의치 않는다. 남들에게는 그저 소설 같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이 낡은 서랍 같은 블로그에 남겨두고 싶다. 과거에 영광이었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남들 앞에 잘난 영광이고 싶지 않으니 그저 겸손하면서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 이것저것 글을 흩뿌리기 전에 블로그 제목을 가지고 몇 마디 끄적이고 싶었다.
사족을 달자면 와이프는 혹여 옛 여자들의 기억이 남아있을 수 있으므로 내가 과거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눈치지만, 내게는 정말로 과거에 여자를 만났던 기억 자체가 없으므로 걱정이 없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당신이라는 바다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트루먼쇼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