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엔 비교적 빨리 앉았다. 눈 동그란 아저씨 기억해 두었고, 옆자리에 앉았던 여성은 강남녀였다. 파견지로 나가시는 문 부장님 인사드리고(아마 겨울쯤에나 뵐 수 있을지도) 커피 한 잔 들면서 서버쪽 조사 시작. 오후에 W 상무님께 소회의실에서 브리핑 드리며 잠시 대화 나누었다. 상무님 말씀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셨다. 내가 봐도, 그리고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곰곰히 생각해 봐도 이 프로젝트는 분명 장기전이고, 모든 스택을 디테일하게 조율할 정도의 실무력이라면 응당 범위 또한 거대해지기 때문에 - 말씀대로 길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점심은 오 부장님 5명 파티로 제주두루치기 먹었고, 식후 검찰청의 취침용 돌에서 잠시 쉬었다.
오후에는 대표님이 잠시 연구소 분들이랑 이야기 나누는 김에 나도 부르셔서 얼떨결에 들어갔는데 무슨 DB에서 뭘 뽑아와서 뭘 그리는지 맥락도 하나도 모르겠고. 계속 듣다 보니 대충 무슨 이야긴지 알 것도 같은데 - 드로우 콜이 잦아서 느려지니까 드로우 콜을 줄이고 싶은데 필요 정보를 더 만들어서 집어넣자니 메모리 사용량이 늘어난다고 하고, 정보를 현 상태로 넣고 돌리자니 로직상 판단이 힘들어 진다고 하고. 그냥 메모리 더 잡으면 안 되나(그래봤자 메모리 포인터만 들어갈 거)? 엔비디아 의존인 CUDA 쓰신다니 그쪽 기술자들이 성능 튜닝이야 확실히 해뒀을 터 - 쉐이더 랭귀지든 컴퓨팅 랭귀지든 그래픽 카드 안에서 성능 차이는 없을 것 같고. 듣기로는 여러장 꽂아서 쓴다는데 - 그 비싼 메모리 막 집어넣은 제품이 좀 버텨주면 안 되나(하하). 관점을 바꿔서 이미 있는 재료로 문제를 풀려면 이건 분명 topology로 접어드는 문제로 이해되는데 - 당장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topologist가 필요할지도 - 뭐, 연구소에서 푸실 수 있다면 곧 푸시지 않을까.
관련해서 얼마 전까지 주기적으로 뵙던 김 박사님 얼굴과 차분한 말투가 갑자기 떠올랐다. 여러 대표님들마다 각자의 특징들이 있는데, 확실히 P 대표님은 사업적 인맥 못잖게 학문적 인맥에도 밸런스가 있으셔서 - 대한민국 탑이라는 S 대학교 교수님이 돈 조금 받고 바로 making formula - MATLAB이나 Python으로 던져주시는 게 꿀이었다. P 대표님이 직접 발을 담글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간에 다른 일 하시느라 바쁘셨던 분. 각자 스타일 차이.
퇴근길엔 근본적인 고민을 좀 해보았다. 맡겨진 프로젝트는 아무리봐도 장기적인 프로젝트인데 - 능력자가 와서 두세 달 돈 많이 받고 훌륭하게 개발 끝내고 사라지면 되는 게 아니라 - 말 그대로 메인테이너가 될 것을 각오하고 끈질기게 붙잡아야 되는 전쟁인데. 관련해서 진행됐던 국가연구과제 결과라는 것도 살펴보니 이쪽으로 유명한 회사가 최소 두 명 이상, 최소 2년 이상 들여서 만든 결과물이더만. 과연 내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바스크립트와 WebGL에 대한 긍정적 비전과 열망을 가지고 있느냐? 굳이 생소한 언어와 생소한 환경으로 context switching - 오버헤드 겪으면서 실질적으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집 멀어서 야근도 더럽게 애매하고. 상무님과 별개로 과연 대표님은 대표님대로 전쟁을 수행할 의지/성향이 있느냐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엔지니어한테 타사 쇼케이스 보여주고 두세 달 줬다가 뺐고, 성과물 요구하고 - 애초에 국지전과 외부영업으로 돈 빨아들이는 타입이면 몸에 안 맞는 옷일 수도 있으니. 대표님, 상무님, 나까지 셋이서 각자 생각이 다르면 셋 다 괴로울 그림인 듯해서 고민. 솔직히 이렇게 업력 있고 인원 많은 회사에 나 같은 놈 수습 좀 하다 나간다고 기스날 게 뭐가 있겠나. 오히려 내가 인생의 위기지. 그냥 하고싶은 거 해서 돈 벌려면 대체 필요한 게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