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 아주 잠깐 흐렸지만 대체로 맑았던 날. 이제는 주변 지리가 은근 익숙해져서 신주쿠 역 말고도 주변 세이부신주쿠 역이나 신오쿠보 역 등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도 세븐일레븐의 91엔짜리 2리터 물을 사서 호텔의 제빙기 얼음과 함께 휴대용 물통에 담아 다니는 노하우가 생겼다.
먼저 우에노 공원으로 향했다. 원래는 네즈 신사도 보기로 했는데, 신사는 커다란 신사와 자그마한 신사를 모두 봤으니 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빼기로 했다. 한국에 교회가 많은 것처럼 곳곳에 신사가 심심찮게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친구에게 일본은 양식도 잘 발달돼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대체 어떤 느낌인지 몰랐는데 - 우에노 역에서 내려 함박스테이크를 사먹으면서 딱 알 수 있었다. 이건 진짜 고기만 똘똘 뭉친 것이라는 강렬한 맛과 향이 느껴졌다. 하기야 편의점에서 파는 게맛살도 게맛살이 아니라 그냥 게살만 똘똘 뭉친 것 같았고, 크림빵에 크림은 또 얼마나 빵빵하게 들어차있던가. 뭘 사먹든 돈 값은 하는 곳이었다. 우에노 공원으로 들어서기 전 우에노 시장 처럼 보이는, 마치 남대문 같은 상점 거리도 둘러보았다. 별의별 상점들이 다 들어와 있었고, 규모도 상당했다. 내가 죽은 상권에 가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어디든 잘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
우에노 공원 안에는 아름답게 지어진 사당들이 있었고, 감탄이 나오는 연꽃 호수와 그 안의 내 허벅다리 만한 잉어들. 절에 들어가서는 향도 하나 사다가 꽂아두었다. 미대 근처라 그런지 그림 그리는 미대생들도 보였고, 불교 관련 포인트들이 있어서 천주교인들이 성당 투어하듯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우에노 공원에 온 가장 큰 목적 - 도쿄국립박물관 앞으로 갔다. 그리고 좌절했다. 하필 오늘이 문을 닫는 날이었던 것이다. 미리 알아보지 않고 온 내 잘못인가 한참을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꼭 내 잘못이라기 보다는 경험 부족 - 사고를 확장할 수 없었던 경험 부족이랄까? 내가 한국인으로서 가진 사고방식으로 보자면, 국립박물관이 평일에 문을 닫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은 1년에 딱 신정, 설, 추석만 쉬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도 그러할 것이라는 예단을 했던 것이었다. 와이프와 벤치에 앉아 잠깐 쉬다가 도쿄 스카이트리 이야기를 꺼냈다. 며칠 전에 비싸다고 올라가 보지 않았던 그곳 - 넉넉치 못한 환경에서 자라 아끼는 게 습관이 된 삶, 지평을 넓혀야 할 순간에 멈칫멈칫 어딘가 부서진 경험을 가지게 된 삶을 반복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 이왕 도쿄 구경하러 온 거 높은 곳에서 한 번 둘러보고 싶었다.
다시 도쿄 스카이트리에 도착해 외국인 전용이라는 빠른 티켓을 끊고 높이 450미터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도쿄 전체를 한눈에 본 건 아니고(360도니까), 창문 여기저기로 빙빙 돌면서 마음껏 내려다 보았다.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도시. 대체적으로 건물들이 모두 낮은 가운데에 높은 빌딩들은 곳곳에 조금씩 모여있는 도시. 지진 때문에 높은 건물들은 허가를 받기 위한 허들이 높고, 돈도 많이 든다고 이야기 들었다. 그리고 목조 건물들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고. 꼭 누군가 심시티 게임을 해놓은 것처럼 항구에서부터 여기저기 강줄기와 철도, 다리가 적절하게 - 그리고 학교와 수영장, 운동장, 녹지 또한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런 적절한 배분이 서울 보다 훨씬 큰 규모로 펼쳐져 있는 메가시티. 한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중심에 시멘트로 큼직큼직하게 발라서 여기저기로 쫙쫙 뻗어놓은 풍경과는 확실히 달랐다. 서울보다 훨씬 큰 곳? 훨씬 번화한 곳? 왜 좀 더 일찍 경험해보지 못했을까? 와이프와 도쿄 스카이트리 위 카페에서 도쿄 풍경을 감상하며 차와 케이크를 즐기고 내려왔다.
다음 행선지인 시부야에 도착. 그 유명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한가운데서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와이프와 동영상을 찍었다. 신주쿠가 교통의 중심지이자 관광객들이 많고 유흥가가 섞여있는, 살짝 연령대가 높은 곳이라면 - 시부야 첫인상은 확실히 보다 젊은 곳이라는 느낌. 신주쿠 보다는 거리가 약간 더러운 편이었지만, 하라주쿠 처럼 연령대가 확실히 내려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번화가 어딘들 안 그렇겠냐마는 '우리 인구 많고 내수 죽여준다'고 외치는 듯한 인상. 시부야에선 오코노미야키를 사먹었다. 처음 시킨 건 점원이 해주었고, 두번째 것은 내가 직접 해서 먹었다. 일본식 두꺼운 부침개 같은 음식이었는데 맛있었다. 신주쿠로 돌아와서는 거리에서 파는 과일 슬라이스를 사먹어 보았다. 가격도 싸고, 상태도 괜찮고, 양도 많았다. 멜론, 파인애플, 수박 등등 - 한국에 이런 상점이 있었다면 매일매일 사먹었을텐데.
호텔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도쿄에 관광 다니는 서양인들은 서양인들대로 확실히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핫팬츠와 나시, 슬리퍼 등 매우 편한 차림에 타투도 즐겨 하는 - 남 의식 잘 안 하는 사고방식. 의자가 아닌 길바닥이나 계단 등지에 철푸덕 잘 앉는 사람들은 내가 목격한 범위에선 모두 서양인들이었다(예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고가 더 자유로운 부분들이 있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남들을 철저히 의식하는 기본 베이스(동양적인)에 사적인 영역을 구축했고, 서양인들은 남들을 그렇게 의식하지 않는 기본 베이스에 공적인 영역(에로망가를 보고 어이없어했듯 - 아마 공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만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을 구축한 것 같다는 짧은 생각. 확실히 한국 사람들은 서구화된 측면이 있는 것 같았다. 일본에 와보기 전엔 한국 사람들이 대체로 서양인들처럼 시원하게, 편하게 입는 편인지 몰랐기도 했고(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수 없었으니), 요새 한국 젊은이들은 타투도 즐겨 하지 않던가. 어느쪽이 잘났니 못났니 따지려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사고방식의 차이를 어느정도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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