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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으로 매개된 착각의 장 속에서 - 네트로피를 녹이는 뜨거운 인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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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24.03.02 삼일절
  2. 2022.03.18 악의 얼굴
  3. 2021.01.03 출구
  4. 2020.12.19
  5. 2020.08.02 어쩌다 일본은
  6. 2020.04.25 껍데기와 알맹이
  7. 2019.09.17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8. 2019.08.10 열정
  9. 2019.07.13 합리와 신념
  10. 2019.06.22 김돈회 사거리
  11. 2019.02.04 겸손
  12. 2018.11.04 워플밸
  13. 2017.11.16 몸부림3
  14. 2017.11.16 몸부림2
  15. 2017.11.16 몸부림
  16. 2017.06.22 네메시스 2
  17. 2017.05.21 스캐빈저
  18. 2017.04.25 삼사재2
  19. 2017.02.17 개발자의 깊이
  20. 2017.01.22 콱 처박다
  21. 2016.08.16 협잡
  22. 2016.05.31 오해
  23. 2015.09.29 삼사재(三斯齋)
  24. 2015.07.18 낡은 서랍 속의 바다
  25. 2015.05.10 조급증
  26. 2014.11.11 아웃사이더
2024. 3. 2. 01:03 단상

 삼일절이다. 지금의 나에게 애국심이란 구운 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얇고 쉽게 바스라지는 - 사실 애국심이 당장 돈벌어다 주는 것도 아닌데다 글로벌 시대에 꼭 국적이란 것에 과하게 목맬 필요가 있나 싶을 때도 많다. 사회 곳곳의 부패와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애국심은 커녕 우리나라가 밉거나 후져 보일 때가 많으며 오히려 옆나라 일본의 상대적 우위들을 목격하며 부러움을 느낄 때도 많다. 결국 애증이자 양가감정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일까.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일상적으로 먹는 구운 김이란 특유의 고소함으로 입맛을 한껏 끌어올려주는 불맛 - 일본인들마저도 '칸코쿠노기무'라며 추켜세워주는 - 얇고 쉽게 바스라질지언정 이미 깊게 새겨진 고유한 특징.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도 언제든 자연스레 집어먹게 되는 식량인 것.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따로 정해진 날은 없겠지만 - 삼일절은 잊지 말고 꼭 과거와 대화를 나눠보라며 조상님들께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특별한 날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 만큼이나 증오를 가진 내게 - 진정 뭐가 그리 불만이냐, 호시탐탐 너를 짓밟으려는 총칼의 군인들이 너를 둘러싸고 노려보고 있기라도 하느냐, 왜 쉽게 버리려 하느냐 묻고 계신 것만 같은 날이다. 목숨을 걸고라도 뛰쳐나와 자주국가, 독립국가, 민주국가를 선언해야만 했던 - 그 강렬한 공분이 폭넓게 축적될 수밖에 없었던 매우 엄한 시대상을 현재의 우리가 당장 피부에 와닿게 가늠해 보긴 힘들지만, 성명서를 든 팔이 한쪽 잘리면 다른쪽 팔로 또 그것을 들 정도로 강렬했던 비폭력 저항이었으니 그 숭고한 정신을 우러러 길이 보전하는 것만큼은 버릴 수 없는 책무로 와닿는다. 울부짖던 조상님들께서 꼭 되찾고 싶었던 것, 꼭 가져보고 싶었던 것을 - 우리가 진정성 있게 가꾸고 있는지, 잘 지켜나가고 있는지 - 그 중요성을 상기하기 위해.

 반면에 가해자였던 일본은 과거를 잊고 싶어하며 부정하고 싶어한다. 냉정히 보자면 우리는 해방 이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지나칠 정도로 관성적으로 또 극과극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또래 세대는 당시를 직접 겪지는 않았던 세대이며, 또 현실적으로도 - 일본의 완전한 사과와 영원한 반성을 이끌어내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최근 몇십 년간 대한민국 다방면의 놀라운 성장은 우리에게 내적인 자신감까지 부여해주었고 덕분에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라이벌 감정은 의외로 큰 폭으로 약화된 것을 느낀다. 여전히 역사 문제나 영토 문제가 불거지면 순간 화가 나기도 하지만 - 역사적으로 오래 맞댄 나라 중에 서로 때리고 맞아본 적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일본이 사과와 반성을 하던 말던 그 이슈와 감정은 잠깐, 우리에게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이슈들이 산적해있다. 일본이 영토로 시비를 걸던 말던 그 이슈와 감정은 잠깐, 그저 잃지만 않으면 될 뿐이다. 더 큰 긴장들이 도처에 있다.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 특정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의 역사와 타국의 상황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의외로 강대국 국민들만이 누릴 수 있는 정신적 특권이자 안일함이기도 하다. 우리처럼 온국민이 바짝 긴장해 외부 상황을 살피고 치열한 경쟁으로 살아남아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만큼 일본은 강하고, 또 안일한 것일 뿐이다. 과거와 관련된 배상 문제나 국제정치적 함의는 좀 더 풀어야 할 숙제기도 하지만 앞으로 한일간의 보다 발전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요인이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일본이 아닌 우리다. 조상님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켜진 우리의 자주국가, 독립국가, 민주국가를 이어나가기 위한 확장적 안보관이다. 특정 국가와의 과거관계, 특히 관성적으로 이어지던 반목 카드 한두 개에 너무 민감하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 당연히 실제 벌어질 일은 아니겠으나 - 행여 우리가 제국주의, 군국주의 대국으로서 일본을 점령하게 된다면 - 우리가 당했던 것과 같은 인간 이하의 짓들을 똑같이 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인간이란, 전쟁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다시 되돌아가 - 삼일절이 발생된 원인의 원인들을 따라가보게 된다. 수많은 인민들이 고통받아도 오직 내것만 잘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부패한 고위 관료들의 숫자가 많았었다. 나랏일과 자기 곳간 채우는 일의 분간 없이 오만방자하게 나라를 팔아먹고 다녔던 인간들이 절대권력에 기생하고 있었다. 우매한 백성부터 잘난 고관대작까지 - 모두가 가까운 과거의 의리와 원한에 얽혀 미래에 다가올 힘의 이동에 눈뜨지 못했었다. 경멸스러운 근시안과 이기심으로 - 오직 귀한 자기 자식들과 이들이 누릴 몇 십년의 영광을 위하며 - 나라의 100년, 200년을 망치는 것에 개의치 않았었다. 과거에 천착된 경직된 사고방식은 빨리 버려야 한다. 계속해서 삼일절을 일본과 얽힌 원한관계로만 읽어내기에는 우리나라가 현재 안고 있는 사회 곳곳의 부패와 정치적/적대적 공생관계가 심각하다. 삼일절의 강렬했던 비폭력 저항을 기리지만, 그러한 상황을 다시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의 환기가 필요할 때다. 이제 내게는 애국심과 반일감정 모두 구운 김 같이 얇고 쉽게 바스라지는 것이 되었다. 여전히 한국인으로서 멀리 할 수 없는 식량이지만 - 더욱 중요한 것은 계속 먹던 것을 먹을 뿐인, 별 의미없는 의미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또 누구와 협력할 것인가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일수록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다고 한다. 좋은 시기에 좋은 흐름이 강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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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22. 3. 18. 17:30 단상

배우 김윤석 씨는 영화 타짜의 아귀 역을 열연하며 대중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고, 여전히 그때의 카리스마 넘치는 장면들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이러한 호평에 딴지를 걸 생각은 전혀 없으며, 당연히 김윤석 씨를 역사에 남을 대배우라고 생각하지만 - 개인적으로 영화판 타짜의 아귀에는 약간의 이질감이 남는다. 이유는 타짜 원작 - 고등학생 시절 무거운 책과 노트 사이로 열심히 끼고 다녔던 허영만 화백의 만화책 속 아귀는 영화 타짜의 조폭 두목 같은 인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영만 화백의 멋드러진 선으로 탄생된 그 아귀를 제대로 묘사하는 게 가능할까 - 찌푸리는 송충이 눈썹과 말을 내뱉을 때 툭 튀어나오는 그 탐욕스러운 입술 - 흔한 시골 농사꾼 같기도 하고, 어디 동네의 시장 상인 같기도 하고 - 그러나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끝까지 벗겨먹겠다는 탐욕으로 똘똘 뭉친 마치 악의 화신과도 같은 말과 행동과 표정들. 우리 일상 가까이 있을 듯한 인상이지만 무서운 탐욕으로 무장된 그 아귀는 그간 TV 뉴스에 나오던 연쇄살인마 등의 흉악 범죄자들만을 악의 화신처럼 여겨오던 내 어린 마음에 나름의 파장을 주었고, 그때의 신선한 충격을 마음에 깔고 있었기에 영화판 아귀에 이질감이 들었던 것 같다.

여전히 어린 나이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시절을 20년 쯤 전으로 기억하는 나이까지 달려오다 보니 - 그 과정에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형사님도 만나 보고, 검사님도 만나 보고, 약식 벌금에 불복하여 정식재판 청구로 판사님 얼굴까지 보아가며 이야기 나눠본 일도 있었다. 판사님과 건너편 검사님에게 내가 억울하다는 듯 말 몇 마디 더 해보았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뒤집힐 상황은 아니었고, 더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명 후에 법정을 나섰으나 - 당시 크게 느낀 것은 바로 세상이 정말 험하다는 것. 내가 불리한 신분이 될 경우 무조건 맞고소를 하고 최대한 빨리 변호사를 불러야 한다는 방어의 지혜를 미처 몰랐던 때다. 누군가에게 고소/고발을 당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판검사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은 영화/드라마의 주인공들이나 겪는 일이고, 혹시라도 주변 누군가가 운이 나쁘면 겪을 수도 있는 일이겠거니 - 행여라도 내가 직접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한 채 살아가다 겪은 날벼락이었다. 세상에는 고소/고발을 자기 주머니칼처럼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불리할 만한 것들을 평소 습관처럼 증거로 수집해 놓는 싸이코들이 사회 곳곳에 있는데 - 그 싸이코들 중 하나가 멀쩡한 얼굴을 하고 네 주변에서 너와 가깝게 지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경고해주는 인생 선배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이런 식의 경고는 그 자체가 사회에 대한 불신감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경고여서 주변 누군가가 일부러 먼저 이야기 꺼낼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당시 고시원에 살던 시절이라 벌금은 급하게 카드론 대출로 냈었고, 여전히 나는 억울하게 벌금을 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싸이코임을 미리 인지하고 상대방에게 그동안 당해온 것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내가 행하기 전에 상대방이 먼저 내게 수도 없이 행해온 그 악행들을 철저히 증거 수집 해놓았더라면 - 그러나 정식재판이 있던 당시 판사님 앞에 앉아 차례대로 자기 변론을 하던 여러 사람들을 복기해 보면 대부분이 '어쨌든 무언가 죄를 지어서 온 공식적 악인'들이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억울하다'거나 '벌금을 깎아달라'는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법정에서 압도적인 분량의 사건을 처리하는 판검사님 입장에선 아무래도 나 또한 지극히 평범하고 찌질한 - 그냥 그렇게 지나가버리고 말 악인A, 악인B 다음의 악인C에 불과했을 듯하다.

이렇듯 나 또한 크고작은 악의 일원으로서 미약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어깨 위 짧은 가방끈 계속 추켜올리며 서로 얼기설기 주고받고 때리고 맞으며 사는 와중에 과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명확하게 구분이라도 좀 해볼 수 있다면 - 성가시게 해코지 하는 놈들이 최대한 적은 환경에서 그럭저럭 안전하게, 가능하다면 나 정도는 꽤나 정의롭다는 착각이라도 해가며 살 수 있는 길은 어디 없을까 - 위대한 철학자의 책도 당장 내 삶의 맥락에 와닿지 않는 것 같으면 그대로 수면제가 될 뿐이고, 무명 작가의 감성 글귀 한줄도 당장 확 와닿기만 한다면 어찌나 그렇게 철학적으로 느껴지는지. 이런 와중에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한 선악구도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넘쳐흐르고 있지 않았나 - DC와 마블 등의 슈퍼히어로물은 어찌나 끝도없이 새롭게 나오는 것마다 재미있는지 - 시대/국경불문 선악구도를 기반으로 여러 설정상의 변주를 통해 널리 사랑받는 중이지만 어느덧 슈퍼히어로물이 그냥 한번 휘발성으로 재미있게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음속에 무겁게 남기 시작했다. 선역과 악역들의 그 선명성/상징성이 어찌나 부러운지 - 아무리 선악구도를 애매하게 뒤섞어놓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조금 덜하냐 더하냐의 차이일 뿐 결국엔 큰 틀에서 충분히 구분지어지지만 - 현실에선 선역과 악역의 구분이 선명하기는 커녕 온통 흐릿하기만 한 가운데 창작이 아닌 현실의 무게로 사람들을 짓누르지 않는가. 때문에 선명성/상징성이 가지는 매력이 바로 사람들을 창작물에 열광시키고, 프로스포츠에 열광시키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선수, 훌륭한 팀은 당장 눈으로 구분하기도 쉽고 또 그에 걸맞는 결과를 가져간다. 감독과 코치에게도 명확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지 않는가. 하지만 현실에선 권한과 책임이 애매한 상태로 서로 부대끼는 경우가 흔하고, 훌륭한 직원이나 관리자가 결과를 강탈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렇듯 우리는 선명하고 상징적인 권선징악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매체에 젖어 흐릿한 인생 속을 헤메이는 중인지도.

왈가왈부 소식 주고받는 것으로 서로의 위치와 존재감을 확인하고 하루하루 힘 짜내어 살아가는 사람들 - 지하철에 앉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을 가리켜 '모두가 휴대폰을 통해 세상을 진단하는 의사 같다'는 어느 시인의 묘사가 와닿는다. 각자 뉴스를 통해 진단해본 세상은 어떠한가 - 적어도 내가 청진기를 든 의사처럼 인상 찌푸리고 진단해본 세상은 - 의무 교육과정 중 어느 누구도 애써 알려주지 않았던 일들이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세상이다. 나쁜 놈을 애초에 잡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권력, 행여나 재수없게 잡히더라도 절대로 적합한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이 - 안개처럼 구름처럼 선명한 얼굴도 없이 흐릿하게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고 사람들의 머리 위를 떠다니는 세상. 맞은 사람은 나왔지만 때린 사람은 도통 누구인지 끝까지 알아낼 수 없는 어느 클럽에서의 사건, 누가봐도 명백한 증거 영상을 온국민이 보았는데도 이상하게 그 인간의 얼굴이 등장한 건 아닌 것 같기에 도저히 벌을 줄 수 없다는 높으신 분들의 판단, 피해자들에게 되돌아 갔어야 할 검은 돈이 갑자기 적법한 투자금으로 둔갑해 높으신 분들의 투자처로 흘러들어가는 돈세탁의 마법, 그리고 이제는 모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아드님이 받은 퇴직금 50억이 정말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인지 아닌지 - 최종 판단에 대해 어디 내기라도 한 번 해볼까. 그 권력들은 또한 자본의 시녀로 봉사중이라는 사실 - 넥슨과 친했던 검사가 누구였는지는 널리 알려졌던 바 - 그렇다면 S 그룹에 충성하는 검사들이 누구누구인지는 다들 알까. 현직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관들의 리스트를 본 적은 있는가. 행여 그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알아냈다 한들 그 다음은 어쩔 것인지 - 안개와 구름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칼질을 하면 세상이 나아질까. 그 주먹질이나 칼질은 누가 하나. 하루하루 출근했다 퇴근하면 파김치가 되는 일반인들이 주말에 휴식과 가족을 버리고 나서야 하나. 아니면 포섭하기도 쉽고 굴복시키기도 쉽다는 동네북 기자들이 나설 것인가. 기실 자본권력과 사법권력의 결탁은 그 힘의 크기 면에서 압도적이고, 때문에 배트맨이 분투하는 고담시의 부패가 항상 시장/판사/검사/경찰/범죄조직이 일심동체로 엉켜있는 부패로 그려진다는 점과 슈퍼맨의 직업이 기자인 이유가 무겁게 와닿는 것이다. 슈퍼히어로 정도는 돼야 알아볼 수 있고 또 싸워볼 수 있는 그 악의 얼굴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던 니 얼굴 내 얼굴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얼굴이다.

이렇듯 권력과 자본의 구조적 악함은 그들이 처한 환경적 폐쇄성에 의해 - 그들 스스로 깨닫기 힘들어서 그렇지 그들도 사실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이 정말 맞는지는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고관대작이나 재벌총수와 일상 속에 가깝게 지내며 그들의 평범성을 시험해볼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있겠는가. 오히려 고관대작이나 재벌총수의 SNS 혹은 이따금 기자나 정적들에 의해 까발려지는 그들의 사적 발언을 통해 들여다 보면 그들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상식 밖의 사고방식을 소유하였으며 번듯한 직업이 가져다 주는 권위를 걷어내고 보자면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에 찌든 악인들이라는 것만 확인하게 될 뿐. 원래 인류는 이렇게 위아래로 구분지어져 살아왔고, 또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인류이래 권력의 역사를 통해 본다면 보다 지혜로운 대처가 될까? 자본의 역사를 통해 본다면? 정치학적으로 시스템을 연구해보면? 필부필부 시민A, 시민B 다음의 시민C로서는 - 가끔씩 일견 정의로워 보이는 뉴스기사 따위나 SNS에 공유하면서 몇 마디 짹짹거리는 걸로 자기위안이라도 하면 되는 것일까. 공고히 구조화 되고 은닉화된, 절차적 정당성과 최종 결론까지 모두 거머쥔 거악에 의해 벌어지는 그 악행과 그 피해는 - 뉴스에나 나오는 남의 일 같기만 할 뿐 왜 발등에 불 떨어진 당장의 내 일 같지는 않은 것인지.

이러한 가운데 얼마전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새로 당선되었다.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에 나왔던 주문대로 높은 문화의 힘을 널리 떨치도록 애썼던 지난 대통령을 곧 떠나보내고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부족한 사람들끼리 아등바등 살다보면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까지 돌보기엔 힘이 부쳐 - TV에 나오는 흉악 범죄자가 얼굴을 가리고 나오면 왜 그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지 이해심/인내심이 바닥을 치곤 하는데 - 기자들 앞에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서서 플래시 세례를 받는 새로운 대통령은 우리의 슈퍼히어로가 되어줄 것인가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충분치 않은 국민들의 욕받이가 될 것인가.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도 좋았지만, '양심건국' 휘호 또한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깊었다. 선생께서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심정으로 이 휘호를 쓰셨을까. 훌륭한 문화적 성취를 잠시 뒤로하고 우리 시민사회는 정면으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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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21. 1. 3. 12:06 단상

얼마전 동창생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긴밀히 사귀던 친구는 아니었으나, 무색무취하지 않고 어떨 땐 얄미울 정도로 자기 몫은 잘 챙기는 친구였기에 이름 석 자는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있던 그 친구 - 다섯 살짜리 아이를 뒤로하고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했다고 한다. 이후 친구들과 잠시 이야기를 모아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최근까지 큰 규모는 아니어도 딸린 식구들이 있는 업체 하나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는데, 보아하니 업종 자체가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업종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다섯 살짜리 아이를 뒤로하고 이렇게 젊은 나이에? 당사자가 아니니 정확한 가계까지 다 알 순 없으나, 대략 예상되는 공식적/비공식적 대출액 - 여기에 딸려올 월 이자만 그려봐도 일반인들은 결코 감당 못 할 수준의 압력이 있었으리라. 더해서 헤아릴 수 없는 부정(父情)이 고뇌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으리라. 계속해서 안타까운 점은, 그 친구가 선택했던 업종은 그 분야에 대한 진정한 애정 없이 아무나 선뜻 선택할리가 없는 업종이라는 점이었다(생각보다 긴 시간을 이끌고 싸워왔다는 점도). 이제는 변형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까지 들려오는 시점 - 치료제는 요원하고, 백신 가지고도 말들이 많다. 여전히 출구는 멀게만 보인다.

이번 약 10일 정도의 연휴를 맞아 이런저런 부푼 마음을 가지고 - 책도 두 권 사뒀고, 구상할 것들도 목록이 길고, 가볼 곳들도 몇 군데 점찍어 뒀고, 축구화도 하나 사서 공터에서 야외활동도 좀 해볼 참이었는데 - 세상사 참 마음대로 안 된다고, 7일을 내리 끙끙 앓아 누워버렸다. 여간 고생한 게 아니어서, 마지막 3일도 치료 후의 회복으로 보낼 수밖에 없게 됐다. 평일과 빨간날에 회사 좀 안 나갔다 뿐이지 리프레시된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번 연휴를 새로운 궤도로 올라서기 위한 밑작업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로 생각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백날 조심히 준비만 열심히 한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떨쳐 나서는 순간부터는 모든 리스크가 나를 향해 달려올 것이기 때문에 - 얼마 전 세상을 등진 친구의 일이 결코 남일이 아닌 것처럼 - 그래서 작게라도 해보려고, 천천히라도 터널 밖으로 나갈 궤도를 생각했던 것인데. 왜 이렇게 내 몸 하나도 마음대로 안 풀릴까 싶어 누워서 볼 줄 모르는 손금까지 들여다 봤다. 예전에 한 번 손금으로 점괘를 보기로는 - 가지고 싶은 건 모두 가질 수 있으나, 2인자로 출발한다 - 라는 점괘가 나왔었다. 당연히 그냥 웃어 넘길 이야기지만, 한편으론 꼭 틀린 말만은 아닌 것이 - 사실상 아무런 기반 없이 살아온/살아갈 입장에서 기존에 이미 갖춰진 기반을 디딤돌 삼아, 혹은 그 날개 안에서 움직이는 게 어찌보면 현명한 처신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내 다시 피식 웃어버렸다. 어렸을 때 손금 보는 기계에 천 원인지를 집어넣고, 그것도 출생일까지 10일 정도 늦은 날로 집어넣은 뒤에 뽑았던 점괘 아니었나. 게다가 2인자라는 것도 기실 뜯어보면 1인자로부터 받는 특혜 내지는 밑에서부터의 무한 경쟁에 의한 결과로 귀결된다. 더군다나 제대로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의 2인자 같은 건 사실상 큰 쓸모도 없지 않나. 내일부터 당장 출근하게 생긴 마당에, 여전히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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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20. 12. 19. 14:48 단상

어느 영업장의 화장실을 손봐야 할 일이 있었다. 변기의 수조와 벽 안의 수도관을 서로 연결하는 호스에서 물이 조금씩 새는 문제가 있었고, 가만 살펴보니 변기 근처 벽에서 나온 수도 밸브를 잠근 후 호스 양 끝 육각 너트를 풀어 빼고 새 호스로 갈아 끼우기만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철물점에 가서 상황 설명을 하니 새 호스 - 양변기 조절대라고 부르는 것을 내오면서 요즘 나오는 제품들은 육각 너트 형태가 아니라 편하게 손으로 돌려서 끼울 수 있는 손나사 형태라는 설명도 해주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새 조절대를 들고 다시 화장실로 돌아와 변기쪽 수도 밸브를 먼저 잠그려는데, 이 밸브가 마침 고장이 난 상태여서 제대로 잠궈지질 않았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조절대 하나 빨리 갈아 끼우는 건데 무슨 큰 문제 생길 게 있을까 싶어 수도 밸브는 무시하고 렌치를 이용해 기존 조절대를 돌려 빼기 시작했다. 너트 주변으로 삐져나오기 시작하는 물줄기가 심상찮아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어느새 다 돌려 뺀 뒤엔 곧바로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수도 밸브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압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수압이 어찌나 강했는지 초등학생 정도는 그냥 물줄기를 맞고 그대로 나자빠질 수 있겠다 싶은 정도 - 옆에 있던 추가 작업자도 바로 패닉에 빠져 어쩔줄 몰라하기 시작했다. 진짜 큰일났다는 당황감에 심박수가 급증하고 고함 소리가 나올 정도였는데, 그와중에 빨리 생각해낸 건 바로 원래 있던 조절대를 다시 끼우는 것. 그러나 이미 터져버린 수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간 살아오면서 - 어디가서 작업할 때의 팔힘과 악력이라면 나름 자신있는 편이었는데 - 새것이건 헌것이건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물줄기를 제압하면서 조절대를 갖다 끼울 수가 없었다. 이미 화장실은 폭우로 불어난 냇물 형국이 되어 자칫하면 화장실 밖으로도 물이 넘칠까 염려되었고, 덩달아 수도세 걱정까지. 대체 몇 분을 씨름하고 있었을까.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 본 상황에 슬슬 진이 빠지기 시작했고,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옆에 있던 추가 작업자는 밖으로 나가 무언가 대안을 찾으려는 것 같긴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은 지 오래. 화장실 문을 닫고 나와 추가 작업자와 전화 연결해 보니 이 사람은 나름대로 건물 여기저기를 오가며 해결책을 찾다가 결국 다른 영엽장에 양해를 구하고 건물 전체의 수도를 잠글 수 있는 밸브를 돌리기 시작한 중이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정말로 물줄기가 점점 약해지다가 아예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었고, 가서 천천히 손으로 돌려 끼우면 되는 새 조절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아주 편하고 부드럽게 - 힘이 다 빠진 팔로도 아무 무리 없이 새 조절대 설치를 끝냈고 - 추가 작업자에게 다시 밸브를 켜도 좋다고 전화를 걸어주었다. 고요해진 화장실 안의 거울을 쳐다보니 두 눈은 충혈된 상태였고, 온몸은 다 젖어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작업하던 층의 수도만 잠글 수 있는 밸브는 다른 층 어딘가에 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양변기 조절대의 또다른 명칭은 양변기 고압 호스였다.

회사 구성원 모두가 사용하진 않지만, 나름 쓰는 사람들은 또 주기적으로 열심히 쓰는 커피머신. 누군가는 맛이 없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냥 마신다고도 하고 - 그래도 콩은 그때그때 새로 로스팅 된 게 탕비실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시려는 편이다. 몇 달 전 한창 바빠 주말에도 출근하던 시기 - 갑자기 커피 향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져 커피머신을 좀 열어봐야겠단 생각으로 탕비실 여기저기 메뉴얼을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메뉴얼은 보이지 않았다. 하여 직접 커피머신 제조사 홈페이지의 메뉴얼 파일을 받아 출력한 후 커피머신 옆구리를 뜯어 레버를 올리고 내부의 큰 부품 하나를 들어냈다. 뒤이어 경악했다. 하얀색 곰팡이가 커피머신 내부에 온통 퍼져있었기 때문.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조금씩 씻어내고, 또 닦아냈다. 그렇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곰팡이를 제거한 후 메뉴얼에 있는 자동 청소 프로그램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돌려도 맑은 물은 나오지 않았고, 물구멍 두 군데 중 막혀있는 한 군데는 여전히 꽉 막혀있는 상황. 메뉴얼을 더 자세히 읽어보니 주기적으로 정수 필터도 갈아주어야 하고, 석회 제거용 특수 세제를 넣어 돌려주기도 해야 한다고. 안그래도 바쁜 와중에 이런 것까지 다 챙길 정신이 있을까 싶어 그대로 다시 조립해 사용하다가 - 몇 주 뒤에 다시 열어보니 또 곰팡이가 재발해있었다. 그 때 한 번 더 곰팡이를 닦아내고 조립한 뒤 이렇게 연말 언저리까지 온 요즈음 - 커피머신의 버튼을 눌러 한 잔씩 내릴 때마다 잠시간 갈등에 빠지곤 한다. 귀찮은 짓을 할까, 말까? 첫 회사의 커피머신 세척 담당이었던 손 대리님이 특유의 웃는 얼굴을 하고 옆에 서있을 것만 같다.

몇 년 전 구직 상태에서 어느 회사로 면접을 갔을 때 - 내 앞에는 개발팀 4명이 앉아있었고, 면접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받았던 하나의 질문 - 프로그램 코드 구조가 잘못돼있는데, 이것을 리팩토링 할 수 없는 상태로 끌고 가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경영진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리팩토링 기간을 확보하여 리팩토링을 먼저 하겠다고 대답했고, 곧바로 경영진이 그런 여유를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후속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제가 지금 그것 때문에 이직하려고 나온 거라 말해버렸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앉은 분이 '역시 이직이 답인 걸까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함과 동시에 면접장 안의 모두가 함께 짧은 몇 초간 낮은 웃음 소리를 내는 시간을 가졌으나, 웃음 뒤에 찾아온 각자의 씁쓸한 표정은 제각각 다른 모양이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회사에서는 추가 연락이 오지 않았다.

'먼지가 쌓이면, 먼지를 닦는다'는 문장을 좋아한다. 어느 작가분의 글귀를 기억에 남겨둔 것인데,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전히 좋아한다. 어딘가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면 - 훗날 그 안에 가구를 놓고, 또 그 위에 물건을 놓고, 때가 되면 또 그 위의 먼지를 닦고 있을 사람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일개 존재로서 이치를 거스를 수 없을 때 - 그 함축된 의미로서 - 먼지가 쌓이면, 먼지를 닦아야 할 뿐인지도 모른다. 그저 눈에 보이는 그대로 - 가늠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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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20. 8. 2. 11:29 단상

작년 여름, 바쁜 와중에 용케도 시간을 내어 부산으로 2박3일 휴가를 다녀왔었다. 당시 여행 코스 중에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에 꾸며진 부산근대역사관이 있었는데, 한창 둘러보던 도중 갑자기 와이프의 비명 비슷한 소리 - 꼭 무슨 징그러운 벌레라도 본 듯한 탄성이 들려 급히 그쪽으로 가보니 - 와이프가 내려다보고 있던 것은 작은 수첩 하나. 사실, 와이프의 입에서 나온 일련의 평가들은 그리 좋은 평가는 아니었다(어떻게 이렇게 징그러울 정도로 쫌생이 같이 만들어 놓았느냐는 평가). 같은 곳에 서서 가만 보아하니 일제의 수탈에 사용되었던 자그마한 수첩 안에는 항목에 따라 펜 색깔까지 달리해가며 선 반듯하게 글씨 반듯하게 - 요즘 사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셀로 편집해서 레이저 프린터기로 뽑아낸 것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반듯한 - 하지만 분명히 1900년대 초반에 수기로 작성된 표. 그 내용은 수확률이 얼마면 몇 퍼센트를 가져가야 하는 지 등 - 당시 욱일승천의 기운으로 세계를 휩쓸던 일제의 힘이 얼마나 밑바닥 부터 튼튼하게 다져진 힘이었는지 소름돋게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미제의 한반도 접수 형국에서도 - 우리 입장에서야 민족의 자주적 행정 운운하고 싶었겠지만, 미제가 촘촘했던 일제 행정력의 일부라도 당장 복원시켜 그대로 쓰고 싶었던 건 어찌보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역사관 후반부에 보인 미제의 지역(Province) 조사 문건의 구체성과 체계성이 많이 모자라 보였던 것(이제 막 지역을 접수해가는 단계)과는 분명하게 대비되었던 그 수첩.

일본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뉴스가 바로 어제 뉴스, 그리고 오늘도 TV 뉴스에서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병리학자가 위인으로 추앙되어 가장 대중적인 지폐에 얼굴이 들어가 있고, 노벨 의학상 수상자만 5명을 배출한 일본. 소름 돋을 정도로, 어찌보면 악독할 정도로 반듯한 수첩들로 - 그리고 수첩을 넘어서서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다방면의 활동으로 얻어낸 무시무시한 데이터들(예를 들면 731 부대)을 바탕으로 - 패망 후에도 시스템과 디테일로 아시아의 탑을 지키고 있던 일본 - 어쩌다 일본은 이렇게 됐을까?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서부터 코로나 사태에 이르기까지 - 어쩌다 이렇게 잘못을 대강대강 덮고 현실을 부정하면서 - 전혀 시스템적이지도 않고 디테일도 없는 행정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물론 잘나갔을 때 너무 잘나갔었기에 이제는 좀 내려올 때도 되었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나(흥망성쇠를 어쩌겠나), 이렇게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일견 시스템과 디테일로 무장하고 있는 듯하나 정신사상의 근본 뿌리에서는 - 권력은 원래 권력자들에게 - 그리고 그 권력자들의 자식들에게 대물림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 혹 근본 원인인가? 그동안은 그렇게 해왔어도 별 불편함 없이 살아왔으니 그랬을 수 있겠으나, 정녕 이것이 근본 원인인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다. 어쩌다 일본은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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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20. 4. 25. 15:09 단상

우러러 보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큰어른이신 아네스 하일스베르 선생의 어록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 당신은 굉장히 빨리 높이 올라가서 어느덧 아키텍트 혹은 뭐 우주 항공사 같은 게 돼서 지껄이게 되죠. '뭐든지 가능하다(anything is possible)', '사람 더 쓰면 된다' 등등... 하지만, 정말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코끼리 만들기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윗사람이 와서 이야기한다. 코끼리 만드는 거 뭐 - 일단 다리는 두껍고 크게, 몸통도 크게, 코는 길어야 되고, 귀는 부채처럼, 꼬리는 작게, 그리고 입 양옆에 상아 달아주고(내가 이래뵈도 생물학 전공이지) - 이게 그렇게 어려울까? 하지만 실무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발톱을 잘못 달면 몸무게 때문에 통증이 심해지고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면서 골격과 내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겠군. 반달 모양으로 해도 되는 건가? 코 끝의 근육도 매우 정교해야 할텐데, 이걸 어떤 구조로 설계하지? 근육 섬유가 안 꼬이게 잘 쓰다듬으면서 시작해야 할텐데 적당한 빗을 어디서 구하나? 빗을 못 구하면 직접 손가락으로 쓸게 될텐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군. 중간에 다시 윗사람이 와서 이야기한다. 코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길게 만들어서 손처럼 쓰게 만들면 된다니까? 그냥 근육이랑 피부일 뿐이잖아. 이에 실무자가 답한다. 이게 주름도 상당히 잘 잡아야 하고요, 이렇게 무거운 걸 붙이려면 얼굴 근육의 구조도 파악해야 되는데다 코 끝은 좀 복잡해서 더 걸릴 것 같아요. 윗사람이 답답하다는 듯 내뱉는다. 아 코끼리 그거 동물원 가면 누구나 볼 수 있다는데, 동물원 가서 좀 보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코끼리 해부학 책 사줘?

코끼리를 만들기 시작한 10개 업체 중 그나마 코끼리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어떤 생물체를 만든 개발사가 돈을 번다는 건 웃픈 유머이고, 코끼리 대신 하마를 만들었어도 수단 가리지 않고 영업에서 승리한 회사가 돈을 번다는 건 웃지 못할 한국의 현실. 번외의 번외편으로 - 위 이야기에 나오는 타입의 실무자는 어디서 구하느냐는 문의도 있을 수 있고, 위 이야기에 나오는 타입의 실무자를 걸러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의도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역량의 한계 안에서 - 대부분의 조직에선 상층부의 생각과 판단, 중층부의 생각과 판단, 하층부의 생각과 판단이 각기 다르고 - 때문에 상층부는 상층부대로 건너뛴 층위의 일들을 알아서 잘해주는 중층부를 선호, 중층부는 또 그러한 하층부를 선호한다. 하지만 건너뛴 층위 만큼의 간극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 - 사고세계가 다른 것을 넘어서서 업무의 견적/경중 및 처리 방식/체계까지 달라져버린다.

xx월 xx일 18시 28분 00초부터 산 너머 4QFK 123 456에 155mm 포를 108발 발사하라는 사단의 명령이 연대에 하달되고(충분히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선 포 궤적이 잘 안 나올테니 앞으로 남은 6시간 내에 빨리 2미터짜리 언덕을 쌓아 포를 올리라는 명령이 대대에 하달되면 이제 대대에서 난리가 나기 시작한다. 092 공병대대는 지금 어딨냐? 너무 바빠서 도저히 올 수가 없답니다. 아니, 그래서 언제부터 된다는 거야? 언제? 그리고 공병여단은 지금 뭐하는데? 무전 쳐보고 있는데 멀어서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뭐? 빨리 군단에다 공병여단 지원 물어보고, 애들 데려다 흙부터 확보해. 연락 받은 행보관이 개씹할 뭔씹할 온갖 씹을 찾으면서 망가지지 않은 삽이 몇 개 남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지휘부에선 대대장과 중대장들의 열띤 토론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지금 날이 흐려서 좀 불안한데, 비오면 흙 무너지니까 돌부터 쌓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이 박 대위, 모래주머니 쓰면 되잖아? 아닙니다, 애들한테 흙 담아서 묶으라느니 그냥 육공트럭에 빨리 돌 몇 개 담아오는 게 낫습니다. 이 때 지휘부의 대대장에게 연대장의 연락이 온다. 야, 동식아 준비 어떻게 돼가냐? 나 지금 거기로 가는 중이야. 아, 이거 사단장님이 자꾸 물어보셔. 확인 좀 해보라고 하시네. 뒤이어 영내에 연대장이 온다는 소식이 전파되기 시작한다. 과연 포병들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155mm 포로 적군에게 알파 브라보 찰리의 매운 맛을 보여줄 수 있을까?

여기저기에 잘도 떠도는 '단지 시간 문제일 뿐, 소프트웨어에 안 되는 건 없다'는 말은 결국 더 자세히 뜯어보면 '시간의 한계 안에서,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론으로 기울어져 해석된다. 옛 동료의 명언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 "내가 만든 애들은 항상 어디가 조금씩 아파." - 피식 웃게되는 농담이면서도, 갑자기 내 가슴 한켠도 아파지는 명언.

실무에서 관리까지, 관리에서 경영까지 - 해결책은 무엇인가? 원인부터가 지나칠 정도로 복잡다단한데, 무한한 과정을 넘어선 해결책까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높은 경지에서 세상을 살피는 대현자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최근 오픈소스(무려 오픈소스) 프로젝트 그룹들을 보면서 층위의 간극을 최소화하고 능력을 펼치는 사람들과 거기에 돈이 모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의 힌트는 얻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회사 프로그램의 소스는 중요 자산이며 이것이 공개되면 경쟁자들이 너도나도 쉽게 따라할 것이 아닌가 - 그럼에도 소스를 공개하는 혹은 공개된 소스로 사업을 전개하는 쪽에 왜 투자가 진행되는가? 레드햇과 미란티스에 대해 많은 분석가들이 왈가왈부 해왔지만 레드햇과 미란티스의 털끝에도 못미치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세상의 과반수인 것을 감안하면 잘난 분석가들의 콧대도 좀 찌그러드는 것이 사실이고, 스티브 발머 이후 침체된 MS를 끌어올린 사티아 나델라의 오픈소스 예찬에 더해 구글의 텐서플로와 알파고 또한 소스가 공개돼있다. 찾으면 너무 쉽게 잘 찾아지는 미주/유럽 각 IT 클러스터에 있는 수많은 오픈소스 회사들이 신규 투자를 받아가며 매출을 늘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스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불과할 뿐이다. 핵심 알맹이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그룹 - 메인테이너 그룹에 있는 게 아닐런지. lean startup이 소규모 특수전 부대로 명성을 높이는 쪽이라면 오픈소스 메인테이너 그룹은 군단사령부에 해당된다. 대규모 인원도 아닌데 왜 군단이라 칭하느냐 - 대규모 아이언맨 군단이 와서 큰 전투를 벌이는데, 왜 토니 스타크와 제임스 로드 둘만 왔느냐고 따지는 쪽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이들이 다루는 소프트웨어 모듈들은 모두 용도별 아이언맨 수트에 해당된다. 게다가 일정 규모 이상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진짜 밑바닥 부터 시작된 오랜 전쟁 경험 - 긴 창을 잡고 30분간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면 느낌이 어떤지 직접 느껴본 - 이를 통해 늪지대면 늪지대에 맞는, 산악지대면 산악지대에 맞는 역량을 응집해온 바 - 다른 신생 그룹에서 단순히 편제를 흉내낸다고, 각 병기들의 제원을 알았다고 단기간에 그들과 같은 종합적 역량을 펼칠 순 없다. 5명 타는 탱크에 언제 4명 태워도 되는지, 그런 노하우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조차가 어려울테니. 더해서 소프트웨어 배포에 사실상 물리적 한계는 무시되기에 후발로 따라오는려는 신출내기 군단이 설 땅도 좁으므로 당연히 투자자라면 역량이 증명된 노련한 군단에 베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것은 리버풀 축구팀이 무한히 복제돼 전세계 모든 스타디움에서 동시에 경기를 펼칠 수 있게 됐는데 - 리버풀의 4123 전술과 등번호/이름만 따라한 신생 축구팀에게 베팅할 도박사들은 없을 게 뻔할 것과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로 - 소스 공개를 통해 돌아가는 구조가 검증된 상태로 두는 게 낫지, 앞뒤 없이 그냥 감춰둔 쪽은 오히려 더 불안해 보일 수 있다는 사실(프로그래머들의 눈에는 더더욱).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1976년생. 하지만 그는 코드의 밑바닥 부터 시작해서 - 이미 거대 자본의 컴퓨팅 파워(엄청난 규모의 전쟁 물자)를 등에 업고 여러 큰 전쟁을 치러낸 노련한 군단사령관이며(백발의 마법사로 보이기도 한다), 휘하 장수들 또한 굳건하게 체계를 지휘하는 중이다. 구글이 딥마인드가 보유한 소스 좀 공개했기로서니, 데미스 하사비스 군단에 어디 생채기라도 나겠는가? 소스를 먼저 공개하고 시작하는 다른 프로젝트들도 마찬가지이다. 층위 사이의 추상적인 간극 없이 자신의 장악력을 온전히 투영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사람들은 - 중장기적으론 직접 장악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도록 설계와 견적에서부터 노련함을 터뜨린다고 한다. 물리적 장벽 없이 글로벌 경쟁과 글로벌 협력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세상에서 - 허울 좋아보이는 껍데기가 무엇인지, 진짜 알맹이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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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9. 9. 17. 21:21 단상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들 - 들을 땐 그냥 담담하게 듣고 말았지만, 가끔은 곱씹어 보게 된다.

 더운 여름 어느날, 퇴계에게 제자 되기를 청하러 두 사람이 찾아왔다. 당시에도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한 면접 같은 게 있었던 모양. 입학 면접을 보기 전 같은 방에 들어가 대기하던 두 사람. 퇴계가 하인을 시켜 이 두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 오라 했는데 - 한 명은 날이 너무 더워 못 견디겠다며 옷을 훌렁훌렁 벗는가 하면, 밖으로 나와 물가에 가서 어푸어푸 세수까지 하더라는 - 다른 한 명은 그대로 꼿꼿이 앉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고. 퇴계는 의외로 흐트러짐 없던 사람을 그대로 돌려보내고, 더위를 못 견뎌하던 사람만 제자로 삼았는데 - 인간미가 없는 사람은 학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한다.

 우암과 허미수는 당대 두 붕당의 거두였는데, 임금 앞에서 서로 상대방의 목을 쳐야 한다고 아뢸 정도로 대립중이었다. 우암이 큰 병을 얻자 곧 아들을 불러 하는 말이 - 허미수에게 가서 처방을 받아오라고 - 허미수는 학문 뿐만 아니라 의술로도 높은 경지에 이르렀던 인물. 우암의 아들은 적군의 수장이나 다름 없는 허미수에게 처방을 받아와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많았으나, 허미수는 우암의 증상을 듣고 흔쾌히 처방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 처방에는 비상이 들어가있었고, 당연히 우암의 진영에서는 이 처방대로 약을 지어선 안 된다며 격론이 일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암은 허미수의 처방을 믿고 비상이 들어간 그대로 약을 지어 먹었고, 다시 건강을 회복했다. 당대 두 거두의 인간적 도량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학자로서의 자질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정치가로서의 도량 이야기가 아닐런지. 열심히 배울 때의 자세와, 나아가 그것을 실천할 때의 자세가 어때야 하는가 되짚어주고 있기도 하다. 진솔하지 못하고 - 뻣뻣하고 고지식한 사람이 그 고집과 체면을 꺾고 자신의 실수나 오해를 온전히 끌어안으며 그것을 교정해 나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아가 진솔한 학문을 하지 못한 채 성장하여 꽉 막힌 정치가로 변모한 사람이 인간적 도량을 발휘하여 - 의견이 달라 날카롭게 대립하던 사람들을 향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의나 의리를 발휘할 것이란 믿음을 가지기도 힘들다.

 세상 숨가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디 인간미 충만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을 빛내주길 바라는 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해 옛 사람들의 통찰을 엿보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퇴계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대로 다른 스승을 찾아가 배움을 계속한 끝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훗날 사화에 휘말려 크게 해를 입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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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9. 8. 10. 16:02 단상

 TV라고 틀어봤자 공중파 채널 5개가 전부이던 시절 - 요즘 어린이, 청소년들이 K팝 아이돌에 열광하듯 SBS, KBS, MBC 3사의 가요 프로그램들을 열정적으로 꼭꼭 챙겨보던 때가 있었다. 운 좋게 실시간으로 봤던 서태지의 데뷔 무대김성재의 솔로 데뷔이자 마지막이었던 무대 등 굵직하게 남아있는 여러 기억들 중 하나 - 바로 유승준이 3집 '열정'으로 복귀하던 첫 무대. 이미 2집 '나나나'에서 보여줬던 왼쪽 더듬이 헤어스타일은 또래 남자들이라면 다들 한 번씩 따라해봤던 시기. 유승준이 또 어떤 모습으로 복귀 무대에 나타날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나는 무대가 끝나자마자 주체할 수 없는 큰 충격에 빠져버렸다. 유승준이 정말 예상 못했던, 빡빡 삭발한 머리로 나타나 숨쉴 틈도 없이 무대를 휘젓고 다녔기 때문. 마음속으로 '어쩌지? 어쩌지?'를 되뇌이던 나는 어둑해져가던 시간에 그대로 돈 얼마를 들고 동네 미용실로 뛰쳐가 머리를 삭발해버렸다. 몇 cm로 할 거냐는 미용실 아주머니의 질문에 "몰라요, 그냥 짧게요."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다음날 등교 후, 내 뒤에 앉았던 여자애들이 처음에 나를 몰라봤던 건 덤. 물론 시원하게 보기 좋다는 반응을 보여줬던 진실된 나의 팬(?)들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챙겨보고, 우러러보고 - 유행하는 춤이면 춤, 패션이면 패션, 스케이트보드 등등 관심사가 생길 때마다 청소년기의 호르몬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와 아무도 못 말릴 노도(怒濤)를 이루어 주변까지 질풍처럼 휩쓸던 그 때 - 바로 그 때의 열정, 격정은 딱 그 나이 때의 그것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삭발은 외형적으로 표현되는 열정 중에서도 단기적인 속성을 가진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보다 열정적이고 진지해졌다 혹은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인상을 외형적으로 누군가에게 빠르게 표현/전달하기에는 이만한 수단 찾기가 또 힘들다. 외형적으로 표현되는 열정 중 장기적인 속성을 가진 건 삭발과 크게 대비되는 긴 머리카락과 긴 수염이다. 머리카락이나 수염에 신경쓸 틈도 없이 무언가에 오래 몰두해왔다는 표현이 된다. 학자 혹은 운동선수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일반적 감성이다.

 물론 외형적으로 표현되는 열정 말고, 내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열정도 있다. 20대 초반 어린 시절의(당시엔 내가 어리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지만) 많은 고민과 무거운 압박감 - 내 도피처는 주로 온라인 게임이었다. 뭘 해야 좋을지 이전에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조차 자세히 되짚고 싶지 않았던 시기. 하릴없이 게으르게 도피적/은둔적 생활을 하며 계속해서 뒤틀려 가는 것만 같았던 - 하지만 뒤틀려가는 시간 내내 콱 막혀있는 가슴 속에는 훗날 터져나올 에너지들이 꾸역꾸역 쌓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느낌도 있었다. 나는 이것을 '뒤틀린 장작의 시간'이라 부르기로 했다. 언젠가 자기에게 꼭 맞는 욕망(불쏘시개)을 만나는 날이 오거든 그 때 비로소 활활 타오르기 위해, 지금은 그저 자연스럽게 메말라가고 뒤틀려가도 좋다는 그런 시간. 이것은 내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열정 중에서도 장기적으로 축적되는 열정이 아닌가 싶다(물론 어떤 작가들은 1주일 중 5일간 뒤틀렸다가 이틀간 타오르는 짧은 주기를 반복한다고도 하지만). 그리고 지금 시점으로는 꽤 오래전인 - 나크 김동건 님의 '갈망의 아궁이' 이야기를 듣고는 무릎을 탁 쳤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책임져야 할 가정도 생긴 마당에 -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느끼고 싶다는 이유로 일부러 나를 '뒤틀린 장작의 시간'으로 몰아넣을 수 없는 노릇. 열정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곧 변화하고 싶다는 욕망 - 이것은 현재 열정적이지 못하다는 반증. 이렇게 계속 쳇바퀴 출퇴근을 반복하는 와중 어떤 범상치 않은 계기를 통해 갑작스레 큰 에너지가 응축되어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추진하며 불타오르게 될 것을 바랄 것인가(이를테면 우리 동네 귀여운 고양이에게 해코지한 놈이 누군지 꼭 찾아내야 겠다던가) - 어디 이게 자기 마음대로 될 일인지 - 이렇게 단기간에 흐름을 타는 열정적 에너지는 거진 신이 점지해주는 수준의 '운'의 영역이 아닌가 한다. 하여 이런저런 사례들을 찾다 보니 - 보통 자기계발서라 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곱지 않게 보곤 하는데, 실천적인 방안들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글들은 나름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정보들을 모아 경향성을 알아봤다.

 내면의 변화와 외면의 변화는 서로 연결돼있는 바,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이 처한 환경(외면)을 변화시키는 방법론(갭 이어 혹은 어딘가에 가서 한 달 살아보기 등등)들도 있지만 이것들은 당장 여의치가 않다. 내면의 변화를 보자면 - 이쪽은 근원적으로 자신이 가진 욕망에서 오는 것이고, 이 욕망을 비전으로 보다 구체화 시켜보라는 이야기/방법론들이 한바가지. 사실 자신의 욕망을 가감없이 들여다보고 그것을 차근차근 구체화 시킨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진정 차분한 상태로 돌입시켜야 하는 에너지와 부지런해져야 하는 에너지를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므로 쉬운 일로 치부하긴 어렵고 - 또 진짜 근원의 욕망을 따라가겠답시고 직장을 관두고 세계 최고의 누드 사진 사이트를 만들겠다 나서면 - 찢어진 팬티만 입혀진 채 와이프에게 집에서 쫒겨날 게 뻔한데다 친척 모임에 얼굴 들고 나가기도 어려워진다(물론 누드 사진 사이트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일을 존중한다 - 다만 내게 부적합할 뿐). 이렇게 근원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어야 하는, 그래도 나름 근원에 꽤 근접한 것 같은 욕망들을 짚어내고 나면 이제 내면의 변화(의미 충만한 물리적 환경 변화는 당장 힘드므로)가 요구되는데 - 탑다운 방식으로는 파워풀한 영감을 얻는 것이 제시되고(급진적, 연역적이다), 바텀업 방식으로는 더 나은 생활 규칙을 가지는 것이 제시된다(점진적이고 귀납적이다). 앞서 적었듯 전자는 '운'의 영역으로 보이고, 결국엔 후자로 기울게 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분기별 계획도 있어야 하고, 월별 계획도 있어야 하고 또 매일매일의 흐름도 신경써줘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또 한바가지. 가만 생각해 보니 요새는 매일매일 하던 계단 출근도 안 하고 있고, 지하철에 탈 때마다 귀에 꽂던 영어 공부도 안 하고 있는 상황. 구체적인 계획(Progress)이 없이 무조건적으로 행위(Habit)만 하다 보니 - 매우 오랜 시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지쳐버린 것일까. 큼직큼직하게 분기별 계획이라도 세워볼까 하다가, 애초에 무언가에 대한 열정 자체가 희미하기만 한데 계획은 무슨 계획 - 나이들면 열정 자체가 희소 자원이 된다던 이야기가 최근 자주 보였는데 -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또 순간 반대급부로 격렬하게 이를 부정하게 된다. 난 아직 젊은데? 지금 내게 꼭 맞는 욕망(불쏘시개)만 만나면 활활 타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만, 이제보니 직장에 다니며 가정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시나브로 메말라가고 뒤틀려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현재의 모습이 계속해서 부족한 것만 같고, 게으른 것만 같고 - 그래서 잠시나마 열정적으로 열정을 되찾는 방안들을 찾아다녔던 것은 아닌지. 어느새 또 이렇게 '뒤틀린 장작의 시간'으로 지내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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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9. 7. 13. 14:20 단상

 합리는 누가 지어냈고, 신념은 누가 지어냈을까? 합리와 신념은 서로 대비되는 의미인가? 데카르트니 루소니 하는 철학자들은 타인이고, 나는 본인일진대 - 타인과 본인 사이 연역적으로든 귀납적으로든 결국엔 간접적으로 전달된 개념들 - 이 전달 결과로 구성된 개념 우주는 전염된 것인가, 촉발된 것인가(배움으로 비로소 가진 것인가, 아니면 그저 끌어내어진 것인가)? 개념, 의미, 철학 등을 논하는 일견 무거워 보이는 말들은 기실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서로의 이해를 정량적으로 가늠할 방도가 없고 - 가늠할 수 없다는 그 허무함에 개념 우주의 전체 또한 무한히 가벼워 보이기 시작 - 떠돌아다니는 전자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나라는 사람을 하나의 원자로 본다면 - 원자핵에는 정체성이, 주변에는 개념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 - 원자핵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듯 정체성에도 개인적/사회적 정체성이 있고, 전자에 준위가 있듯 합리/신념으로 표현되는 개념 요소들에도 각각의 준위가 있는 게 아닐런지. 개인적 정체성은 자존심과 감정을 예로 들 수 있고, 사회적 정체성은 관계와 체면을 예로 들 수 있다(쿼크에 해당한다). 개인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은 서로 강결합, 그리고 정체성과 이 겉을 도는 개념은 서로 약결합으로 보지만 - 정체성과 가깝게 있는 개념 요소들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을 것이므로 그 준위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주변을 보자.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나 주일마다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신념을 버리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 중 일부는 그래도 합리적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였고 - 창조론을 부정해온 다수는 진화론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또 다른 합리의 개념들을 층층이 쌓아올렸다. 집약된 합리 위에 신념처럼 솟아올랐던 여러 유명 이론들이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추거나 내용이 크게 바뀌는 경우들이 있고, 이는 공학과 의학을 가리지 않는다. 스스로를 무교라 생각하지만 물리학의 표준모델을 완전무결의 신처럼 모시는 사람도 있고, 또 어느 누군가는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목숨을 바쳐야만 해낼 수 있는 숭고한 일을 해내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가 무척이나 다르지만 또한 서로간의 교류가 없을 수 없는 우주에 살고 있으니, 눈으로 보는 게 빛이고 귀로 듣는 게 소리 - 빛과 소리는 모두 떨림(파형)이며 모니터에 보이는 글/그림 그리고 스피커의 소리 신호 모두 전자를 통해 오고 있고 - 의미가 담긴 전자의 흐름에는 우리의 합리와 신념이 엮여있다. 물론 서로간의 교류 또한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교류를 통해 각자의 합리와 신념을 재강화하거나 갱신하기도 하는데 - 상대방의 개념을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기도 하고, 행여나 자기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충돌이라도 발생되면 핵분열급 열불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한다. 드물지만 정체성의 변화를 겪으며 이전과는 다른 원자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도 발생하며 - 이는 마치 대자연의 예측불가함 속 어떠한 흐름/패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범위를 확대해 원자들의 결합인 분자와 그 위의 - 즉 가정이나 국가와 연결해 생각해볼 수도 있으며 대개 그 문화권의 법률이 합리와 신념의 경향성을 복합적으로 보여주곤 한다(대마초가 합법인 나라와 불법인 나라).

 이러한 인식 토대를 가지고 살아가며 내 나름의 원칙도 몇 가지 습득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좌/우 노선을 먼저 정해놓지 않고 사안별로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던가. 현재 상대방과 하는 대화가 합리의 영역인지 신념의 영역인지 빠르게 판단 - 물론 합리와 신념은 사실상 복합체나 다름없지만 - 만약 상대방의 신념이 강하다면 되도록 대화를 빨리 끝맺기 위해 노력한다던가(많은 경우 이게 오히려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정체성을 건드리는 감정적 언어가 섞였다면 그 단어/문장만 흘려버리고 핵심만 파악하려 한다던가. 하지만 깜냥껏 살아가는 와중 다양한 양상의 이슈들을 접하다 보면 - 아무생각 없이 그냥 하고픈 말 하고 말아버리는 게 맞을 때도 있고, 돌아가는 원리가 너무 복잡다단해 뭐라 한 마디 시작하기조차 겁나는 경우도 있고 - 아무래도 합리와 신념 따지다 둘 중 아무것도 못 챙기는 경우가 아닐런지. 큰 파도가 오는지 마는지, 그 뒤의 바람이 어디서 일었는지 - 전자가 왜 생겨났고, 중성자가 왜 생겨났는지(왜를 왜 따지는지) - 내가 내뱉는 단어들의 근원이 대체 무엇인지. 그래도 우리는 원자가 만들어내는 교향곡 속에서 피상적인 합리와 신념을 두르고 살아간다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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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22. 11:11 단상

 우리집 사거리 바로 아래 사거리 - 모퉁이 주택의 외벽에는 항상 시계와 거울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1년 365일, 혹시 누군가 부수거나 깨트리기라도 하면(심심찮게 주취자의 화풀이 대상 혹은 누군가의 심술 대상이 되곤 했던) 금새 또 새로 구해다 붙여놓던 것들. 내가 이 동네에 오기 훨씬 전부터 있던 것들이라는데, 아무래도 그 집 주인 되시는 분이기에 마음대로 주택 외벽에 그것들을 붙여놓을 수 있지 않았나 싶고, 마치 자신의 책무인 마냥 계속 자비를 들여가며 제공해줬던 것을 보면 -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대략 한 달쯤 전부터 시계와 거울이 나란히 떨어져나가 휑한 흔적만 남아있는 상태. 혹시 집 주인 되시는 분이 돌아가신 건 아닌가 하여 그 벽 아래에 국화라도 한 송이 놓을까 하다가 - 와이프가 전후사정 정확히 모르면서 남의 집 앞에 함부로 국화를 놓는 것도 이상하다고 만류하였다. 여하간 추측컨대 분명 그 집 주인 되시는 분의 행동이었으리라 - 대문 앞 명패의 함자가 도타울 돈(敦) 자에 모일 회(會) 자로 되어있으니 앞으로는 그 분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려 그쪽 사거리를 김돈회 사거리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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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4. 14:29 단상

 영화 '관상'을 워낙 높게 평가하고 있는 터라, 영화 '궁합'도 내심 기대하며 틀었었는데 - 웬만하면 재미없거나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라도 일단 틀었으면 끝까지 보는 게 당연한 것을 - '궁합'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중간에 꺼버렸었고, 이 충격 덕분에 작년 추석에 개봉한 영화 '명당'은 온가족이 함께 외면하고 말았다. 사실 관상이니 궁합이니 명당이니 하는 점쟁이스러운 말들을 딱히 신뢰하진 않는다. 신뢰는 커녕 오히려 고등학생 시절 읽었던 어느 소설(아마 최인호 선생의 소설이 아니었나 싶은데) 속의 장면 - 출정에 앞서 점쟁이들의 목을 베는 장면 - 이 장면이 너무너무 멋지다고 생각해 계속 그 건조한 문장을 반복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스스로의 의지를 굳건히 할 뿐 어떠한 암시도 필요치 않다 - 혹세무민의 씨앗까지 철저하게 제거하고 나아간다는 그 당당함에 매료되었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관상이니 궁합이니에 더해 꿈해몽까지 찾아보는 것은 동양적 판타지로 삶을 풍성하게 즐기고 싶다는 욕구의 발현이 아닐까 한다. 짧지 않은 세월 축적돼온 숨은 지혜를 배울 여지도 있고 말이다. 손바닥의 생명선이 짧으니 단명할 것이란 말은 의심의 여지 없는 헛소리(흥미)지만, 눈 부위가 어떠어떠하면 으레 사람이 신경질적이기 쉬우니 - 여기서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겪을 법한 어려움들을 나열하기 시작하면 또 그럴싸한 사례의 나열 속에서 숨은 지혜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나.

 어쨌건 이번 설 특선 TV 영화 중 '명당'이 끼어있길래, 어차피 공짜로 보는 거 '궁합' 보단 좀 낫게 나왔을까 싶어 기다리는 중이다. 그놈의 터가 어쩌니저쩌니 한참 떠드는 말들이 나올텐데, 불현듯 우리집 터에 관련된 이야기도 떠올랐다. 여기저기 망한 집, 흥한 집 이야기들이 이미 수두룩한데 우리집 이야기 몇 마디 더 보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또 어디 메이웨더 같은 권투 집안이나 대대로 이어지는 맛집 같은 흥밋거리도 아닌 것을 - 어차피 내 서랍 한구석 같은 블로그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

 아버지를 통해 전해 듣는, 그리고 아버지는 또 그 윗대를 통해 전해 들어온 이야기들 - 각 마을 촌장들이 모여 돌아가면서 왕을 하기로 했는데, 욕심 많은 김 씨가 혼자서 왕을 하기 시작했다던가 하는 너무 먼 이야기들은 대충대충 흘려 듣곤 했다. 이방원 편에 붙었다니까 뭐 그랬겠거니. 나중엔 음서제 혜택 보면서 꿀 빨았겠거니(공부 스트레스만 좀 있었겠지). 하지만 너무 먼 이야기 말고 당장 우리집과 직접적으로 연계되기 시작하는 시점 부터는 귀가 쫑긋 세워지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대에 포크레인으로 다 쓸어버린 뒤 팔아버린(할아버지가 아파트로 이사가신 뒤에 벌어진 일) 한옥 터는 8대조 할아버지가 어느 스님에게 부탁해 잡은 터라고 한다. 그 스님 왈 - 이 터는 거북이 등처럼 낮고 편안하게 가야 대대손손 복을 받을 수 있는 터라고 - 해서 집을 크고 높게 짓지 말라 했다고. 집을 크고 높게 지으면 정면에 보이는 산 그 너머의 산이 빼꼼히 이 집을 쳐다보기 시작하는데, 그게 누군가 이 집의 재물을 탐하는 것과 같다고. 그런 이유로 스님이 잡아준 터(대숲 터)에는 거북이 등 모양을 내려고 서까래 위에 짚단을 올린 집(지붕만 짚단으로)을 지어뒀고, 대숲 터에서 좀 내려와 마을 중앙으로 가면 있는 삼사재 터에 여러 채들이 지어져 사람들이 생활했다고 한다. 삼사재는 비교적 늦게 지어진 것이라는데, 덕분에 삼사재 입구에 있는 - 덩그러니 삼사재만 있는 규모에 비춰 좀 쓸데없이 지어진 듯한 나무 문의 정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옛날엔 이 나무 문 옆에 문간방이라는 것도 있었고, 거기에 한 가족이 따로 살았었다는데. 세월이 흘러 새마을 운동으로 마을에 도로를 내야 한다, 뭘 지어야 한다 하니 하나씩 헐어 비켜주고 물러주고 하여 지금의 삼사재 규모가 된 것이라 한다.

 계속 그렇게 대숲 터에는 거북이 등 모양 집이나 두고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지만(대대손손 나에게까지 복이 왔을까),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겠나. 대숲 터의 거북이 등이 망가진 이야기는 고조할아버지 대에 시작된다. 고조할아버지는 면우 선생의 제자이자 친구이자 후원자셨다고 전해지는데, 언젠가 면우 선생의 무슨 서원인지 무엇인지를 문화재에 등록하려면 우리가 재산 포기에 동의를 해줘야 한다며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찾아오셨던 일을 보면 실제 친분이 있으셨던 것 같다. 어쨌든 고조할아버지는 말과 수레에 먹을 것들을 잔뜩 싣고 한 번 출타하면 몇 달이고 집을 비운 채 언제 돌아오실지 몰랐다 하는데, 대체 무엇을 하고 다니셨는지 알 방도가 없으나 일견 위치상으론 여기저기 쏘다니며 시를 읊기 좋은 곳에 집이 있었던 것 같다.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같이 좋은 산들로 둘러싸인 곳에 경상도와 전라도가 모두 가깝고, 잠깐 돌아나가면 커다란 호수도 있는데다 농사 짓는 산골 마을이라 대체로 조용해 가끔씩 돌아와 쉬기 좋은 가운데 마을 옆으로 폭포도 하나 있으니 - 정수리에 폭포수를 맞으면서 내일은 뭐 먹을까, 이제 뭘 공부할까 같은 걱정 아닌 걱정이나 하고 계셨던 건 아닐까 싶기도(마냥 그러기엔 위기가 일상인 시절이었지만). 

 이 고조할아버지가 며느리를 보셨는데 - 왜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버릇없이 커서 방약무인(죄송하지만) 하고싶은 대로 다 하다 가셨느냐 - 아무래도 증조할머니의 맹목적인 애정이 할아버지를 버릇 없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 어쨌든 증조할머니의 성격이 대단했다는 것과 할아버지가 버릇 없이 컸다는 건 집안 어르신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물론 며느리 잘못 들여 집안이 망했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실제로 면우 선생이 맺어준 혼사라고 하여 온 집안이 경사로 생각했다고는 하나, 부모들이 마음대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해버린 옛날 방식에서 - 혹시나 애정 쏟을 곳이 자식 뿐이어서 그랬나 싶은 것이다.

 고조할아버지가 장기간 출타를 마치고 마을로 들어서시던 어느 날 - 대숲 터의 집에 기와가 올라가있는 걸 보시고는 혀를 끌끌 차시면서 '이제 대대손손 복 받긴 글렀다'고 하셨다는데. 출타 몇 달 새 기와를 올린 범인들은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셨다고. 너희집 잘 사는데 왜 지붕이 이 모양이냐는 주변 사람들의 충동이 있었더란 이야기도 전해진다. 애초에 스님이 처음 터를 잡아줄 때 했던 이야기의 핵심은 '겸손'이 아니었겠느냐는 아버지의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순히 거북이 등을 망가뜨리고 기와를 올렸다고 해서 집이 망한 건 아닐 터. 겸손하지 못했기에 - 남들 앞에서 뽐내고 싶어하고 또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고 - 가정을 뒷전으로 했던 가운데에 여러 일들이 벌어져 왔을 것이다. 행여 못된 짓이라도 했다면, 그 당한 사람이 너희 집은 삼대가 망할 거라는 저주를 하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고 말이다. 과욕 속에 업보가 쌓이는 법이니.

 성장기에 내가 내 집에 살았던 날들은 매우 짧다. 집 주인은 은마아파트에 사는 아줌마이기도 했고, 미도아파트에 사는 아줌마이기도 했다. 집에 전기가 끊겨 냉장고가 녹아 냉장고 밑으로 물이 줄줄 새어나오는 것도 봤고, 번번히 월세가 밀려 오늘내일 거짓말로 버티다가 - 결국 울화를 못 참고 집에 찾아온 집주인 아주머니가 어머니의 손에 들린 지갑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어머니의 뺨을 때린 일도 있었다. 그 지갑이 바닥에 떨어질 때 사방으로 돌려막기용 카드 여러장이 흩뿌려진 건 두고두고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기억한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학원은 커녕 독서실도 못 다니다가 결국 처음으로 독서실이라도 끊어본 게 수능 세 달 전이었었다. 볼 것도 없이 이미 망한 수능인데 독서실에 갖다 바치기엔 너무 아까운 돈이라 며칠 다니다 말고 남은 돈을 빼서 피씨방에 쓴 건 두고두고 잘 한 일로 생각한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나는 복 받기 글러서 별로 복을 못 받고 자란 후손에 해당된다. 

 그렇다고 조상 탓하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 혹시 약간의 재력이라도 있었다면 그 약간 덕택에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은, 이루지 못한 일들이 떠오를 땐 가끔 조상 탓을 하기도 하지만 - 어쨌든 나름의 노력, 남들 다 한다는 그 흔한 노력을 양념 삼아 살다 보니 대단치는 않아도 풀칠은 되는 직업과 경력도 생겼고. 은행 눈치 안 보고 일년에 두 번 재산세만 내면 되는 내 집에서 두 다리 뻗고 잠도 잘 수 있게 된데다 행여 내가 외팔이가 되거나 문둥병에 걸려도 끝까지 나를 데리고 살아줄 것 같은 와이프도 생겼다(잘 사는 사람들이 보면 비웃겠지만 난 이것들을 얻기까지도 너무너무 힘들었다). 2~30대면 모르겠지만, 나이 40부터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세상 탓, 남 탓으로 돌리기가 애매해진다는 평소 어머니의 지론 - 얼마 전 약국에서 받은 약 봉투를 보니 나이가 33살로 적혀있던데 - 20대 후반에 잠시 꿈을 접었고,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기 전 마지막 해인 2019년 - 조상 탓, 세상 탓 안 하고 다시 다음 목표로 살아가며 40대를 준비하려면 '겸손'의 의미를 재해석 해야만 한다. 뽐내지 말고 절제하라는 의미의 '겸손'이 아니라, 여전히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멀다는 의미의 '겸손'. 

 해운대 엘씨티 프리미엄 층에서 창문 앞 커튼을 열고 내 자식이 강아지와 함께 해변을 뛰노는 장면을 볼 때까지, 그리고 그 자식이 혹 공부머리가 없더라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저는 공부머리가 없어 가방끈이 좀 짧습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건물들만 조심조심 관리하고 있습니다'라고 아주 겸손하게 말할 줄 아는 인성을 갖출 때까지.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 사진이든 음악이든 뭐든 - 그 일을 해나가기에 경제적 부족함이 없을 때까지. 비버가 나뭇가지를 모아오듯 돈을 모아야 한다. 학력과 권력은 재력에서 나온다(戰力도) - 자본을 쌓으려고, 자본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세상만사 인간군상을 보며 어느새 대자연 속 초라한 인간으로서 또 다른 의미의 '겸손'까지 보게 된다. 물욕을 애써 부정하는 형이상적 교만을 즐기는 것도 그저 잠깐일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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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8. 11. 4. 13:06 단상

 평소 다양한 업계의 여러 트렌드에 관심 많은 사람들에겐 웬 늦바람이냐 싶었겠지만 - 어쨌든 비교적 최근 이슈가 됐던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처럼 워플밸(Workplace Balance) 또한 매우 재미있는 주제가 아닌가 한다. 출근 준비 등의 모든 제반 시간들을 합하면 인생의 대부분을 자기 일터에서 보내게 된다는 주지의 사실 - 과연 내가 일터에서 균형 잡힌 인생을 누리고 있는가 고민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당연히 사람에 따라 모양이나 카테고리가 다르겠지만 - 나는 보통 육각형(벌집) 정도의 방사형 그래프에다 위상, 대우, 커리어, 조직, 운영, 인간관계 정도를 카테고리로 삼곤 한다. 물론 위의 카테고리 키워드들은 상황에 따라 개념적으로 독립적이지 않을 수 있고, 아예 키워드 자체를 다른 것으로 바꿔버려야 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알량한 도식 정도에 꼭 들어맞게 이해될 성질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밸런스를 정량화 시켜보려는 노력은 마치 통증 점수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최고로 아픈 걸 10점이라고 했을 때, 지금 몇 점 정도로 아프냐는 간호사의 질문을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10이 어떻고 5가 어떤지를 확실히 겪어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4라고 하든 6이라고 하든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 또 간호사는 뭘 근거로 나의 4와 6을 판단할 것인가? 그래도 내가 6이라고 하면 6이고, 간호사도 6이라고 알아듣는다. 내가 가중치를 줘서 8이라고 말해도 어쨌든 간호사는 - 이 환자가 죽을 만큼 아프진 않지만, 평소 보단 꽤 많이 아픈 상태라고 알아듣는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될 것 같다.

 먼저 어딘가에 입사를 해야 워플밸이든 뭐든 따져볼 수 있을텐데, 아무리 내가 열심히 알아봤어도 실제 다녀보기 전엔 해당 회사가 실제 어떤지 알 수 없다는 구직자의 리스크는 정말 어쩔 수 없는 듯싶다. 특수한 경우 아니고선 무조건 구인기업이 구직자 보다 손해를 덜 보게 돼있는데 - 구인기업 입장에서는 수습 제도도 있고, 결국 조직이라는 게 특출난 능력자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 이사람 저사람 섞여 평균치로 굴러가게 돼있으므로(조직관리에 뛰어난 회사가 아니라면) 누구 하나 조금 잘 뽑고 못 뽑고로 회사의 밸런스가 크게 해쳐지진 않기 때문. 하지만 구직자는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 웬만한 과감성 아니고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잃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 워플밸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입사 전/후의 차이 없이 계속 같은 요소들이므로 고민거리가 더 늘어나진 않는다는 것. 선택하는 시점에 천운만 따라주면 된다.

 점수 배정은 어차피 각자 나름이겠지만(가중치 설정 포함), 일단 6각형 카테고리 하나당 10점 - 총 60점 만점으로 놓고 보는데 - 내 경우엔 보통 입사 전에는 각 요소들의 평균점을, 입사 후에는 총점을 살펴보는 편이다. 평균 6점 미만은 이력서를 내거나 면접 볼 필요도 없는 회사지만, 구직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5점 미만으로 기준치가 내려가기도 한다. 입사 후에는 총점 30점 미만이면 위험 수위, 25점 미만이면 퇴사 고려로 본다. 6각형으로 각 잡고 보려는데, 아무리 봐도 육각형 모양은 커녕 여기저기 찌그러져 축소돼있으면 이곳은 도저히 내가 살 집이 못 되는 것이다.

 과거 프로그래머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는 평균 점수로 회사를 거르는 등의 기준은 아예 갖고 있지도 않았었다. 위상이나 대우를 고려할 처지도 아니었고, 조직이나 운영 등은 경험이 짧아 판단 근거도 없는 상태였다. 그저 커리어 하나만 보고 입사했었기에 조직이나 운영 등에 불만이 있어도 - 내가 적어도 2년간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마인드셋, 커리어에 대한 높은 가중치 하나로 다른 모든 것들을 커버하며 다녔던 것. 그러다 우연히 협력사 파견 이야기가 나왔고, 마침 트렌디한 기술 - 협력사의 유니티 기술이 탐났던 나로서는 당장 몸 담고 있던 회사의 커리어 가중치가 그대로 증발해리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동기가 미적미적 하는 사이 과감하게 먼저 가고 싶다는 건의를 올렸고, 그렇게 되었다. 상황이 변하면서 찌그러진 육각형을 커버하던 가중치가 없어졌고, 워플밸 이전에 워크플레이스 자체를 리셋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던 것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Y 씨는 조직과 운영과 인간관계에 불만이 많다(조금 보수적인 회사다). 오직 해당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과 - 어쨌든 대기업이 제공해주는 평균 이상의 대우에 가중치를 얻어 찌그러진 육각형을 커버하며 다니고 있는 것인데 - 실질적으로 그 위상과 대우의 가중치를 통해 타이틀과 자산을 축적하면서 결혼과 육아라는 숙제도 멋지게 해낼 수 있었고, 먼 미래에 대비할 체력도 비축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위상에는 별 감흥이 없어지고, 연봉 상승률도 계속 정체 중인 상황 - 가정적으로 지출할 돈까지 많아진다면 대우 카테고리의 가중치와 실점수가 확 줄면서 위험 수위로 접어들게 될 수 있다. 이렇듯 한 번 맞춰진 밸런스가 똑같이 지속되기는 어려운 법이고,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컨디션에 따라 매일매일 이곳 저곳의 가중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도 있다.

 약 두 달 전 불알 친구를 통해 갑작스럽게 이직 오퍼를 받았었는데 - 당시에는 지금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웹 기반 회사에 바로 들이대기도 애매한 듯하여 미적미적 돌려서 의사 표현을 했었다. 지금 회사의 밸런스가 당장 리셋해야 할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고 판단했던 점이 컸다. 이후 지지난 주엔가 오랜만에 와이프와 신촌 거리의 젊을을 만끽하며 안코드란 가수의 버스킹 공연을 구경했었는데 - 왜 일부러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사느냐 당신은 월세를 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참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하기 위해 월세를 내는 중이다 - 라는 가사를 듣고 큰 충격에 빠진 뒤로 월급쟁이 생활 자체가 너무 싫어져서는 - 아예 지금의 모든 밸런스를 과감하게 엎어리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하는 중이다. 복잡다단한 세상 속에서 언제 어떤 이벤트에 휘말릴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야기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대략적으로라도 카테고리와 키워드들을 정리하면서 - 향후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붙잡고 생각을 써볼까 한다.


1. 위상 - 브랜드, 시장, 업종, 성장, 안정, 비전, 관계법령

2. 대우 - 기본급, 상여금, 수당, 지분, 이익공유, 직급, 직책

3. 커리어 - 기술력, 프로젝트, 업무범위, 업무내용, 적성, 성장, 이직

4. 조직 - DevOps, 관리기법, 관리기술, 교육, 체계, 토론, 수렴, 리드

5. 운영 - 공무, 지원, 구매, 위생, 비품, 워라밸, 복지, 문화

6. 인간관계 - 상사, 동료, 공사구분, 친목, 뒷담화,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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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7. 11. 16. 21:44 단상

 에듀테크 업계의 Q사. 임원 두 명과 면접. 어느정도 학벌이 되는 사람을 원하는 듯했다. 옛날에 내가 비슷한 업종의 사업을 구상했었다 하니 아이디어 물어보길래 썰을 좀 풀어줬더니 연신 좋은 생각이라고 해주었다. 내 인성이 마음에 드는데, 연봉을 깎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최종적으론 어차피 연락도 안 왔고, 왔더라도 내가 노가다판에 나갈지언정 몸값 깎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돈도 짜고 차비도 안 주면서 사람을 부르나. 짜증나게.

 SMT 업계의 W사. 먼저 와있던 아저씨 두 명이 먼저 대화중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내 복장을 보면서 옆사람에게 양복 입고 오라고 돼있지 않았느냐고 수근대듯 말했다. 그래서 나는 양복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없는 걸 어쩌나. 남방이랑 정장 바지는 있는데, 아직 마이가 없어서. 그리고 옷 보고 거르는 회사면 면접 볼 필요도 없지 - 개발자 뽑는데 설마 옷 보고 거르겠나 싶었다. 역시나 옷 가지고는 별 말이 없었다(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1차는 종이 시험, 2차는 4대3 면접. 아무래도 SMT 업계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경험해본 경력자나 비슷한 환경에서 일해본 사람을 우대하는 인상이었다. 3차는 인사팀 한 분과 1대3 면접. 3차 면접 때 야근이랑 출장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곧이곧대로 내 생각을 다 말해버렸다. 그냥 짜증이 났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야근이 많으면 많다, 대신 야근수당은 잘 챙겨주겠다고 미리 써놓던가. 아니면 업계 특성상 출장이 있다고 미리 써놓던가. '몸바쳐서 일하겠습니다!'라고 할 기분이 아니었다. 사람 시간 다 뺏기게 왜 이러나. 이런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게임업계 벗어나서 IT쪽으로 넓게 보니 해외 출장 한 두달은 기본인 경우가 상당하고, 오히려 게임쪽에서 왔다니까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야근 잘하겠다고 희한한 기대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고. 희망연봉 물어보길래 내 마지막 연봉 보다 높여 불렀다. 사측에선 2년 넘게 다녔던 과거의 G사 운운하면서 청소도 직접 해야 하는 그런 작은 회사에 잘도 붙어다녔다고, 우리 W사는 매출이 넘사벽이라고 자랑하던데 - 그럼 돈도 더 주지 않겠나 싶었다. 당연히 최종 연락은 오지 않았다.

 W사의 면접 때 함께 했던 아저씨 중 한명이 최종 연봉협상 후 먼저 나간 상태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다른 아저씨까지 총 세명을 모아 잠시간 티 타임을 가지자고 했다(1층 커피숍). 그냥 이런저런 회사 정보나 업계 정보를 공유해보자는 자리였다. 한 명은 나보다 한 살 아래, 한 명은 나보다 한 살 위. IT업계도 말이 개발자 채용이지 실상은 외국 현지(십중팔구 열악한)에 출장 내보낼 고객 대응팀 팀원이나 현장 영업팀 팀원을 뽑는 경우가 허다했다. 출장지가 국내 지방이면 그나마 다행인 거고. 개발 커리어 쌓는 줄 알고 들어갔다가 코드는 대충 겉핥기로만 좀 보다가 기술 영업으로 구르는 사람들. 안타까웠다. 차라리 속이지나 말지. 영업은 영업으로 알맞게 뽑으면 자부심 가지고 일할 사람들 많을텐데. 아저씨 하나는 게임업계에 관심은 많았지만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것 같길래 여러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대충 '아저씨가 N사에 이력서를 왜 내? 미쳤어? 나이랑 학벌을 생각하셔야지. 공채 그거 직종별로 2~3명 뽑긴 뽑나? 극히 드문 케이스가 있겠지만 그게 절대 아저씨는 아니야. 이건 확실해. 그리고 요새 경력자들도 길거리에서 손 빨고 있는데 지금 이 경력으로 어떻게 경력 입사를 하나. 포트폴리오 진짜 눈 튀어나오게 잘 만들었던 내가 아는 O 씨도 결국 나이 때문에 신입으로 입사 못하고 꿈을 접었구만.'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이렇게 착하고 열심인 청춘들을 앞에 두고 왜 사람 뽑는데 자기들의 업무 환경을 똑바로 안 써놓고, 자기들이 생각한 적정 몸값을 안 써놓는 건지 이해불가. 구직자들의 시간이 소중한 줄 모르는 개새끼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도권 회사 혹은 접근성이 좋지 않은 위치의 회사 몇 군데에서 연락이 온 일들도 있었지만 면접을 모두 거절했다. 구로면 구로, 판교면 판교, 상암이면 상암 - 회사들이 몰려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헤드헌터들은 이력서 관련 이런저런 좋은 조언들을 많이 해주었으나, 결과적으로 별 영양가는 없었다.

 조금은 먼 거리에 있었던 E사. 잡플래닛 평가를 보니 악평으로 가득했다. 크레딧잡에서 확인되는 이직률도 엄청났다. 무엇보다도 잡플래닛에 격주 토요일 근무라고 누군가 외쳐놓은 게 하이라이트였다. 당장 연락 왔던 전화번호로 문의 문자를 보냈다. 격주 토요일 근무 맞냐고. 맞다는 답변이 왔다. 면접 취소에 더해 취업 사이트에 신고를 넣었다. 주 40시간이라고 사기치고 있다고. 며칠 뒤에 답변이 왔다. 경고와 함께 조치를 취하도록 해두었다고.

 서울 동쪽의 R사. 단기직이지만 대우는 잘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난 나름 오래 다닐 회사를 찾는 중이라 힘들겠다고 했다. 잡플래닛 평가를 봤다. 내부 직원들은 개처럼 굴리는데 - 프로젝트 컨트롤도 똑바로 못하면서 항상 발등에 불 떨어질 때마다 외부 단기인력들을 돈 많이주고 데려온다는 볼멘소리가 쓰여있었다. 마음속으로 R사 재직자분들께 힘내시라고 말씀드렸다.

 역삼역의 T사. 전시/홍보 쪽에선 나름 유명한 곳인 듯했다. 하지만 크레딧잡 기준 이직률이 엄청났다. 면접을 봤다. 기술적으론 나와 잘 맞는 것 같았는데, 수습 기간 3개월은 급여가 70%라고 했다. 1년을 모두 채우면 빠졌던 30%를 모두 돌려준다는데, 면접관이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 '그런데~ 히힛! 1년을 버티실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데헷!'. 왜 웃지? 이게 웃긴 일인가? 어벙벙한 기분으로 회사 문을 나왔다. 뽑아놓은 사람들이 하도 도망가니까 수습 급여 줄여놓고 나중에 보상해주는 제도를 만들어야겠다는 잔대가리 굴릴 정신은 있으면서, 왜 사람들이 도망가지 않는 환경을 만들 정신은 못갖췄을까? 이 회사는 1차 탈락 결과를 통보 받은 것 자체가 너무 기분 나빴다. 나 설마 이런 회사한테도 까인 거야?

 청담동의 Y사. 면접관과의 일대일 면접내내 모든 것이 수월했다. 업무 강도는 좀 높을 수 있지만 회사 초기라 그렇다고 했고, 연봉도 내가 제시한 것보다 더 주겠다고 했으니 그냥 약속대로 출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용되는 기술들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무언가 찜찜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럴리가 없는데. 이렇게 쉬울리가 절대 없는데. 해당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 평을 찾아봤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하는 게 일상'이라는 이야기와 '주말 출근도 당연하다는 분위기'. 순간 면접관이 했던 말이 내 뒷통수에 푹 박혔다. Y사 대표가 그룹 오너의 아들이라는데 - 9월에 다닌 △사 생각이 덜컥 났다. 오너의 자식들은 대게 오너의 철학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어있다. 직원이란 그냥 돈 주고 일 시키면 되는 존재 아니냐는 사고방식이 뿌리깊게 박혀있을 가능성이 컸다. 면접관 왈 대표가 왜 주말에는 일 안 시키냐는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자기가 조금씩 바꿔 나가려 한다고. 아니, 다 떠나서 나는 주 40시간 기준으로 연봉을 말한 건데 - 면접관은 나를 주 60시간 기준으로 일을 시킬 예정이므로 양심상 돈을 더 올려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주 60시간으로 일할 거면 연봉도 1.5배가 되어야 하는데, 시급 가산까지 따지면 내 연봉은 바로 맨 앞자리가 올라갔어도 옛날에 올라갔어야 했다. 백 단위로 얼마 올라가는 건 되려 내 연봉이 깎이는 상황. 나중에 회사가 성장한 뒤에 보상? 지분 줄 거 아니면 죄다 웃기는 이야기다. 스톡옵션도 높은 확률로 휴지조각 - 스톡옵션 계약서가 무조건 행사자에게 유리하게 되어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종이와 볼펜에게 미안해 해야 한다고. 월요일 출근 취소라고 면접관께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왜 IT업종 사무실이 청담동에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무슨 디자인/아트 업종이면 조금은 이해가 가겠는데. 대체 이 회사가 왜 청담동 한가운데에 있을까? 뭐, 교통이 좋다면 또 모르겠는데. 혹시 대표님 댁 바로 옆인가?

 집에서 가까운 U사. 박사 명함을 가진 분께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게임업계 출신이냐고 물으시면서 '밤 잘새요?'를 아주 밝은 목소리로 연발하셨다. 출장 이야기도 나왔지만 나로서는 이미 캔슬한 회사도 있는데다가 앞으로 구직기간이 더 길어지면 문제가 될 수도 있기에 '회사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비굴한 답변으로 면접 보는 중간중간 내가 대체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임원 한 분 더 오셔서 2대1 면접을 보기도 했고, 그자리에서 오너 면접을 일대일로 보기도 했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불만이 뭐가 있었냐길래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 해서 직접 청소하는 게 불만이었다고 했다. 할 때야 어차피 내가 할 일이니까 보람있게 하자고 마음먹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청소는 청소 노동자에게 맡기는 게 회사나 직원이나 서로 윈윈 아닌가. 하지만 나이 많으신 오너분은 살짝 버럭하셨다. 당연히 직원들이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내 입장에선 오너분의 대답은 빵점짜리 대답이었다. 청소는 청소 노동자분께 맡기고 직원들에겐 회사 일에 집중하라고 배려해주는 모범 회사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이런저런 난관을 뚫고 최종 합격되었고, 출근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와이프가 해외 출장 걱정을 하며 밤에 잠을 좀 뒤척이는 걸 보고 패를 접기로 했다. 솔직히 이대로 죽기엔 참 아까운 패였다. 이미 11월인 시점에 얼마나 더 면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12월이 있다고 안심하기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시점. 하지만 회사가 중요한 만큼 가정도 소중한 법.

 영상 관련 P사. 노트북으로 코딩 시험을 봤다. 인터넷 검색 키워드는 제한되어있었다(정답을 바로 찾지는 못하도록). 화면은 원격 팀뷰어로 보고 계신 듯했다. 문제를 모두 풀진 못했지만 4대1로 면접 보면서 여러가지 논의를 했다. 면접관 모두 나보다 나이는 많아 보였지만 30대로 젊어 보였고, 전부 개발자들이셨다. 회의실에도 이미 관련 기술 장비들이 들어서있었다. 회사가 참 안정돼보였고, 면접장에 들어오신 이 분들이 버티고 계서서 더욱 든든할 거란 생각도 들었다. 크레딧잡에서 본 것처럼 인건비 지출이 높고 인력이 꽉 짜여진 기술 중심 회사였다. 아깝게 2차 면접 일정이 잡히진 않았지만 그건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신입/경력 구분 없이 뽑고 계신 듯했는데, 아무래도 좋은 분을 찾으셨겠지.

 앱 개발 H사. iOS 네이티브 개발자를 찾는 것 같았다. 애플 키보드의 펑션 키랑 Xcode만 적응되면 Objective-C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는데 눈치를 보니 조금 더 어린 사람을 뽑고 싶어하는 듯했다. 뭐, 또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떨어졌는지 어쨌는지 나야 모를 일이지만. 인연이 아니면 말아야지.

 집에서 매우 가까운 V사. 해당 업계에선 점유율 1위를 달리는 나름 탄탄한 곳. 개발팀 직책자 두 분과 2대1 면접. 필요한 부분만 요령있게 물어보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약 두 달 가량 짧고 굵게 면접 훈련이 되어있어서 이래저래 대답이 잘 나왔다. 업종 자체가 회사도 나도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업종이었다(요즘 시기에 나쁘지 않은 업종).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최대한 어필했고, 감사하게도 2차 면접이 잡혔다.

 또 집에서 매우 가까운 Z사. 층 전체가 Z사 영역이었다. 회사가 크고 안정된 만큼 내부에 카페테리아도 보였다. 여기는 U사에 출근할 결심 때문에 면접 참여가 힘들다고 했다가 U사에 대한 생각을 접으면서 부랴부랴 다시 전화해 면접 기회를 다시 달라고 했던 곳인데, 인사팀 담당자분은 좀 황당하셨을 수도 있겠다. 내가 조금 일찍 도착했던 터라 회의실에서 인사팀 담당자분과 10분 넘게 대화 나누다가 면접장에 들어섰다. 넓은 회의실 공간에 사장님이 정 중앙, 그리고 좌우로 넓게 떨어진 곳에 직책자 두 분이 앉아계셨다. 이렇게 거리를 넓게 벌리고 앉은 연출이 괜찮았다는 느낌. 정 중앙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장님의 위엄이 돋보였달까. 1차와 2차 면접 모두 자신이 직접 사람을 살펴보겠다는 의지. 면접자의 실수가 있었음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너그러움. 자기가 일궈놓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정도로 키워놨는데 세상 누가 뭐라 하겠는가). 공학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공부해서 채우면 될 게 아니냐는 인재관. 위 네 가지가 확실히 엿보이는 멋진 사장님이셨다. 입사하게 되면 함께 일하게 될 팀의 책임자 분도 인상이 좋아보이셨다. 하지만 2차 면접은 다음주고, 동시에 진행중인 V사의 2차 면접은 다음날 오전. 이 문제로 어젯밤 와이프와 함께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Y사와 U사를 차버린 상황에 다시 모험을 하기 위해 V사 2차 면접에서까지 모험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2차 면접때 출근 시점을 어버버 얼버무리는 리스크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Z사의 2차 면접에는 개발 포트폴리오도 따로 준비해야 했기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V사에 올인하기로 했다.

 V사 2차 면접. 오늘 오전이었다. 사장님과 임원 한 분 해서 2대1 면접. 회사까지의 출근 시간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되었다. 사장님의 복장과 어투에서 벌써 야전 타입인 게 느껴졌다. 최대한 진지하게 면접에 임했고, 여느 회사와는 다르게 '대화'한다는 느낌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갔다. 어떤 회사가 좋냐고 하셔서 '회사는 성장해야 한다. 일 늘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버티고 있는 회사, 사람 더 쓰는 걸 아까워하는 회사는 매력이 없다. 야망이 있는 회사가 좋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장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대학 졸업 후 있었던, 군데군데 깊게 패인 경력 공백기에 있었던 이런저런 개발 외 경험들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다. 개발에 관련된 경력이 아니면 모두 빼놓고 쓴 이력서였는데, 어떤 종류의 경험이든 넓게 보고 가는 사람이라면 전부 개발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고 해주셨다. 번번한 학벌 없이 가진 거라곤 알량한 몇 가지 경험들 뿐 - 늦은 나이에 겨우겨우 쌓은 3년차 경력인데 - 이력서에 기재한 희망 연봉에서 내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종류의 경험을 다 더해서 연봉을 높여주셨다. 그간 살아온 인생 굴곡까지 다 돈으로 환산해서 사주겠다는 의미였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원한다고도 하셨다. 이건 그냥 게임 끝이었다. 다른 회사들 아무데도 더 볼 필요가 없게 돼버린 것이다. 오케이 사인만 내주신다면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겠다고 했고, 오후에 최종 합격 연락이 왔다. 월요일 부터 출근이다. 어제 방문했던 Z사의 2차 면접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정중하게 취소했다.

 8월 부터 11월 오늘까지. 3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도 정신이 없다. 바로 어제가 택배 상하차 하던 날 같기도 하고. 죽어라고 날 까내리던 B사 사장님의 얼굴을 봤던 게 몇 년 전 같기도 하고. '밤 잘새요?'라는 멘트가 귓가에 울리기도 하고. 추운 손을 비비며 G사의 재활용 분리수거 박스를 비우던 게 오늘 점심 때 같기도 하고. 1월에 다닌 회사는 대체 무슨 용기로 뛰쳐나왔으며, 9월에 다닌 회사는 또 무슨 용기로 뛰쳐나왔을까. 간이 배밖으로 나왔는지 - 그깟(?) 야근/출장이 뭐라고 오라는 회사에 안 갔을까. 

 모르겠다. 인생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봤던 글귀처럼 바닥에서 시작하는 인생이란 그저 무지를 경계하면서 한 계단씩 올라가면 될 뿐인 걸까. 그래도 잠시나마 스스로를 좀 칭찬해 주고 싶다. 잘했다. 이공계 업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단을 비교적 빠르게 잘 했다. 결혼 참 잘했고, 경력도 잘 쌓았다. 대학 잘 나오고 직장 잘 풀린 사람들에겐 참 보잘것 없는 경력이겠지만, 나에겐 무엇보다도 소중한 경험이고 성장이었다. 과감할 땐 과감했고, 돈이 필요할 땐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싸게 팔지 않으려 끝까지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다. 식상한 멘트겠지만, 나는 오늘 무언가를 성취한 게 아니라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지난주에 구해줬던 쥐가 은혜를 갚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쩔 수 없이 한반도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그런가 낭만적이고 고전적인 생각도 하게 되는 듯하다. 검색어 유입 상위권에 항상 꿈 해몽이나 조상님 묘 이장이 뜨는 블로그의 주인 답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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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7. 11. 16. 19:23 단상

 9월이 지나고 10월이 된 뒤에 다시 △사를 생각해 보니, 자연스레 올해 초에 1달 다니고 관뒀던 M사가 떠올랐다. △사 사장님 못잖게 M사 오너님도 지위와 명성을 가지고 갑으로만 살아온 세월이 긴 분인지라 - 나름 자기 시간 내서 컨설팅 해주러 온 손님을 - 자기가 듣고싶은 이야기 끝나자마자 그만 가보시라는 사인 보내려고 일어나서 바지춤 추켜올리면서 S 씨에게 뒤늦게 차나 과일 가져오라고 외치는 모습 보여주셨었는데. 컨설팅 오셨던 손님이 그래도 나름 자기 회사에선 사장이셨는데 이정도 눈치도 모를까, 컨설팅 해주는 대신 자기 영업 시간 10분 정도 가져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그만 일어서던 때에 지었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왕년의 파워와 인척의 힘. 사업에 분명 필요한 부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손님을 대하는 그 모습 하나가 참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고도 생각한다. M사의 대표님 포함 그 아래 일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사회 기준으로 '나이 어린' 분들인데,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우게 될 것인가. PD라는 사람도 M사 오너에게 빌붙어서 어디 교수 자리나 하나 얻어볼까 하는 부류였다. M사 오너와 PD의 인연은 서로간의 필요에 의해 이어진 꽤 오랜 인연이었고, 그것은 갓 들어간 내가 깰 수 없는 부분이었다. 까불지마 - 내가 M사 오너 돈 빌려서 사장놀이도 해봤던 사람이야 - 라고 내 샅바 잡고 던져버리는데, 나야 뭐 훌훌 모래 털고 '내가 졌습니다'라고 나오면 그만 아니었던가. 무슨 정치질하러 입사했나.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때의 퇴사 결정은 잘 한 일이었다. 더불어 △사에 대한 판단도 잘 한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이기 시작했다. 회사는 회사고, 직원은 직원이다. 언제든지 문 열고 나올 수 있지 않나. 판단을 천천히 내려야 할 때도 있고, 아주 빠르게 내려야 할 때도 있는데 - 그래도 나름의 과감성은 갖추지 않았느냐고.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바로 그 다음 일정을 진행해야 했다.

 10월 부터는 워크넷도 워크넷이지만 사람인 위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6개 구를 중심으로, 게임업계는 되도록이면 제외하고 봤다. 와이프가 게임업계를 워낙 안 좋게 생각해서 내가 계속 과거의 미련만 가지고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넥슨이나 스마일게이트 같은 큰 회사 들어가도 어차피 목숨은 파리 목숨인 흥행산업인데다 넷마블 처럼 더러운 업무환경으로도 악명이 높고, 그 좋다는 엔씨소프트도 프로그래머 한 분이 안타깝게도 자살을 택하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컴퓨터로 데이터를 만들고, 가공하고, 처리하는 건 IT업계 공통이므로 IT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나름 넓게 움직여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DB와 WEB을 공부하면서 가능 영역을 넓히기 시작하기도 했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낸 이후 10월 추석연휴가 끝나면서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었다.

 강남쪽의 상장사인 ◇사. 나를 부르기 전까진 내부적으로 게임쪽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는지 외부에선 전혀 모를 회사였다. 나름 VR이니 유니티니 하는 기술들을 시험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쪽은 빌딩 엘레베이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가 가려는 층을 누르면 인공지능이 여러대의 엘레베이터 중 가장 빠른 엘레베이터를 지정해 주는 방식이었다. 함께 면접 봤던 신입 한 분은 군 장교 출신인지 아직 군기가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결과는 꽝. 어쨌거나 탄탄한 돈줄이 있으면 사무실을 잡아도 참 럭셔리하게 잡고 시작할 수 있구나 체험해볼 수 있었다.

 구로쪽인 줄 알고 면접 잡았는데 사무실은 전혀 다른 동네였던 B사. 구로에서 사업하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어떻게든 인맥을 동원해 다른 회사 사무실 구석에 작게 자리를 얻어 생명을 연장중인 회사였다. 이 회사 사장님과 일대일 면접을 보았는데, 주로 나를 까내리는 면접이었다. 5월부터 경력이 끊기기 시작한 걸 특히 안좋게 보는 듯했다. 자기는 경력이 끊겨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덕분에 앞으로 이 부분을 잘 대비해야 겠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자기 상황이 안 좋고, 자금 여력도 없다 보니 어떻게든 면접자를 까내려서 자존감과 몸값을 낮춘 뒤에 '내가 키워줄게' 같은 멘트를 날려야 하는 상황인 듯했다. 자기가 만든 설계 프로그램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기가 C++을 얼마나 잘하는지, 자기가 따놓은 대단한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지 등등을 자랑하는 사장님이었는데 - 내가 설마 거기에 넘어갈까. 아무리 취업이 급해도 불량은 걸러야지. 사장님 자체는 키 큰 공학자 타입이었다. 공학도들 중에 키가 큰 타입들이 심심찮게 있어서 나는 따로 분류를 하는 편인데 - 키 큰 공학도가 사악한 기운을 받아들이면 관상이 어떤 식으로 변할 수 있는지 잘 관찰할 수 있었다(물론 농담이다).

 10월 중순쯤 되자 공고 올라오는 것도 시원찮고, 면접 제의도 끊겼다. 돈이 필요하다 보니 벼룩시장을 보게 되었고, 일당제로 돈을 받는 택배 상하차에 나가게 되었다. 10월 24일 부터 26일까지, 10월 30일 부터 11월 2일까지 나갔으니 일수로는 총 7일 일한 셈이다. 중간중간 빠진 날은 면접이 있었거나 주말이어서 빠진 것이었는데, 일 끝난 뒤 가까스로 몸과 정신을 부여잡고 침대에서 골골대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 나가는 식이었다. 결혼 후 급격히 살이 찌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옛날 체력이 어디 가진 않았구나 - 나 아직 젊고 쌩쌩하다 -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는 시기였다. 뭘 복잡하게 따지나. 세상에 이만큼 정직한 일이 어디있나. 아무리 급해도 좆같은 환경에서 좆같은 대우 받고 일하진 않겠다 - 그냥 몸으로 일하겠다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다. 시급 1만원을 받고 일을 시작했는데, 나는 인력소개소에서 와서 그랬고 이쪽 하청업체와 따로 계약을 맺는 사람들은 시급 6500원에 5시간 초과시 1.5배 가산인 듯했다. 하지만 난 이런 줄도 모르고 시급 1만원 아니냐고 했다가 알음알음 소문 퍼져서 하청업체분이 인력소개소에 전화해서 따지신 듯했다. 결국 소개비를 떼게 되었고, 받는 돈이 좀 줄게 되었지만 행여나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 똑같은 일 하는데 형평성 문제 때문에 마음이 안 좋게 되면 일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어서 따로 따질 생각은 없었다. 이건 구조의 문제니까. 한 달 만근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위로금 형식으로 나머지 돈을 다 보상받으면서 최종적으로는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받게 되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건 고정적으로 장기간 일할 사람을 최대한 붙들어 두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기본 처우를 정비해서 양질의 인력들을 붙잡아두는 게 최상이겠지만.

 ♤택배의 서브 지점이었는데, 카고 트럭이 엄청나게 기다란 컨테이너를 끌고 뒤로 주차해오면 컨베어 벨트를 가동시켜 그 위로 택배 물건들을 하나씩 내리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컨테이너 하나당 물건이 3000개 가량이었는데, 박스 크기도 천차만별, 무게도 천차만별, 박스가 아닌 여러 형태의 물건들도 다수. 특히 마대자루에 담겨나오는 작은 물건들은 따로 처리해줘야 해서 불편했다. 컨베어 벨트의 롤러와 마대자루를 뜯기 위한 칼, 각종 설비의 모서리 부분과 박스를 내릴 때 자연스레 이곳저곳 무리하거나 다치게 되는 몸 등등. 확실히 정신 안 차리면 다치기 쉬운 곳이었다. 요일에 따라 다르지만 트럭이 하루 평균 10대 정도 들어오는데, 트럭의 짐을 내리는 걸 '깐다'고 표현 - 트럭 하나 까는데 2인1조로 깔 때도 있고, 혼자 깔 때도 있고. 2인1조로 깔 때는 서로간의 호흡이 중요한데, 함께 박스 잡아보면 불과 1분도 지나기 전에 딱 이 사람이 협업을 할 수 있는 인성인지, 아니면 그냥 자기밖에 모르고 신경질적인 인성인지 알아챌 수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통 골격 좋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일을 잘했고, 체구가 작은데도 깡이 좋은 사람들이 일을 잘했다. 체계는 아직 잡아나가는 과정에 있는지라 이런저런 실험이 계속됐고, 덕분에 고성도 오가고 했는데 - 난 그냥 컨테이너 안에 처박혀서 극한의 육체노동에 집중하는 게 좋았으므로 감정 상할 일 피해서 거기에만 집중했다. 서브 전체를 관리하시는 관리직 분들도 여러가지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았다(좋은 분들이셨다).

 바퀴와 내연기관도 위대했고, 컨베어 벨트도 위대했고, 바코드 시스템도 위대했지만 - 가장 위대한 건 인간이었다. 두뇌, 눈, 뼈, 근육, 관절, 인대. 이걸 로봇으로 대체하려면 엄청난 투자가 들어가야 할텐데 과연 그 투자 규모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문득 아마존 물류 센터에 견학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에서 생산된 공산품의 경우야 물건의 크기나 무게중심, 바코드 위치 등이 정해져 있으므로 대규모 수송이나 저장에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렇게 사람이 처리해놓은 중구난방 택배 박스나 물건들을 로봇 단위로 처리하려면 박스 무게 파악 및 무게 중심 파악에 더해 바코드 위치 파악은 물론이고 각종 파손 처리 - 아니 그 전에 입고와 출고를 로봇 단위 시스템으로 잡아버리면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트럭 10대가 와야될 게 30대가 와야 될 수도 있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막 던져서 쌓아놓은 것들이나 꽉 끼게 박아놓은 것들을 마구 꺼낼 수 있지만 로봇을 모든 상황들에 대처 가능하도록 만들려면 대체 돈이 얼마가 들어갈 것이며 연구개발의 성패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 하지만 아무래도 로봇은 감정이 없고 지치지 않으니 장기적으로는 로봇의 승리가 당연할지도.

 어쨌거나 극한(?) 환경에서 몸으로 일하다 보니 몸이 골골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택배 상하차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가 되었는데 - 마침 택배 상하차에서 만난 아저씨 한 분이 영업직을 소개해 주셔서 거기에 도전하려다가 와이프가 말려서 일단 보류하였다. 와이프는 남들에게 잘 보이려 노력해야 하고, 또 말빨을 키워야 하는 영업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 와이프 표현으로는 '오히려 정신이 해이해졌다'고 -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구해야 할 사람이 '뭐든지 괜찮다'는 태도가 되어버려 당황스러웠다고. 해서 택배 상하차가 끝나면 집에 와서 '얼른 좋은 회사를 찾아보자'는 마인드로 사람인 이력서를 내었는데, 11월이 되면서 다시 면접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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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7. 11. 16. 17:03 단상

 지난주 와이프와 함께 집에서 나설 때였다. 도로 옆 주차장쪽 하수구 철망에 쥐가 한 마리 보였다. 사람을 봤으면 얼른 도망갔어야 할 쥐가 -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어째 꼼짝 않고 철망 앞에 가만히 앉아있길래 잠시 살펴보니 꼬리가 철망 모서리 부근과 바닥 사이에 단단히 낀 상태였다. 어찌된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한 변이 1미터 조금 넘는 정사각형 철망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힘껏 들어올려주었다. 처음엔 꼬리가 풀린 줄 모르고 내쪽을 보며 큰 소리로 찍찍대다가 이내 눈치챘는지 몇 발짝 나와 꼬리를 확보한 뒤에 - 통증이 심했던지 잠시간 아픈 표정을 지으며 신음을 냈다. 생각보다 쥐의 꼬리 길이가 길어서 조금 놀랐고, 철망에 끼었던 꼬리 중간 부분이 N자 비슷하게 꺾여있어서 안쓰러웠다. 쥐는 더이상 위험에 노출될 수 없다는 듯 이내 하수구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와이프가 꺼내준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생각해 보니 - 일단 '쥐꼬리만한 월급'이란 표현은 안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쥐꼬리가 생각보다 길어서) - 그 '쥐꼬리'마저도 나오다 말고 중간에 턱 걸려버려 오도가도 못하는 현재 내 상황과 방금 전 그 쥐의 상황이 비슷해 우스웠다. 5월 부터 놀기 시작했고, 4개월 간의 실업급여 수급이 끝난 뒤로도 시간이 쭉쭉 흘러 벌써 11월.

 8월 전까지는 정말 잘 놀았다.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 시도해보고. 여기저기 놀러도 많이 다니고. 중간중간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워크넷에서 형식적인 구직활동을 하긴 했지만, 일단은 8월이 마지막 달이니 8월에 최선을 다하면 어디든 쉽게 구해질 줄 알았다. 6월 쯤에 판교의 모 큰 회사에 가서 - 큰 회사는 기술 면접시 어떤 것들을 물어보나 한차례 경험해본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비록 떨어졌지만 시간 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되려 죄송하다. 이력서도 대충에, 준비도 너무 대충해갔으니 티가 안 날 리 없었겠지. 향후 어딘가에 뽑히든 안뽑히든 역시나 판교는 너무 멀어서 못 다니겠다는 것도 재확인. 그리고 혼자서 뚝딱뚝딱 뭔가 돈 벌 궁리를 할 때, 직장 잃고 급하게 3~4개월 준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확실히 확인했다. 최소 1년 이상의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겠지 싶었다(주어진 기간이 짧다보니 너무 실험적이기도 했고).

 8월부터는 슬슬 돈이 떨어져가기 시작하니 나름 본격적인 구직활동 시작. 공장 MES 쪽 한 회사는 출장이 너무 길어서 아웃. 만약 내게 자녀가 있었다면 판단이 180도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현 상황에 - 특히 가정을 중요시하는 와이프 성향도 있고 - 두어 달씩 출장을 가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배가 불렀지). 유니티로 VR을 하려 한다는 강남의 한 회사는 가보니 발전소 환경을 VR로 체험하고 훈련하는 솔루션 개발에 관심을 가지면서 게임업계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한 듯했다. 꼭 VR을 해본 경력자를 필요로 하는 듯해서 나와는 조금 맞지 않았던 듯 - 요새 VR 거품 빠지면서 경력자들 많이 나오고 있으니 천천히 잘 알아보시라고 조언까지 해드리고 나왔다. 알음알음 면접 보고 다니던 8월의 특이할 만한 점은 쿠팡맨에 지원해봤다는 것. 원할 경우 주 4일만 일해도 된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어서 주저하지 않고 지원해 보게 되었다. 1차 화상 면접에선 '책상에 앉아있는 일 하시던 분이 하시기엔 어렵지 않겠느냐, 다시 예전 업계로 돌아가시지 않겠느냐' - 면접관이 걱정하시던데 어쨌거나 2차 면접까진 갈 수 있게 되었고, 2차 면접은 체력 테스트 및 운전 테스트. 시작 전에 자꾸 혈압이 높게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듯했으나(담배 때문인가) 서약서 같은 걸 쓰면 진행 가능한 듯하여 서약서 쓰고 시작 - 체력 테스트는 가뿐히 통과했다. 팔굽혀펴기야 1분에 45개 정도는 껌이고. 1km 달리기는 제한 시간이 아마 4분이었던가 -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동안 제한시간 내에 들어온 사람이 없거나 드물었던 듯 면접관들이 대단하게 봐주셔서 나름 뿌듯했다. 달리기야 뭐 엔돌핀 탁 터뜨리면 이후로는 물흐르듯 움직이게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운전 테스트에서 개박살이 나버렸다. 1종 보통 면허를 가지고 있는데도, 악셀 터치 없이 오로지 클러치만 가지고 1단 → 2단  1단 기어 변속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생소한 나머지 시동을 꺼트려 버렸고, 코너와 평행주차도 아주그냥 개판을 쳐버렸다. 운전밥 먹는 일인데, 운전을 너무 쉽게 보고 갔던 내 실수였다. 돈 내고 맞춤 운전연수를 받았으면 될 일이었는데.

 운전연수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에 C#.NET 개발자를 찾고 있던 △사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2년 넘게 다녔던 G사와의 연결고리를 어필했고, △사에서 경험하게 될 기술들에도 의욕을 보였다. 바로 출근하라는 사장님의 오케이 사인이 참 반가웠다. 9월부터 출근 시작. 업무 경험차 A 과장님 외근에 따라갔다가 유명 프랜차이즈 본사 회의실에서 경쟁사 및 마케팅사 등과의 사업 진행 현장을 경험해본 일도 있었고, 이외에도 각종 발주서/제안서 등등 어디가서 쉬이 볼 수 없는 좋은 정보/경험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사는 기기 제조 기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미 대한민국의 서비스 환경이 많이 변해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파워로 재편될 필요가 있는 회사로 보였고, 내가 의욕있게 해나가는 만큼 회사에 즉시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어찌해볼 요량을 한참 벗어나는 △사의 단점들을 겪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소프트웨어 파워를 핵심 역량으로 선언하고 빠르게 체질 개선을 해나가야 할 회사가 개발을 전부 외주에 맡기고 있었고, 외주 개발자들을 컨트롤하는 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핵심 역량을 외주에 맡기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는 전문가들이 이미 경고하지 않았던가. 기기 제조 기반에서는 싸고 좋은 부품을 잘 선별해 사온 뒤 끼워 맞춰 하나의 제품으로 내놓는 것으로 괜찮았겠지만,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보자면 이런식의 외주 의존도는 말도 안 되는 일 - 그래서 유명 프랜차이즈 본사 회의실에서도 경쟁사에 비해 자신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지 않았던가(고분고분하지 않고 다른 회사 일로도 바쁜 외주 개발자들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외주개발자 X 씨는 구형 VB를 사용하는데, 이게 간략한 외주 프로젝트에는 통용될지 몰라도 엔터프라이즈 레벨로 오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일인데다 숨가쁘게 기술이 변화하는 시대에 향후 확장성을 놓고 봤을 때에도 리스크 가늠 불가. 또 다른 Y 씨는 회로 설계부터 시작해 독학으로 C#까지 오신 분이라는데, 코드를 보고 크게 실망. 더더군다나 Y 씨는 어쨌든 외주 계약을 따내야 돈을 버는 사람이다 보니 새로 입사한 나를 어떻게든 이용해보려는 눈치가 보였다. 내가 언제까지 이 X 씨와 Y 씨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어야 하나 - 경계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회사를 향후 이끌어야 할 A 과장님과 B 과장님 모두 사장님이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 - '개발을 왜 직접 하느냐, 외주 맡기면 되지 -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 별 거 없다'는 사고방식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었다. '돈 주고 일 시키면 된다'는 기본 명제 위에 어떠한 철학도 더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쨌거나 입사하자마자 발등에 불 떨어진 프로젝트 맡으면서 서서히 경계심의 도화선이 타들어가던 시점에, 결국 일이 터져버렸다. 어떠한 업무를 할 필요가 있다면 와서 그 업무를 지시하면 될 일인데 - 사장님 화법으로 하자면 - '대체 지금 그 일 안하고 뭐 하고 있느냐?'가 내 귀에 들어왔다. 아니, 최소한의 어떤 사전 정보나 언질이라도 있었어야 할 거 아닌가? 심심찮게 들리는 - 80년대 스타일이라는 - 군대식 갈굼 화법. 저녁에는 갑작스럽게 지방 출장 명령이 떨어졌다. 원래는 외주개발자 X 씨와 B 과장님이 다음날 출발하도록 되어있던 일이었는데, X 씨가 하루 앞당기는데에 난색을 표하자 곧바로 나에게로 화살이 돌아온 것이었다. 사장님이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누가 듣더라도 핵심이 명확한 - 차마 글로 적기에도 치사한 그 이유인 즉슨 추석연휴 앞두고 다음날 출발하면 서울로 돌아올 때 차가 막힐 염려가 있으니 우리 소중한 B 과장의 일정상 편의를 위해 직원 하나가 당장 따라 내려가란 소리. 물론 급하게 출장을 가야 할 때도 있을 수도 있다. 난 직원이고, 어쨌든 회사의 일이니까. 그래도 최소한 '갑작스럽게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만 회사로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가서 일을 좀 진행해줄 수 있느냐?'가 기본 화법이 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지방 고객에게도 도의상 미안하단 말을 했어도 여러번 했어야 할 일을 두고 끝까지 당당하던 그간의 태도들도 놀라웠고. 더해서 그 무대뽀적인 당당함을 그대로 닮으신 두 과장님 - △사의 명백한 잘못이나 위반은 알면서 그러는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 지방의 그 고객이 게을러서 그렇다, 뭘 몰라서 그렇다 등등. 오랜 시간 갑으로만 살아오신 영향인가. 나는 나대로 속으로 열불이 났고, 끝내 출장을 거부하자 내게 날아온 말은 추석 징검다리 쉬는 날 아니니까 징검다리에 출근하라는 말이었다. 내가 미쳤나. 그 날 출근을 왜 하나. 당장 내일부터 안 나올 건데. 나와 옆자리 K 씨 빼고 모두가 퇴근하자마자 책상의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 옆자리 K 씨는 Y 씨가 개판으로 짜놓은 코드로 벌어진 똥 같은 사건을 - 원격 팀뷰어로 어떻게든 고쳐보겠다고 밤늦게까지 A 과장님과 통화하면서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각에 미처 전날 챙기지 못한 나머지 짐을 챙겨 나왔다.

 이것은 와이프와 맥주 마시며 장시간 토론을 한 뒤에 내린 결정이었다. △사와 협력하던 C사의 사장님이 △사 사장님에게 '자꾸 그러시면 정 주임(나는 △사에서 주임이기도 했고, 대리이기도 했다 - 부르는 사람 마음) 도망갑니다'라고 농담조로 자주 말씀하셨었는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버렸다. 세상에는 개발자가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있고, 다닐 수 없는 회사가 있다. 기술 중심이 아닌 회사, 소프트웨어 파워가 무시되는 회사에는 그만한 분위기가 배어있게 마련. 돌이켜 정리해 보면, 핵심 역량이 외주에 있는데다 그 위험성을 전혀 모르니, 앞으로도 핵심 역량을 갖추기 힘들어 보였다. 트렌드에 맞는 회사 문화를 갖추는 데에 장애요소가 많았다(트렌드 못 맞추면 점점 직원 구하기 힘들어진다). 서비스/프로덕트 개선을 위한 투자를 어디에 얼마나 해야 할지 정확한 견적을 내릴 자체적 역량도 부족했고. 천만다행으로 △사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상태에 4대보험에 가입되기 전이어서 어디에도 기록이 남지 않아 딱 1달 다닌 걸로 깔끔하게 끝날 수 있었다(그래서 나는 1달 외주 용역으로 일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든 나랏돈 지원 받아보려고 각종 제도 알아본 뒤 거기에 맞춰보겠다고 고용센터에 구라를 쳐라 어째라, 계약서 안 쓰고 질질 끈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나랏돈 따먹을 궁리할 시간에 어떻게 해야 우리 서비스/프로덕트가 더 나아질까를 궁리해야 할텐데. 퇴사 사유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라고 둘러댔다. 지금 생각해 봐도 웃긴 이유지만 다른 한편으론 또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순번제로 돌아가는 토요일 당직은 대체 뭐며, 퇴근시간을 다른 회사들 보다 30분 뒤로 벌려놓은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6개월 수습은 대체 뭐며, 공고에 나와있던 돈은 커녕 내가 기존에 받던 월급보다 10만원 덜준 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왜 이 회사는 개발자가 나 혼자인가. 사소한 것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든다.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 한정으로는 강력하게 의견 제시도 하고, 사장님이 잘못 생각하셨다고 보는 부분에선 언성도 높아지고 했지만, 내 역량으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었으니. 들어간지 한달도 채 되지 않는 주임인지 대리인지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 그리고 내가 꾸역꾸역 다 참아가며 감내할 이유도 없는 일. 모르겠다. 철저히 내 입장, 내 시각에서 쓴 내용이라 - 어쨌든 나는 도저히 다닐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9월 한 달간의 외주 용역을 끝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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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7. 6. 22. 23:31 단상

 중학생 시절의 주된 활동 중 하나는 피씨방에서 친구들과 게임하기였다. 구마을 상가에서 개포고등학교와 가장 가까운 피씨방의 이름이 네메시스였는데, 하루는 친구와 함께 그곳에서 게임을 하던 중 - 피씨방을 운영하던 노부부와 어느 청년 하나가 심하게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피씨방을 나오면서 친구에게 대체 무슨일로 실랑이가 벌어졌는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친구 왈 그 청년이 노부부에게 돈을 요구하더라는. 정확한 호칭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동네 양아치/조폭이라 부를 만한 청년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에도 방과후 친구와 함께 네메시스 피씨방엘 갔는데 - 간판은 부서져 떨어져 있고, 철문에 붙은 자물쇠도 끊어져 있고 - 피씨방 내부의 모니터, 키보드, 책상, 의자 등등이 심하게 파손되어 어질러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전날 실랑이를 벌였던 양아치/조폭의 멤버들이 상납을 거부한 노부부의 가게에 보복을 가한 것이란 추론이 가능했다. 이후 네메시스란 명칭을 다시 접하게 된 건 고등학생 시절 잠시간 플레이 했던 울티마 온라인의 사설 서버 이름으로 접하게 됐을 때고, 네메시스가 복수와 응징의 여신이자 율법의 여신이라는 상세한 의미까지 알게 된 건 시간이 꽤나 지난 뒤의 일이다. 자연스레 따라온 궁금증 - 네메시스 피씨방을 운영하던 노부부는 그 양아치/조폭에게 네메시스의 힘을 빌어 복수와 응징을 할 수 있었을까?

 고시원에 살던 시절 불미스러운 일로 벌금을 낸 적이 있다. 상대가 먼저 내게 위해를 가한 건이었으므로 억울함이 컸으나, 사법적 주도권은 자의적/심정적 억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약식 명령 자체도 너무 억울해서 오히려 내가 정식 재판을 청구했음에도 불구하고 - 집안 덕에 무직이어도 먹고 살만 하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평소 다양한 소송 경험을 통해 증거 수집에도 능했던 상대방의 힘이 훨씬 강했다. 법률가들의 언어가 아닌 자의적/심정적 억울함을 토로하는 나의 언어는 그 냉엄함 앞에 씨알도 안 먹히는 게 어찌보면 당연. 형사/검사/판사가 나와 친한 동네 아는 형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이렇게, 이것의 나의 죗값이라면 온전히 받아들이겠다 마음먹은 뒤 앞선 사람들 처럼 판사님에게 벌금 액수를 깎아달라 구걸하지 않고 -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왔다. 나는 상대방의 자그마한 악행들까지 증거로 수집하며 살아가는 타입이 아니니까. 이후의 감정은 좀 복잡했다. 반성하고 겸허해지자는 마음 한켠으로, 오직 증거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과 무조건 맞고소를 해야만 일방적으로 바보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자리잡았다. 내가 소인배라 그렇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시간이 흘러 앞선 사건을 기억의 한켠으로 밀어넣고 일상으로 살던 와중,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횡단보도에서 나와 와이프를 칠 뻔한 노인과 시비가 붙었는데, 고성과 욕설이 오가던 중 노인이 내 얼굴에 침을 여러차례 뱉다가, 나중에는 차에서 내리며 등산용 스틱을 꺼내 내 배를 찌른 것이었다. 노인의 얼굴이 시뻘갰던 게 꼭 술을 마신 것 같기도 했고. 나로서는 이유불문 어떠한 형태의 폭력이든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화를 꾹 참고 그 노인의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잡아두기 위해 상대방의 차 앞을 막아섰다가 - 차를 길 옆으로 대라고 창가 쪽으로 가서 이야기하는 순간 그 노인은 엑셀을 밟고 도망가버렸다. 경찰차가 온 건 신고 후 거의 30분이 되었을 쯤이었다. 차가 많이 막혔다고 했다.

 경찰서에 도착했으나 그 노인에 대한 신병확보, 음주측정, 블랙박스 압수는 커녕 아무런 조치는 없었다. 그냥 사무적으로 고소장만 접수되었을 뿐 그 노인은 그냥 그대로 가버린 후 아무렇지 않게 자기 볼일들을 보고 다닌 것이다(경찰관에게 그냥 나는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출석하겠다고 하고 도망다니면 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법률가가 아니라 상세히는 모르겠으나 - 아무래도 긴급하게 그 노인을 체포 해올 필요까진 없었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첫 조사까지 그 노인이나 나에게나 며칠의 시간이 있었고, 당연하게도 내 증거는 나 스스로 찾아다녔다. 도로 CCTV가 없는 곳이라 근처 인형뽑기방 CCTV를 확인했고(카메라 대수는 물론이고 각도까지 매우 좋았다), 항상 같은 자리에 서계신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목격자 - 이러이러한 증거가 있노라고 형사님께도 친절히 알려드렸다. 

 형사님 말로는 그 노인에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데, 내게는 또 나만의 사정 - 사건을 목격한 와이프가 건강상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었으므로 내가 남 사정 봐줄 처지는 아니었다. 형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블랙박스는 노인 본인이 없다고 잡아떼서 어쩔 수 없다고도 하고. 어쨌거나 검사님 보러 왔다갔다하는 시간과 그 노인에게 분노하는 정신적 품을 계속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 노인과 단 1분 1초도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합의 의사가 있음을 밝혔고, 이후 알아보니 주당 50~100 정도의 합의금으로 끝난다기에 상대가 노인이기도 하여 그냥 주당 50으로 2주 쳐서 합의금 100 정도를 바랐지만(내 입장에선 아량을 베푼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 합의 통화 도중 노인의 발언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사정상 급하게 갈 곳이 있어서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긴 한데, 너 욕 엄청 잘하더라? 젊은 사람이 좋게좋게 넘어가야지 뭐 어쩌겠느냐?' 따위 이야기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겉잡을 수 없는 분노를 겨우겨우 가라앉히며 '합의금은 제가 알아보니까 주당 50에서 100 사이...' 말하던 도중 노인은 내 말을 끊으며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싸가지 없는 새끼.'를 연발하며 형사에게 내가 150을 요구했다는 헛소리까지 늘어놨다(물론 통화 내용은 전부 녹음해 두었다). 그리고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 형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그 노인이 나를 모욕죄로 고소했으므로 이제부터 나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엔 어떻게 모욕죄를 빠져나갈까 이런저런 궁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공연성은 그렇다 치고 특정성 부분에서 빠져나가 볼까. 아니면 어차피 그 노인에게 증거나 증인이라고 있어봤자 실상 나도 심한 욕설들을 많이 들었으므로 모욕죄 추가 고소로 가면 그 노인의 자승자박 아닌가. 끝없는 고뇌와 분노가 나를 집어삼켰으나 - 누가 이기고 지는가를 떠나 옆에서 이 상황을 겪는 것 자체로 힘들 와이프를 위해 그냥 서로 소를 취하하기로 하면 그냥 좋게 마무리 되지 않겠느냐고 형사님께 먼저 연락드렸다. 내가 한 번 큰 아량으로 참고 넘어간다는 취지였다. 이제와서 다시 되돌아 보니, 그 노인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했을 나에 대한 맞고소는 그냥 내가 그대로 감수하고 끝까지 갔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최종적으로 내게 불리할 것은 없었으니. 하지만 당시에는 그 엄청난 분노 - 이 '화'라는 것이 내 몸을 갉아먹는 듯한 고통을 일상으로 끌고가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마지막 정리되는 모양새까지 내 입맞에 맞는 건 아니었다. 내가 꼭 그 노인에게 내 죄는 묻지 말아달라고 구걸하는 것 같은 절차까지 포함해야만(이 부분이 가장 크게 나를 괴롭혔고, 다시 그 노인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사실도 역겨웠다) - 절차가 끝나게 돼있었다. 찝찝함과 함께 다시 분노가 찾아왔다. 그러나 고맙게도 와이프가 잘 제어해 주었다. 분노와 증오를 먹고 사는 악귀의 유혹이라고. 악귀가 나를 계속 여기에 엮어서 분노와 증오를 쏟아내게 만드는 거라고. 

 네메시스는 별로 멋지고 힘있는 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와 응징의 여신이자 율법의 여신이라는데, 대체 율법을 통해 나쁜 사람을 응징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막말로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유없이 뺨을 맞아도 별로 쎄게 맞은 게 아닌데다 증거까지 없고, 더해서 때린 놈도 완전히 미친놈이라 비싼 변호사 선임해서 일방적으로 나를 바보로 만들려고 들면 진짜로 내가 바보가 될 수 있는 세상.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별로 심각해 보이는 사건이 아니면 뭐 그냥 귀찮고 자잘한 잡일일 뿐이라 - 대충 통밥 굴려서 상호 합의로 해결시키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겠지. 역시 네메시스는 나약하고 허술한 인간들이 떠올린 허상일 뿐인가. 얼굴에 침을 몇 차례나 뒤집어 쓰고, 배를 찔려 피멍이 들면서도 화를 꾹 참아 눌렀던 건 다름아닌 율법의 응징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는데 - 왜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시간적으로 나만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을까.

 내면의 분노는 계속해서 끓어올랐고, 나를 좀 추스리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나쁜 노인이 발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그 노인의 머리통을 백 번도 더 넘게 깨부수면서 눈알을 파내고 내장을 파내고 일가족을 불태우는 상상을 하며 - 내면에서 끊임없이 악을 발(發) 하는 - 심각한 발악의 상태에 처해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세상에 나 같은 소인배가 또 있을까 싶었다. 와이프에게 근처 절에 좀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뒤 겨우 잠이 들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와이프가 기억하는 절이 있어 오늘 방문하였다. 참된 마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절인데, 시간이 늦어 문이 닫힌 듯했으나 - 혹시나 해서 눌러본 초인종을 듣고 나이드신 비구니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불당에 가서 방석을 깔고 절을 시작했다. 

 아만(我慢)이다. 내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 노인의 작은 잘못에 그렇게 크게 분노했을까. 내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의 뉘우침을 바라고, 더 나아가 그 죗값까지 바랐을까. 정진하지 못했다. 번뇌의 일생, 세상을 향해 가시를 쏟아낸 만큼 그 가시가 다시 되돌아왔을 뿐이다. 더럽고 깨끗함이 어디있는가. 더하고 덜함이 어디있는가. 그 노인이 사실은 부처님이 아닐까. 나의 아만을 꾸짖고, 자비로움을 일깨워줄 부처님이 아닐까.

 끊임없이 절하다 보니 눈과 입으로 계속 땀이 흘러들어오고, 침과 콧물까지 방석을 적시고 있었다. 어느샌가 몸이 불편하신 보살 한 분이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초와 향을 올리셨고, 삼배 후 떠나가실 때에 비구니께서 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셨다. 발등의 피부가 까졌고, 가랑이가 살짝 후들거렸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참 개운했다.

 세속이 어떻고 율법이 어떻고 정의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직 창창한 나이의 젊은이 아닌가. 아만으로 가시를 쏟아내기 보다는 스스로의 정진을 우선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앞으로를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악한 기운이 최대한 나를 피해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일 경찰서에 가서, 그 마지막 화해의 자리에서 부처님께 인사 올리면 화답해 주시리라 믿는다.

 결과적으로 네메시스는 내게 필요한 신이 아니었다. 내가 당했던 건 나의 아만이 자초한 악이었으므로 애초에 네메시스가 응답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선한 흐름에 보태야 할 힘을 소인배적인 자기만족에 허비하지 않기를. 어제도, 오늘도 - 누가 봐도 경악을 금치 못할 심각하고 악랄한 사건이 어딘가에선 발생했을 것이다. 네메시스는 그 이름으로 - 율법을 통한 복수와 응징으로 - 억울한 피해자들을 돕고 있으리라 믿는다. 과거 네메시스 피씨방을 운영하던 그 노부부도 네메시스의 은총을 입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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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7. 5. 21. 02:01 단상

 스캐빈저(Scavenger)의 사전적 의미에 부합할 만한 우리말을 아직 찾지 못했다. 평소에 스캐빈저라 칭하다 보니 이제는 그냥 입에 붙어버렸다. 길고양이와 재활용 수거 노인들 이야기다.

 길고양이는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일반 쓰레기 봉투에 치킨 뼈 등을 섞어서 배출하면 귀신같이 알고 봉투를 찢어발겨서는 치킨 뼈에 남은 살점만 청소하고, 그 주변은 난장판으로 만들곤 했는데 -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동네 사람들도 이제는 음식물 쓰레기 배출에 좀 더 엄격해져서 다행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배출용 통에 뚜껑이 있어 길고양이가 다루기 힘든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최근들어 누군가가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듯 - 발톱으로 쓰레기 봉투를 찢어발겨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졌다. 새벽에 암수 짝지어서 괴성인지 교성인지를 목이 터져라 질러대던 소음 문제는 일단 님비 형식으로 내가 해결(?)한 것 같다. 우리 건물 근방의 검은 고양이가 띌 때마다 눈 똑바로 보며 쫓아내다 한 번은 새벽 주차장의 소음 현장을 급습해서 녀석들을 놀래켰던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얼씬하지 않는다. 꽤 오래 잠잠하다 며칠 전 우리 건물 주차장 바로 앞에서 어슬렁거리길래 다가가며 '여긴 내 구역이야'라고 말해줬더니 휙 등돌려 사라졌다. 여차저차 이제 길고양이는 스캐빈저 목록에서 빠졌다.

 재활용 수거 노인들은 분명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지만, 생각만큼 상식적이진 못한 것 같다. 길고양이는 동물이니까 일반/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동물적으로 찢어발겨도 일단 상식 선에서 납득이 되지만 - 재활용 수거 노인들이 재활용품 담긴 봉투를 동물적으로 찢어발겨서 필요한 것만 가져가고 그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주로 낮에 활동하는 허리 꾸부정한 할머니 한 분은 너무 방어적이어서 '가져가는 건 좋지만 주변에 너무 벌려놓진 마시라'는 취지로 누군가 이야기라도 꺼낼라 치면 아예 못 가져가게 하는 걸로 지레 판단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한 번은 밤늦게 활동하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도 봤다. 크기가 꽤 큰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내놨던 날인데, 할머니 한 분이 먼저 집어든 것을 보고 뒤이어 도착한 할아버지 한 분이 '그거 내가 맡아뒀던 거야'라고 말 꺼내자마자 할머니가 '맡아놓는 게 어딨어 이 씨발놈아'라고 고함치더라는. 할머니의 이 대사가 너무나도 생생해서(맛깔나서) 이따금 우리 부부의 우스개 소재가 되곤 하는데, 여하간 할머니 손엔 칼이 쥐여져 있었던 상태라 꽤 위험했던 장면이었으나 할아버지가 얼른 꼬리 내리고 가버려서 다행이었네. 칼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누군가 봉투를 내려놓을 때나 혹은 직접 다가가 봉투를 툭 건드렸을 때 쇳소리가 나면 칼로 얼른 봉투를 째서 쇠붙이만 꺼내기 위해서다. 상당한 치열함이 엿보인다. 낮에는 거동이 썩 좋지 않은 노인들이 단가는 낮으나 부피 압축이 용이한 종이 위주로 가져가고, 늦은 밤에는 비교적 민첩한 단검 노인들이 단가가 높은 쇠붙이를 노리는 것 같은데 - 사실 이마저도 낮에 트럭을 끌고 근처 주거지를 훑고 다니는 사람들과 나눠먹게 된다.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에 오는 공식 수거 차량은 덤. 

 예전에 한참 고시원에 살 때 도대체 돈 벌 방법이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가 자원업을 떠올렸던 적이 있기에 대충은 알지만 - 종이와 비닐만 하더라도 종류가 꽤나 세분화 되어있어서 단가는 물론이요, 처리 방식과 설비도 다양하고 - 지역의 개미들 위쪽 중층부와 상층부엔 엄연히 중상과 대상도 존재한다. 거대한 창고에 쌓아두고 시세 싸움하는 큰 손(?)들이 담합하면 최근 벌어졌던 유리병 사태 처럼 - 보물단지가 순식간에 애물단지로, 혹은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스캐빈저의 세계도 거시적으로 보면 상당히 오밀조밀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니, 재활용 수거 노인들이 사실상 오버마인드의 수족인 것 같다는 짧은 생각이 들기도. 어쨌거나 재활용률 높기로 손꼽히는 나라인 점은 다행이지만, 재활용 수거 노인들의 생계 유지 수단/방식이 너무 인간적이지 못한 것 같다. 멀고도 가까운 어딘가에서 출발해 - 쇠붙이나 종이 따위를 마구 내다 버리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 동네로 들어와 동물적으로 경쟁하는 리그. 이들에게 때깔 고운 리어카 사주는 것이 어떤 의미론 복지일 수 있겠지만, 또 어떤 의미론 전혀 복지가 아닐 수 있다. 혹시 생계를 침해할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다는 설명에 납득이 가다가도, 정말 이대로 계속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 납득이 되지 않기도 한다. 빈 요구르트 통이 아스팔트 바닥에 통통 구르는 소리가 두꺼운 섀시를 뚫고 들려오면, '스캐빈저가 왔네'라고 길고양이 생각하듯 생각해버리는 상황. 차라리 더이상 봉투 찢어발길 필요 없는 길고양이들이 상팔자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노인 인구가 엄청나고, 또 노인 빈곤율도 엄청나다는데. 도시를 벗어나 마을 단위로 가게 되면 - 동네 어귀에 버려져 있는 유모차를 딱 보고 - 어느 집 어느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지 알아 맞히게 된다고 한다. 그 쓸쓸한 단면에 비춰보자면 차라리 스캐빈저가 내는 소리, 흩뜨린 흔적 따위가 그래도 사람들이 부대끼는 동네이긴 하구나 외로움은 덜어준다만. 언젠가 인간형 스캐빈저들이 사라지고, AI로 움직이는 자동화 스캐빈저들이 동네를 훑으며 지나가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 그냥 갈 때 된 사람들이 아등바등 버티다 저세상 갔다고, 동네 조용해져서 좋다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는 비인간적인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 씁쓸하고, 또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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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7. 4. 25. 00:03 단상

 개벽의 주기가 빨라져서 - 어느새 유튜브란 것이 전세계의 온갖 영상들을 다 빨아들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 2001년 도올 선생께서 비교적 앳된(?) 모습으로 논어를 강의하신 영상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도올 선생을 못살게 굴던 인간군상 때문에 끝내 100강을 채우지 못하고 64강 까지만 진행하셨었는데, 어쨌거나 15년이나 지난 지금 어느새 30대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되니 - 참 새삼스러웠다. 도올 선생의 시각을 빌려 삼사재의 의미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막말로 유자와 증자는 공자에 비하면 논란이 많은 인물들이다. 공자가 '군자가 되었노라'며 성인의 반열에 오르고 나니, 너도나도 군자 노릇 하겠다며 온갖 말들을 보태던 와중 - 증자가 노년의 처세술을 풀어놓은 것이 삼사(三斯)가 아닌가 한다.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우리 고조할아버지가 다산 선생의 팬이셨다는데, 편액의 주자 운운까지 더해서 보자니 역시나 조선을 지배했던 주자학 - 그리고 공부 공부 공부와 출세를 강조하는 당대의 관념적 한계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서당에 걸릴 글귀로서는 꽤나 적절한 가치들이지만, 다산 선생도 자식들 교육 문제 앞에선 어쩔 수 없으셨는지 - 처세술까지 애들 공부 강조하는 이야기로 변형(?)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어쨌든 공부할 땐 그냥 공부하고 말지, 공부에 앞서 태도를 바로하는 데에 정력을 투자하란 것은 썩 와닿지 않는다. 요즘 학생들은 게임하다 말고 침대로 점프해 삐딱하게 누워서 동영상 강의를 보기도 한다더라.

 한편으로 이것들을 철저하게 처세의 이야기로 풀어보자면 꽤나 그럴듯하다. 동용모 해서 폭만을 피한다? 비싼 옷 입고 명품 매장에 들어가면 직원들이 거만하게 굴진 않을 것이다. 비싼 옷 입고 지하철에 타면 - 아니지, 지하철이 아니지 - 5억 짜리 차를 타고 다니면 비록 그곳이 교통지옥이라는 부산일지라도 감히 내 차 주변에서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정안색으로 면접관을 향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힘차게 발사할 수 있을 것이며. 출사기. 내용이 개똥이더라도 언변만 예의바르다면 특수한 상황 아니고서야 상대도 딱히 이새끼저새끼로 반응하진 않을 것이다. TV 토론에 나온 위정자들이 국민들을 기만하는 내용을 교묘하게 설파하면서도 언변만은 참 예의바르게 신경쓰는 장면들을 많이 봐왔다.

 증자와 다산 선생, 고조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처세의 의미까지 너무 매몰차게 비판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온인류가 열심히 쌓아올린 학문적 토대 위에서 우리는 '낡은' 관념을 벗어버릴 줄 알아야 한다. 강준만의 싸가지론에서 벗어나, 제2의 유시민이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에 나타나 가열찬 비판의 말들을 쏟아내도 - 사람들은 껍데기가 아닌 핵심 의미에 들어가 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수사적 언어의 영향으로 감정이 요동치고 판단이 요동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2의 박근혜와 제2의 트럼프는 계속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도 마찬가지다. 마침 오늘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 캐나다의 장 크레티앵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장 크레티앵 - 동용모, 정안색, 출사기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으며, 또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가? 

 먼 과거에 만들어진 삼사재는 가끔 가보는 한옥이 아닌, 결국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게 던져진 화두 한 조각이다. 도올 선생께서 사람들이 유교를 진실된 유교 그 자체로 볼 수 있도록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신 덕에, 내가 과거를 온전히 과거 그 자체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동용모, 정안색, 출사기. 우습지만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지켜지고 있다. 내가 유니클로 티셔츠만 입고 다니는 이유? 나는 존재 자체가 섹스어필이다. 와이프에게 '안녕?'만 했는데도 결혼까지 골인하지 않았나.

 

※170508 추가

 면우 선생의 학풍에 관한 정보를 찾아봤다. 당대의 주자학적 관념의 연장선에서 학문을 하셨으리란 예단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당호를 지을 때 누가 지었는지, 왜 지었는지를 써놓은 편액이 두 개가 있는데 - 읽고 해석할 능력을 갖출 여력이나 빌릴 여력이 생겨야 그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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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7. 2. 17. 01:48 단상

 제목이 거창하다. 사실 나는 깊이를 따질 수준은 못된다. 그야말로 '단상'일 뿐이다. 일단 깊이를 따지기 전에 개발자라는 직업 자체가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는 별세계 이야기이기 때문에 피차간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주옥같은 지식들도 덩달아 축적돼가는 것이리라. 보통 게임업계 외부에서는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의 호칭을 쓰는 편이지만, 게임업계 내부에서는 디자이너/프로그래머/아티스트로 거의 통일해 가는 분위기(?)이므로 용어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키보드 치기에 품이 덜한 쪽으로 쓴다.

 20대 때 막연히 멋지다고 생각했던 에피소드 - 김택진 대표가 파트너사와의 미팅 자리에 당시 부사장이었던 송재경 현 XL게임즈 대표를 대동하고 나갔는데, 파트너사에서 언급한 특정 기능(보름 쯤 걸릴 것 같다고 한 기능)을 송재경 대표가 이야기 듣자마자 그자리에서 노트북으로 뚝딱 만들어내 파트너사를 놀래켰다는 에피소드. 시간이 흘러 XL게임즈를 차린 송재경 대표는 아키에이지 실무에도 뛰어들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담당한 부분에서 버그가 속출해 지금으로 따지면 대나무숲 같은 사이트에서 실무자들이 쑥덕댔었다.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도 비교적 최근 발표작 개발 당시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돌았었고. 물론 송재경 대표나 김학규 대표 모두 잠시간 '옛 감각'을 잃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 '옛 감각'이라 뭉뚱그린 개념은 과연 실체가 있는 개념일까. 자칭 기획자라 까불던 20대를 지나 개발자로서 30대를 살아가다 보니 앞서 언급한 에피소드들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경쟁 게임 A와 B. 눈에 보이는 게임 내용은 매우 흡사한데, A는 2주가 걸렸고 B는 4주가 걸렸다고 한다면 A의 개발자가 더 뛰어난 사람일까. 인건비 투입 대비 산출에 몰입중인 경영자/관리자 중 십중팔구는 당연히 A의 개발자를 더 높게 평가할 것이다. 어차피 월급 주는 사람이 갑인데 개발 내용까지 알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할 가능성도 매우 높고. 사실 이런 예시는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언급해 식상한 예시다. 결론적으론 진짜 A의 개발자가 더 뛰어나서 시간을 단축해 개발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런 예시가 으레 그렇듯 B의 개발자가 기초를 탄탄하게 해두었으므로 B의 개발자가 더 뛰어났을 수도 있다. 혹은 시간과 내실을 둘 다 잡았거나, 둘 다 놓쳤거나. 하지만 시간이냐 내실이냐의 이지선다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현실은 이지선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들은 공상적인 타입이든 현실적인 타입이든 실행되는 코드를 작성할 때만큼은 무조건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다. 위 이지선다 이면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론들을 만들어냈다. 생산성을 위함이다. 하지만 방법론 X를 선택했다고 X 만큼의 생산성이 나오는 게 아니고, Y를 선택했다고 Y 만큼의 생산성이 나오는 게 아니다. 사람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지 않다. 기반지식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다.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고,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르다. 방법론 X를 R 처럼 해석하고 있을 수도 있고, T 처럼 해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저 사람 코드는 눈에 쏙쏙 들어오는데, 이 사람 코드는 욕만 나올 수도 있다. 막코딩 후 조금씩 다듬어 나가는 타입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충분히 생각한 후 섬세히 작성해가는 타입일 수도 있다. 객체 구성엔 약하지만, 알고리즘엔 강할 수도 있다. 성장 후의 모습도 다르다. 어떠한 불평불만 없이 남의 코드도 그냥 생겨먹은 그대로 잘 갖다 쓰는 베테랑이 있을 수 있고, 통찰력을 바탕으로 철저한 비판을 가한 후 리팩토링 능력을 발휘하는 베테랑이 있을 수 있다. 전자나 후자 모두 유연하고 자유롭다. 똑같은 5년차 개발자 L 씨와 K씨가 있는데, L 씨는 4주만에 업무완료 후 이것저것 손대며 칭찬받다 퇴사하고, K씨는 6주만에 훨씬 더 좋은 코드(향후 유지관리 측면에서 비용이 훨씬 덜 드는)를 작성했는데도 핀잔만 듣다가 L 씨가 배설하고 간 똥 같은 코드들을 수습하면서 경영자/관리자에게 쓰레기 취급만 받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운과 정치력도 분명하게 작용한다. 송재경 대표가 위 에피소드 당시 노트북에 입력했던 코드가 정말 실무에도 쓰였을까? 쓰였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당시 떠올린 핵심 알고리즘을 토대로 보완해서 짰을 수도 있고, 숙고한 후 아예 다른 방향으로 다시 짰을 수도 있다. 결국 사안은 디테일로 논하게 되는 것이다.

 개발자가 필요한 직종의 경영자/관리자는 이렇게 거대한 변화무쌍의 흐름에 예속된 신세임에도 개발자들을 시간이냐 내실이냐의 수박 겉핥기식 이지선다로만 소비한다. 직접적으로 작업물을 판단할 능력이 없기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지선다에 매달리곤 한다. 그러나 실력적 깊이는 비교적 얕지만 경쾌한 시냇물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실력적 깊이는 비교적 깊지만 조금만 비가 와도 격류가 되어 주변을 휩쓸어버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외견으로 판단되는 단기적 결과물 외에 인간적 깊이까지 교차되어 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이 주제는 우주적 복잡도를 가진다. 물론 프로그래머 출신들이 꼭 훌륭한 경영자/관리자가 될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우리네 삶에서 - 인간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품위있는 사람이 다른 직종의 깊이 또한 잘 헤아려 일을 성공으로 견인하리라 믿을 뿐이다. 너무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했나? 하지만 현실의 하늘엔 분명히 구름이 떠다닌다. 헬조센의 수많은 C-Level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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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22. 21:56 단상

 내가 '콱 처박다'는 표현을 어디서 배웠는지, 언제부터 썼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영남 사투리 한 조각을 무의식 어딘가에 담아뒀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거친 정서가 느껴지는 표현이다. 연애하던 때 지금의 와이프와 통화하던 중 냉장고에 뭔가 넣어뒀다는 걸 그냥 '냉장고에 콱 처박아 놨다'고 표현했었는데, 당시 와이프는 이 표현이 재미있었는지 마구 웃어댔었지. 와이프의 그때 그 웃음 덕에 가끔 냉장고를 열면 - 깊숙이 들어가 있거나 등잔 밑이 어두운 듯 잘 발견되기 어려운 것들은 콱 처박혀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 이따금 '왜 이렇게 콱 처박아 놨어?'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나를 관찰하기만 했다 하면 빵 터지는 요소를 여기저기서 계속 발견해내는 와이프. 아무래도 와이프 마음 속에 내가 콱 처박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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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16. 16:24 단상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가정용 전기 누진세 때문에 에어컨은 너무 더울 때만 잠시 켰다 끄게 되는 요즘. 정부와 한전의 공허한 변명은 그냥 그런 변명대로 두고, 당장 어찌할 힘 없는 일반 가정에서 믿을 구석이란 선풍기 뿐. 선풍기 두 대를 가졌지만 한 대는 고장이 나서 나머지 한 대만 가지고 열심히 여름을 나고 있다. 현 회사에 취업하던 해 여름 하이마트에서 70만원에 육박하는 돈을 지불하고 산 다이슨 선풍기 - 혁신적인 발상 자체의 세련됨, 미려한 색감과 디자인 - 하지만 구입 후 쓰다 보니 결국 얻은 것이라곤 더럽게 큰 소음과 상대적으로 매우 약한 바람, 잔고장, 하청인 동양매직 AS센터의 비싼 부품값이었다. 머리쪽 팬 부분 접합 부위 플라스틱 부러진 게 15만원이라는데, 그 돈 내고 고칠 엄두는 나지 않아 다른 잔고장까지 그냥 껴안은 채 제트 엔진의 굉음을 내뿜는 바람 대포로만 가끔 활용하는 중이다(볼 때마다 안타깝고 화가 난다). 다른 한 대는 신일 선풍기인데, 못미더운 다이슨 제품으로 다시는 모험하지 말자고 - 그래도 선풍기는 신일이 메이커 아니냐며 - 올해 5월 말 쯤 하이마트에서 구입한 제품이다. 이게 어제 저녁에 고장이 났다. 리모컨까지 있는 제품이라고 나름 10만 원 넘게 주고 산 선풍기인데, 3단만 틀면 모터가 멈춰버리는 것이다. 아니, 3개월도 안 돼서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신일 AS센터 전화해서 지역 고르고 기다려 보니 불친절한 아저씨 하나가 직접 가지고 와봐야 안다고 - 해서 마침 휴가인 김에 위치 물어보고 찾아갔다. 찾아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선풍기 세워두고 앉아 있는 걸 본 어느 아저씨 하나가 말 걸더라. 혹시 신일 찾아 가느냐고, 자기도 선풍기 고치러 가는 길이라고. 길동무 달고 신일 AS 센터에 도착해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마다의 고장난 선풍기를 들고 줄지어 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증상을 설명하고 견적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인터넷에서 산 거 아니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이마트에서 샀다고 했더니 그럼 하이마트로 가져가서 고쳐야 된다고 하는데, 대체 이럴 거면 뭐하러 가지고 와보라는 소릴 한 건지. 생각보다 전체적인 불량인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잠시간 길동무 했던 아저씨 왈 - 자기가 하이마트에서 일해봐서 아는데, 하이마트로 들어오는 물건들은 일반 정식 물건들과는 조금 다른 일련번호를 가진 물건들이 들어온단다. 오프라인 매장이라고 너무 믿지 말라는 이야기도 곁들여서. 어이가 없었다. 하이마트에 전화해 보니 방문접수, 방문수령 원칙으로 수리 완료까지 15일은 걸릴 거란다. 신일 정식 AS도 안 되는 물건, 3개월 미만에 바로 고장나는 물건, 한여름에 15일이나 기다려야 되는 물건 - 신일 잘못인가, 하이마트 잘못인가? 사용설명서를 낱낱이 읽어봐도 내가 잘못 사용한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며칠 전 와이프 컨디션 안정을 위해 서울역에서 집까지 택시를 탄 일이 있었다. 차 굴리고 다닐 재력이 못 되다 보니 택시비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어 평소에는 뚜벅이 신세인지라 상당히 오랜만에 탄 택시였다. 탑승 후 목적지를 댔더니 잘 모르겠단다. 네비 찍으시라 했더니 나보고 직접 찍어달라고 건네주길래 길안내 버튼까지 눌러서 줬다. 경인고속도로 타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그런데 계속 가다 보니 네비가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라고 뱉기 시작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경인고속도로는 탈 생각도 않고. 꼴에 나와 와이프 광분하는 꼴은 보기 싫었는지 자기는 정말 지리를 모른다며 요리조리 미안하다는 듯 잘도 피해간다. 결국 출발지에서 한 번 빙 돌고, 도착지 부근에서 또 한 번 빙 돌아서 5천 원이 더 나왔다. 나이 지긋한 개인택시 기사가 서울 지리도 모르고, 네비가 안내하는 길 그대로 따라갈 줄도 몰라서 경로를 네다섯 번이나 이탈한다? 우리 부부 정도는 자기 깜냥으로 충분히 속여먹고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 불편 신고라도 넣을까 해서 번호판과 이름을 적어뒀으나 결국 불편 신고는 와이프가 말렸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치열하게 불편 신고까지 챙기려는 사람이 된 걸까. 

 얼마 전에는 국민은행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 체크카드 SMS 알림을 또 해지한 일이 있었다. 분명히 지난달에 전화해서 길길이 날뛴 결과 - 그동안 청구된 요금 모두 돌려받고 SMS 알림 해지까지 해놨건만 - SMS 알림 요금을 빼가겠다는 연락이 또 왔기 때문이었다. 이번 건에 대해 상담사 분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지난달 통화 후 이틀 뒤에 자기들도 모르는 전산상의 처리가 또 이뤄진 부분이 있었단다. 차분히 이야기 나누며 해지 확인한 뒤 끊었다. 나는 왜 또 이런 일로 전화기 붙잡고 시간 낭비를 해야 했을까. 지난달에 길길이 날뛰었던 이유는 마일리지로 알림 요금 빼갈 땐 가만히 잠수해 있다가, 마일리지 모두 소모 후 현금 빼가기로 전환할 때만 어쩔 수 없이 알려주긴 해야겠다는 는 듯 통보식으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동의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돈 빼간다는 통보가 오면 세상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거기에 더해 원래 해지 신청할 때는 나의 큰 목청을 십분 활용해 전투 모드로 들어갈 만반의 준비를 해둔다. 해지 방해를 위해 - 상담사들을 고객 응대 전문가가 아닌 메뉴얼만 되뇌이는 앵무새로 만드는 - 조직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고객이 말하는 내용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무시하면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메뉴얼만 되뇌이는 상담사가 내게 꼭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듯, 나 또한 인간 앵무새에게 꼭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날뛰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려니.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면 해지 방지용 메뉴얼을 작성하는 관리급, 그리고 그 관리급을 압박하고 있는 해당 조직의 임원급에게 있다. 물론 아주 안 좋은 감정이다.

 삼성 냉장고를 수리했다. AS 센터에서는 토요일 3시에 온다고 했는데, 5시가 넘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모양이라고 포기하고 저녁 먹으러 나가려는데 기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늦으면 늦는다고 말이라도 하던가. 냉장고 뜯어보더니 댐퍼가 나갔다며 9만 원 가량을 불렀다가, 와이프가 하도 뭐라 하니까 팀장 재량으로 깎았다며 7만 원에 못 미치는 돈에 해줬다. 삼성은 그냥 부품만 하청업체에 내려보낼 뿐이고, 부풀려 남겨먹는 건 오로지 하청업체의 재량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다용도실에 쌩쌩 돌아가는 금성 냉장고(장모님이 물려준 - LG가 아닌 금성)는 그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데, 왜 2년 반 사용한 냉장고가 해까닥 돌아버린 것일까. 더 복잡한 기술들이 집약되기 시작해서 그런 것일까? 웃기는 소리다. 댐퍼에 뭐 그리 세밀하게 집약된 기술이 들어갔다고. 삼성 서비스에는 또 안 좋은 기억이 있다. TV 구입할 때 돈은 이미 입금을 해놨는데, 오면 언제 오겠다는 게 감감 무소식인데다가 댓글 보니 설치비로 난리친 집들도 있었던 것 같아 불안했던 기억. 인터넷에서 구입한 죄로 - 하청업체가 개념이 있는 업체인가 아닌가 - 뽑기를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복잡한 사정 내가 어찌 다 알겠냐만 자기네 업체가 삼성 정식 서비스 센터라는데, 삼성을 욕할 수밖에. LG는 이런 면에선 깔끔했었다. 오면 언제 오겠다 정확히 연락 주면서 깔끔하게 처리하고 갔다. 하지만 LG는 다른 쪽에서 결국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깎아먹었는데 - TV 구입 전 오프라인 매장 구경 다닐 때 - LG 매장 영업사원이 싸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자꾸 상조 가입을 권유하던 것. 기가 탁 막히더라. TV 공부를 더 하던가,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어떤 장점을 어필할 것인지를 더 연구하던가. 관리자에게 상조 가입 실적이나 압박받는 인간들에게 뭘 기대하겠나 싶어서 기분 잡친 상태로 매장을 나왔던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두 곳이 이런 수준인데 - 아무리 예전 같은 철통 AS가 기업 이익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라지만, 아무리 오프라인 매장의 메리트가 사라져가는 시대라지만 - 브랜드의 품위까지 내던지는 행위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이제는 '브랜드'가 떡 하니 찍혀 있어도 믿을 수 없게 됐다.

 지난 겨울 와이프와 함께 핸드폰을 새로 바꿀 때의 일이다. 동네에 새로 생긴 폰 판매점이 있어 왔다갔다하며 몇 번 상담했는데, 폰 파시는 분이 옆 판매점 욕을 하면서 자기는 정말 신뢰만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나름 그럴싸 해서, 옆 판매점에서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엔 그냥 새로 생긴 판매점에서 - 인터넷 결합에 온가족 결합까지 해서 구입을 했다. 물론 지원금은 나라에서 정해놨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가정집은 페이백이라도 받는 게 좋으니 - 페이백도 약속 받았고(물론 페이백은 엄연한 위법이다). 하지만 계약 시작부터 말썽이었다. 내가 출근한 사이 와이프가 가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왔는데, 사인 먼저 받아놓고 나중에 자기들 마음대로 부가서비스 항목을 기입한 것이었다. 그놈의 신뢰 신뢰 외치던 사람이 저지른 행위여서 더욱 배신감이 컸고, 가서 따졌었다. 우리도 페이백까지 고려해서 조금이라도 이익 보려고 큰 위약금 감안해 가면서 계약한 건데, 앞으로의 일까지 믿을 수 있겠느냐고. 위약금 액수가 꽤 커서 페이백 없으면 그대로 몇 십 만 원을 뒤집어 쓸 상황 -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계약을 해지하지는 않고 그대로 가긴 가되, 위험 방지를 위한 유사 사례들을 조사해봤는데 - 결과가 너무나 암담했다. 폰 파시는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손에 꼽힐 만큼 험한 쪽이 이쪽이어서 그 수법이나 피해 사례가 상상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죄를 크게 묻기엔 애매한 액수들이라 판이 아주 지저분하다). 조사 후의 불안감은 그 뒤에 펼쳐질 일의 전조였다. 페이백을 약속한 사람에게 계속 연락이 닿지 않았고, 해당 판매점에 가서 물어보면 계속 그 사람은 다른 매장으로 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와이프와 상의해서 선제 대응하기로 하고 해당 매장에 자주 방문해서 얼굴도장을 찍었다. 대충 하다가 가게 접고 도망갈 거냐고. 이런 식으로 신뢰감 없이 연락 피하면서 일할 거냐고. 결국 페이백 약속 날 밤 11시 반에, 약속된 돈의 절반을 받았다. 그리고 그 폰 파시던 분을 계속해서 열심히 다독여 드린 끝에 기한이 지난 바로 그 다음 날 오후에 나머지 절반을 마저 받았다. 계약서에 적힌 약속 날 오후 6시 전에 깔끔하게 전액 입금해줄 거라던 그 자신만만한 신뢰의 사나이도 사실은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덩치 큰 통신 카르텔들이 폰 판매점들을 관리하는 방식이 뻔히 있으니 - 최전선에서 폰 파시는 분들도 결국에는 잘못된 걸 알면서도 - 혹시라도 속아주면 내 숨통이 트이겠다 싶어 고객을 상대로 한 번, 두 번 비틀게 되는 것이리라.

 결혼 반지도 한바탕 홍역을 치렀었다. 종로 귀금속 상가 여기저기 돌다가 와이프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J 사에 있다길래 삼색 디자인으로 사이즈 재고, 날짜 정해서 계약서 썼는데 - 당일날 받아 보니 와이프 반지는 삼색이 아니었다. 어째 내 반지는 사이즈가 좀 큰 것 같고 해서 전화해 보니 가지고 오라길래 결혼 후에 다시 맡겼다. 내 반지는 반인치 줄여서 새로 하기로 하고, 와이프 반지는 삼색 디자인에 같은 사이즈로 새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받아 보니 와이프 반지는 사이즈가 작아서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고, 내 반지는 반인치 줄여서 새로 만들기는 커녕 살짝 덧대 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와이프 반지는 감정서도 빠져있는 상태. 각자 이니셜과 결혼일 까지 새겨서 정해진 날짜에 계약대로 해주겠다는 계약서상의 문구는 애초에 공허한 잉크에 불과했던 것. 결혼 후 와이프가 속상해서 처음으로 운 이유가 바로 이 결혼반지가 애먹여서였다. 솔직한 심정으론 대형 물통에 휘발유 가득 담아 매장으로 찾아가서 그 사장이란 인간에게 뿌리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가 - 서로 일 주고받는 관계에선 가능한한 얌전하게 구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 글쎄, 헐크가 평소에 온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어쨌거나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는데 뭐 어쩌겠나. 우여곡절 끝에 비정상을 정상화 시킨 후 잘 끼고 다닌다.

 작년에 신설동을 지나다 수제 가죽신발을 파는 곳이라 써붙여 놓은 곳이 보여서 - 마침 새 신발이 필요했던 터라 두 켤레 구입했다. 주인 말로는 송아지 가죽이라 아주 부드러운데다가 원하는 디자인에 원하는 밑창까지 선택하는 대로 붙여주겠다고 해서 원하는 디자인에 밑창까지 골라 주문했다. 30만원 미만으로 두 켤레 샀으니 싸다면 싸고, 비싸다면 비싼 돈이었다. 시간이 한참 걸려서야 택배가 왔는데 - 웬걸, 집에 온 택배를 열어보니 한 켤레만 똑바로 왔고, 송아지 가죽은 커녕 이상한 천때기 신발이 또 한 켤레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와이프가 놀라 그쪽에 전화해 보니 - 젊은 사람에게 좀 더 어울릴 것 같은 걸로 보내준 거라고, 그것도 좋은 신발이라고 - 혹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나 궁금해서 그랬나 - 이게 무슨 몰래카메라 찍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 어딨나 두리번두리번 찾아보는 쪽이 그나마 황당함이 덜할까 싶었다미쳐도 보통 미치지 않고서야. 주인과 통화 및 문자 주고받으며 - 신발 가지고 원한 쌓을 일 있냐는 말까지 내뱉으며 다독인 끝에 - 왕복 택배비까지 그쪽 부담으로 합의해서(이것도 그쪽 부담이 당연한 건데) 결국 원래 디자인대로 물건을 받았다. 뜬금없이 송아지를 끌어들여 신발 팔아보려 침 튀기던 노인 - 나름 송아지 이야기 꺼낼 때의 그 순진한 눈망울 만큼은 대단했었다고. 쥐 같은 관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그 송아지 가죽신발은 얼마 신지도 않았는데 옆부분 박음선 쪽이 타졌다. 뭐 그래도 티는 잘 안 나니 열심히 신고 다닌다.

 어디 위에 나열한 에피소드들 뿐이랴. 인터넷 장터의 최저가 낚시부터 시작해서 용산에서 컴퓨터 부품 파시는 분들의 위용, 한국식 액티브X 결제 시스템의 기생충들 - 그래도 여기까진 그나마 양반이지 - 집이나 차 같은 재산 계약으로 들어가면 또 몇 수 위의 천하 협잡꾼이 모여 활약하고 있을지니 - 세상이 참으로 험하긴 험하구나. 큰 걸 바라는 게 아닌데. 기본만 지켜주면 되는데. 이 기본이야 말로 정말 크고 힘든 것이라는, 수시로 깨닫는 진리. 순자 같은 고대 철학자가 아무리 뛰어난 통찰력의 위선설을 주창한들 당대에도 열심히 말싸움만 하다 저세상으로 떨어졌는데. 유구한 세상사 엎어지고 뒤집어져온 과정에 어찌 협잡꾼들이 없었으랴 - 불신의 시대, 저신뢰 사회라는 타이틀은 꼭 오늘날의 것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몇 십 년 전엔 서로에게 정이라는 게 있었다고 열심히 주장하는 분들도 계신데, 내가 당대를 살아보진 않았으니 알 길 없다. 나 같은 일반 서민, 평범한 가정집 구성원들은 어떻게 정신 붙들고 갈피를 잡아야 좋을지 암담하다.

 전원책 변호사의 피를 토하는 칼럼이 윗물을 논하고 있는데, 흘러내려오는 물 받아 마시는 우리 아랫사람들(?)은 이렇게 험한 세상 하루하루 살기도 지치네. 자본주의의 극한을 달리는 오늘을 살아감에 혹시 내가 돈이 많았다면 - 일본 놀러가서 튼튼하고 고급진 산요 선풍기 한 대 사왔을 것이고, 자가용 끌거나 모범택시 불렀을 것이고, 백화점표 프리미엄 전자제품을 사서 썼을 것이고, 오프라인 전자제품 매장에서 폰을 구입한 뒤 폰 판매점에는 개통만 하러 갔을 것이고, 반지도 더러운 꼴 안 보게 청담동 명품 매장에서 계약했을 것이고, 신발도 이탈리아에 가서 장인에게 부탁해 맞춰왔을 것이고. 역시 다 돈 때문인가 - 조금이라도 더 남겨먹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아껴보기 위해 - 상호 비틀고 비틀리는 지옥도. 누가 감히, 대체 어떤 방식으로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아직(?) 우리 동네 시장에는 협잡꾼이 없는 것 같다. 솔직히 옆집도 본체만체 하는 상황에 이웃 타령하긴 간지럽지만, 옆집과도 안 하는 인사 물건 고르면서 한 번 씩 나누게 되고, 깍아본답시고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얼굴 도장 찍을수록 서로 함부로 하지 않는다. 인플레니 디플레니 개소리 떠들 필요도 없이 - 모두 모여 조금이라도 평범함에 가깝게 살아보려 애쓰는 사이 - 안 팔리면 가격을 낮추고, 올릴 때도 함부로 올리지 않는다. 그나마 피신할 수 있는 이 '섬' 같은 '동네'에서 - 어딘가에서 엄습해올 미래의 협잡꾼에 대비하면서 - 불안과 위협의 세계 속에서 잘도 살아가고 있다그래도 하루에 얼마간은 고장난 신일 선풍기를 끄고 시원한 에어컨을 틀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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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6. 5. 31. 22:05 단상

 와이프와 함께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갔을 때였다. 마침 와이프는 햇빛을 피하려 모자를 쓴 상태였고, 피부과에 다녀온 후라 얼굴 군데군데 약간의 멍 자국도 보이는 상태. 운동기구에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운동하는 내내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근처 벤치에서 나와 와이프를 번갈아 쳐다보며 쑥덕대던 것이 - 운동을 마친 후 산에서 내려올 때쯤 돼서야 대강 내용이 짐작되기 시작. 아뿔싸. 이러다 엄한 소문 나는 거 아닌가. "내 평생 최고의 펀치는 마누라 배때지에 날렸던 펀치"라던 타이슨도 해당 발언을 가만 곱씹어 보면 적어도 얼굴은 피해서 때렸다는 건데. 오해도 이런 오해는 너무 억울하다. "수탉이 까불면 집안이 망한다"가 우리집 신조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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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
2015. 9. 29. 01:24 단상

 본적. 본적이란 개념은 아직도 익숙치가 않다. 나의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은 서울 개포동인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이 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갈수록 본적의 개념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종손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내 집 아니면 다 남의 집인데 - 남의 집 종손이라고 어디 월급 더 챙겨주고 지하철 자리 비켜주기라도 하던. 되려 종손 운운하며 폼잡는 집은 여자들의 기피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적/종손의 개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고, 약하게나마 내게 심어져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고향 마을에 가면 마을 사람들이나 친척들이 네가 그 집 종손이냐며 무언가 중요한 사람 취급을 해줬었고, 할아버지로부터 과하다 싶은 정도의 편애를 받았으며, 명절 땐 제사 지낸다고 군 내 이집저집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역사 연구가들이 족보의 허망함과 거짓됨에 더해 거슬러 올라간 남의 조상이 결국 내 조상임을 주장하는 세상 - 너도나도 윗대 누군가는 다 천석집, 만석집이었다고 하더라는. 전근대 사회가 끝난지가 언제인데 누군들 뭔들 어떻겠나. 딱히 별스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만나본 일도 없는 윗대 누군가가 나를 위해 남겨놓은 이야기가 있다 한다면 누구든 그것에 흥미를 갖게 되지 않겠는가. 사실 조상 누군가가 남겨놓은 이야기라 해봤자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인 즉 보나마나 '해라', '마라', '해라마라'의 세 가지 형태 중 하나겠지만 말이다.

 본적지에 있던 한옥은 할아버지께서 직접 허무셨고, 대숲과 맞닿은 터도 이제는 우리 터가 아니다.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 시원하게 몰락했고(아버지께서는 흥망성쇠는 자연의 이치이니 절대 누군가를 탓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다) 별채 하나가 남았다. 그 별채 현판에 삼사재라고 씌여있다. 몇 번 오가면서도 별 관심은 없었다. 어째 이 낡은 건물 하나가 용케 남았구나 - 면우 선생의 제자셨던 고조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서당이라고 이야기 들을 뿐이었다. 그러다 작년엔가 아버지께서 삼사재의 삼사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해 주신 일이 있었다. 

 삼사. 간단하면서도 지키기 어려운 가치들이었다. 동용모. 정안색. 출사기. 용모를 똑바로, 낯빛을 똑바로, 말을 똑바로. 다산 선생이 그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실렸던 가치들이기도 하다. 특히 용모에 관해서는 - 버선 코가 좌우로 똑같지 않으면 그자리에서 참칼이라 불리는 단검을 꺼내 쭉쭉 찢으시고 누가 바느질을 했느냐고 물어보셨다는 고조할아버지의 일화 - 의복에 문제가 있으면 사람이 자격지심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나비효과 되어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였다(다행히 며느리의 바느질엔 흡족해 하셨고, 삯바느질에 맡긴 결과물에 불만이 있으셨다고 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좋은 말 듣고 새기는 것이야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일상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그 가치들을 잊게 마련이니.

 그러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잠시 삼사재에 들르신 일이 있으셨는지 현판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신 일이 있었다. 그 현판 사진을 보니 새삼 기분이 묘했다. 현판 옆에 긴 편액까지 곁들여 삼사재를 지은 이유를 설명해 두셨는데(서예가에게 부탁도 하셨을 것이고) - 이게 오늘날의 나에게까지 와 닿았으니 그 이유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 혼란한 시대, 호를 곡은(谷隱)으로 지으셨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후대에까지 전하고 싶으셨던 걸까. 정확히 무슨 말들인가 궁금해졌다. 나름대로 삼사의 의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다산 선생의 편지 내용을 봤다. 그 아들에게 동용모, 정안색, 출사기를 공부하기 전의 자세로 - 그리고 사원폭만, 사원비배, 사근신 - 을 공부할 때의 기준으로 삼으라 당부하는 내용이다. 동용모, 정안색, 출사기에는 보이지 않던, 사(斯)가 포함된 구절들이 나오니 조금 더 찾아볼 욕심이 생겼다.

 논어 태백편에 실렸다는 원문을 찾아봤다. 방학때면 아침잠을 푹 자야 하는 어린이를 억지로 깨워 새벽부터 먹을 갈라고 시키시던 할아버지의 욕심과는 다르게 나는 체계적으로 한문을 익히진 못했다. 더듬더듬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른다. 원문만 가지고는 도통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해당 내용을 문법적으로 풀어놓은 해설을 봤다. 조금 다른 해석이다. 동용모로 다른 사람의 폭만(난폭하고 태만함)을 멀리할 수 있고, 정안색으로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출사기로 다른 사람의 비배(비패함)를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 이것은 증자라는 사람이 노년에 이르러 군자의 처세법을 풀어놓은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삼사의 가치를 풀어놓기에 앞서 새가 죽음에 이를 때와 사람이 죽음에 이를 때를 언급해둔 바 있으니 맥락상 부드러워 보였다.

 해석 관련해서는 주자와 정자의 견해 차이를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정자는 또 조금 다른 견해를 내어놓고 있다. 도올 선생이 따로 언급하신 게 있는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쪽 편액에는 주자(朱子)로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 아마 고조할아버지께서는 주자의 견해를 전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쉽게도 편액 전체의 내용을 해석하려 들기엔 당장의 여유가 없다.

 한편으로 용모는 사람의 행동거지라는 뜻도 있고, 얼굴 모양이라는 뜻도 있다. 하지만 안색이라 하여 낯빛 관련해 따로 단어가 언급되니, 여기서의 용모란 행동거지를 뜻하는 쪽인 것 같다. 결론은 - "행동거지를 바로 하여 폭만을 멀리 하고, 낯빛을 바로 하여 신실함을 가까이 하고, 말을 바로 하여 비루하거나 어긋남이 없게 하라." - 가 아닐까. 

 버선코와 참칼의 일화와는 다르게 아무래도 복장 관련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뜯어지거나 지저분한 옷만 아니면 복장이 무슨 상관이랴. 행동거지와 낯빛과 말 꺼냄이 중요한 것이라고. 더해서 해석 또한 어느쪽인들 어떠랴. 결론은 모두가 재(齋)를 향하고 있으니 - 이 세 가지 것(三斯)으로 정진(齋)하라는 말이다.

 

 

 시대는 변했고, 변해간다. 해당 군청에서 기와 새로 하라고 돈도 보태준 모양이지만 아버지께서는 삼사재를 돌보고 지키는 것은 아버지 대까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나 역시 꼭 본적지에 그 무언가가 남아서 후대가 계속 그곳에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네이버에 치면 나오는 김녕김씨의 삼사재도 있고, 또 전국 어딘가 다른 집의 삼사재가 있을 수도 있다. 맥락은 모르겠으나 원문의 증자 또한 그 기물 돌봄에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할아버지께서 가끔씩 꺼내보시던 녹슨 장검도, 말 안장도, 기타등등도 - 담겨있던 궤짝 모두 도(盜) 선생이 들고 가버렸다. 물건은 없어져도 된다. 녹슬고 낡은 것들 가지고 뭐 할 게 있다고. 단지, 삼사의 가치는 언제든 나를 반성케 하는 가치들이고 - 또한 내 아이들도 삼사가 몸에 밴 아이들로 커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삼사재는 스러져 없어질 수 있겠지만 옛 유학자들이 남겨놓은 삼사의 가치는 또 다른 여러 형태로서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여유가 되면, 편액도 한 번 천천히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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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8. 15:44 단상

 낡은 서랍 속의 바다. 패닉의 노래 제목인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에서 따온 블로그 제목이다. 패닉의 노래 가사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제목 자체가 주는 강렬함은 항상 그대로다. 서랍 속에 바다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실로 서랍 속에는 바다가 있다고 알려주려면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잘 모르겠다.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라는 얼핏 봐선 명확하게 구분키 힘든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경험이 기억이 되어 '나'를 구성한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분명한 사실이다. 서랍을 엶으로서 숨켜있던 소리, 냄새, 감촉, 그리고 물건의 의미가 펼쳐진다. 분명히 누군가가 구성해놓은 기억들이다. 내 기억들을 보면서는 다시금 나를 재구성하고, 남의 기억들을 보면서는 다시금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재구성들은 감성의 영역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 같다. 의미 - 과거를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하루하루 죽음과 가까워 가는 나를 느끼는 싸한 감정과 물건에 담긴 에피소드로 돌아가 느끼는 희노애락. 평소가 아닌 어떤 특별한 시점에만 펼쳐지는 의식 - 내가 메말라 부서진 만큼을 기억의 바다가 다시 휘감아 채움으로서 힘차게 내일로 계속하게 만드는 흐름의 의식.

 어머니께선 내가 어렸을 때부터 관련된 여러 물건들을 따로 모아 남겨두셨었다. 앨범 속 많은 사진들은 물론이고 유치원 때 만들었던 부채, 탈, 그림일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입었던 연극 코스튬 등등. 시간이 흘러 내가 내 바다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이 바다는 거센 파도가 되어 머리와 가슴을 강하게 때려왔다. '나'라는 게 이렇게 구성되어 왔구나 - 분명한 감동으로서 말이다. 친한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의 낡은 서랍속에서 각종 따조라던가 포켓몬스터 스티커 따위를 발견했던 때엔 친구와 함께 그곳에 빠져 신나게 헤엄치기도 했었고. 아마 평범한 모두가 자신만의 바다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패닉의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겠지.

 자아도취 혹은 과거로의 함몰이라는 부정적 시선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설마하니 석가나 예수 보다 자아도취가 심하겠는가). 과거는 결국 자기에게 유리한 식으로 사실과 다르게 재구성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 개의치 않는다. 남들에게는 그저 소설 같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이 낡은 서랍 같은 블로그에 남겨두고 싶다. 과거에 영광이었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남들 앞에 잘난 영광이고 싶지 않으니 그저 겸손하면서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 이것저것 글을 흩뿌리기 전에 블로그 제목을 가지고 몇 마디 끄적이고 싶었다.

 사족을 달자면 와이프는 혹여 옛 여자들의 기억이 남아있을 수 있으므로 내가 과거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눈치지만, 내게는 정말로 과거에 여자를 만났던 기억 자체가 없으므로 걱정이 없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당신이라는 바다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트루먼쇼의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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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0. 22:41 단상

 이번달에 결혼하는 친구가 있어 오랜만에 남자 넷이 모였다. 신논현역에 도착해 논현역까지 이어지는 대로를 눈으로 훑으니 예전에 고시원에서 살던 때가 생각났다. 불과 2년 쯤 전만 해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이 도로를 열심히 오가던 때가 있었지. 선릉역으로 자리를 옮겨 왁자지껄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 풍속도 A~Z를 막걸리와 함께 잘근잘근 씹어먹고 2차로 간 빙수집에서 대화 중 무의식적으로 '난 요새 행복하다'고 뱉어버렸다. 내세운 이유는 - 박봉이지만 바쁜 일 없으면 야근 없고 주말에 잘 쉬어서 - 하지만 다시금 나를 살펴보건대 이런 표면적인 이유만으로 행복을 논한 것은 아니다.

 조급증이 없어진 것 같다. 언제는 있었나?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입대 전까진 세상 누구보다 만만디였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 남들이 쉽게 택하지 않는 분야를 전공했으니 그냥 그대로 취업해서 살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역 후에 보니 관련 기업들은 빠르게 대기업화 된 후였고, 스펙은 개뿔 하늘을 찌를 듯한 호연지기만 가졌던 내게 기회는 없었다. 취업이 기대만큼 쉽게 풀리지 않던 상황에 가족이 흩어지면서 논현역의 고시원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는데, 이런 내몰린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탈출구로 '사업'을 선택하면서 조급증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 같다. 

 우연히 알게 된 모 대학의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기 시작 - 낮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똥개 취급을 받다가 밤에는 창업교육 강사들로부터 미래의 사장님(을 넘어서서 세계적으로 대단한 혁신 기업을 일으킬 예비 위인) 취급을 받으니 - 희망을 매개로 한 뽕 중에서도 이만한 뽕이 또 있을까. 자, 이제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한 뒤에 투자금을 유치해서 나름 대단한 것 같은 아이템들을 실현시켜 보자고. 하지만 수료 뒤의 현실은 냉정했다. 친구끼리 현금 100만 원 빌리는 것도 막상 때가 되면 주변 공기가 이상해지는 법. 그러나 내가 희망 뽕을 맞으며 만들었던 아이템들은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형태였다. 그래, 그럼 아이템을 바꿔보자.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사업은 곧 돈. 그때서야 깨달았다. 뽕 맞으며 열심히 달려온 길이 낭떠러지 앞이었구나. 신보/기보 통해서 잘 땡기면 5천만 원은 된다는데 액수를 떠나서 사업은 커녕 내 고시원 방값과 밥값은 어디서 솟느냐고. 정부에서 뿌려주는 콩고물 하청 없으면 그대로 주저앉는 좀비기업을 흉내내긴 죽기보다 싫었다. 주저앉을 수 없다며 미친놈으로 돌아다니던 때도 있었다. 모 회사 ARS에 전화해서는 여기저기 부서 통하고 통해서 사업팀도 만나 보고. 모 회사의 모 회장님도 찾아가 투자 요청도 해보고. 이런 호기로움은 되려 독이었던 것 같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빨리 투자금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해야 되는데...'라고 되뇔 뿐, 냉정하게 상황을 진단할 수 없었다. 바퀴벌레와 함께 고시원에서 기어다니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걸까. 조급증의 늪에 빠진 채 바라보는 세상은 사업을 위한 일보 전진 외 모든 활동이 무의미해 보이는 세상이었다.

 뽕 기운이 모두 빠진 후(뽕 기운은 20대 중후반에 사업으로 순풍을 타기 시작한 사람들의 학력과 가계도를 보면서 금방 빠져나갔다) 다가온 새로운 미션은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마침 1년간 다니던 모 특수법인과의 계약관계가 끝나고 실업급여와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던 상황(고용노동부 예산에 한푼씩 보태주신 분들께 항상 감사드린다). 요리사와 프로그래머를 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으나 후자로 찍어버렸다.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 가는 대로. 그렇게 다시 조급증이 찾아왔다. 겨우 학원 6개월 - 과연 내 실력은 어디쯤이며, 정말 취업이 가능할 것인가가 이슈였다. 대학에서 정식으로 컴퓨터공학을 배우고 나온 사람들에 비해 정부의 눈가리고 아웅, 실업자 줄이기 대책의 일환으로 컨베이어 벨트에서 튀어나온 학원생들은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취업문은 더더욱 좁아진 상태였다. 프로그래밍을 선택한 게 혹시 짧은 생각이었나 후회도 있었고, 컴퓨터공학 전공했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니잖느냐 헛소리도 내지르고 싶었다. 또다시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똥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두려움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다행히 와이프 집으로 옮겨 살면서 주거 걱정을 덜었고, 또 와이프가 옆에서 조바심 없이 하루하루 포트폴리오를 다듬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잘 제어해 주었다. 그렇다고 당장 순풍을 탄 것은 아니었다. 조급증은 줄곧 내 집중력을 깨트리며 현실도피 유혹을 내뿜었고 - 와이프도 내심 불안했던 점, 불편했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다듬고 또 기다리다 보면 좋은 소식이 올 거라고 믿음을 잃지 않았던 결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위에 적어놓은 못난 과거사들이 자랑이냐면 그건 아니다. 지금 내가 잘난 프로그래머냐면 그것 역시 아니다. 조급증이 다시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 실제로 얼마 전엔 빨리 희망이 없는 이 나라를 떠나서 북유럽으로 이민을 가야 한다고 와이프를 재촉했던 적도 있다(미국 - 캐나다 - 노르웨이 순으로 마음이 바뀌어갔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망하면 어쩌나 불안감이 100%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급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찾아냈다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남들 앞에 잘난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 속에서 - 당장 보잘것 없더라도 내 마음가는 대로 무언가를 만들어 사람들 앞에 펼쳐 보일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는 것 - 창업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도 내 앞에 펼쳐진 모니터 속 우주에서 무언가 도전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게다가 나를 지탱해주는 가족도 생겼고. 이렇게 안정적으로 지속적 탐구와 점진적 개선에 들어가는 '상태'가 핵심이 아닐까. 잡스가 워즈니악과 차고지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던 때, 그들에게도 이런 지속적 탐구과 점진적 개선이 있지 않았을까. 아인슈타인도 우체국 일이 끝난 뒤 연구용 책상에 앉아 지속적 탐구와 점진적 개선에 푹 빠져있지 않았을까.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난 요새 행복하다'고 내뱉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상태'가 고소득, 대단한 업적, 높은 신분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하지만 혹시 나와 행복 취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나 위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이 '상태'를 추천해 주고 싶다. 물론 야근과 주말근무, 비좁은 주거환경과 열악한 임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이런 '상태'는 그 자체로 사치로 보일 수 있다. 각자의 환경과 역량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에 내가 주제넘게 끄적였는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이 행복에 취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난 요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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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1. 00:56 단상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며 JTBC 손석희 뉴스를 보는 일상. 오늘은 입시교육에 함몰되지 않은 어느 고등학교 이야기가 뉴스의 한 꼭지로 등장했다. 함몰되지 않았다지만 - 기실 얼마나 더하냐 덜하냐의 차이일 뿐 아이들이 입시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나름 너무 한쪽으로 함몰되지 않도록 다른 방편으로 사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의의가 좋아 보였다. 자연스럽게 나의 고교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사업이 구렁으로 빠지며 경제사정이 상당히 나빴음에도 교육적 환경을 이유로 계속해서 강남구를 고집했던 결과 - 휘문고에 입학하게 됐었다. 명문이라는데, 그렇든 말든 어차피 가까운 동네 뺑뺑이로 입학 아닌가. 시험쳐서 들어간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 지점이 상당히 재미있는 지점이다. 내가 시험 성적으로 줄세워져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되는 세대였다면 과연 휘문고에 입학할 수 있었을까? 중학교 때의 성적을 이유로 - 물론 다른 고등학교를 모두 다녀보고 비교해본 것은 아니지만 - 훌륭한 선생님들과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던 학우들이 많았던 휘문고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면?

 물론 지금의 내가 휘문고 출신으로서 잘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제대로 된 대학은 커녕 온라인 대학 출신으로서 온갖 우여곡절 끝에 겨우 늦깎이 취업자가 됐을 뿐, 괜스레 출신 고등학교의 격을 높여 학벌을 갖지 못한 한풀이를 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이만 서두를 줄이고, 간단히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과 기준에서)훌륭한 선생님들 및 기억에 남는 경험들을 기록해 보려 한다.

 국어 선생님. 이상하게 나를 좋아해주셨다. 특별히 나를 아껴주셨던 이유가 있었을까? 내가 언어영역 성적이 좋았었던가(딱히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누군가 이유없이 나를 아껴주고, 인정해준다는 느낌 하나만으로도 자아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건 '축복'이라는 단어가 아니면 묘사할 수가 없다. 이쁘다, 잘생겼다, 잘 될거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꽤나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앞으로라도 내게 주셨던 축복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구과학 선생님. 숙제를 자주 내주셨었다. 물론 해오는 애들은 소수, 대부분이 나가서 매를 맞았다. 하루는 날씨 관련 숙제가 나왔는데, 마침 피씨방비가 없어 집에서 심심했던 모양인가 공책에 답이랍시고 내 마음대로 생각한 내용들을 몇 자 끄적여 봤었다. 참고서나 컴퓨터가 있었다면 참고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상황. 다음 지구과학 시간에 선생님께서 교실을 돌며 숙제 검사를 하시면서 아이들 손바닥에 매를 주시는데 - 내 공책을 보시더니 - 직접 풀려고 노력한 흔적은 좋은데 내용이 맞지가 않다고 잠시 내용 설명을 해주시고 지나가셨다. 교실을 한 바퀴 도신 뒤에 교탁으로 가셔서 점수를 발표하시는데, 내 번호 차례에 만점을 불러주셨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해보려 했던, 하지만 알량했던 의지를 큰 점수로 사주셨던 것이다. 아예 해오지 않거나, 해오더라도 참고서 내용 일색이었던 상황에 내가 아마 틈새를 잘 파고 들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그 뒤로 지구과학 시간이 되면 나름의 짱구를 굴려 문제를 맞춰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세계사 선생님. 유럽의 지도 관련 단원을 나가고 있었을 때였다. 마침 바로 전날 저녁 TV에서 유럽의 고지도 관련 사라진 대륙 미스테리가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터라 시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 선생님께 질문을 했었다. 이후 선생님과 나 사이에 잠깐의 토론이 오갔다. 교실은 조용해졌다. 맨날 나가서 축구만 하다가 방과후에 피씨방 패밀리와 피씨방 레이드를 다니던 내가 TV에서 분명히 봤다면서 우기는 장면이 꽤나 웃겼을지도. 하지만 선생님은 친절하게 그 내용은 억측이라는 설명을 해주셨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교시가 끝나면 휑 나가버리는 그런 분이 절대 아니셨다. 자기 분야에 대한 열정이 엿보였달까. 정말 멋진 분이셨다. 물론 지금은 TV에 나왔었던 그 억측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음악 선생님. 한 번은 내게 다른 선생님께 다녀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었는데, 예전에 한 번 허탕을 쳤던 기억이 있었던지라 나도 모르게 '지금 가면 정말 거기에 계시냐'는 뉘앙스로 되물었었다. 무의식적인 반항심이 있었던 걸까? 순간 잠깐 당황하시는 기색과 화가 나시는 듯한 기색이 보였었다. 심부름을 가는 도중 방금 전의 내 말실수를 깨달았고, 심부름을 다녀온 뒤의 선생님의 반응이 궁금해졌는데 - 상당히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녀오느라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나 나나 둘 다 사람이다. 청소년의 순간적인 반항심이 나올 수 있고, 당연히 그 반항심에 어른으로서 당황스럽고 화날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인품으로 좋은 마무리를 해주셨던 덕분에 비로소 나는 '선생님'의 '위치'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국사 선생님. 휘문고를 세운 민영휘는 사실 친일 재산가로 통한다. 하지만 국사 선생님은 그 부끄러움을 씻어내려는 의지를 가지셨는지 - 철저히 식민사관을 배제하며 우리 역사의 자부심을 일깨워주려 노력하셨었다. 특히나 교과서에 적힌 '동학농민운동'을 지우고 '갑오농민전쟁'으로 고쳐쓰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두고두고 그 장면을 곱씹는다. 당시 생존을 위한 노동에 온몸을 쏟아바치던 사람들에게 학문 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일깨우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 단순 종교 운동으로 왜 폄하하여 인식해야 하는가?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 '농민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민족은 노예근성의 민족일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조선의 근대화에 관련된 철학도 배울 수 있었다. 조선이 근대화의 싹을 지니고 있었음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시며 - 싹을 짓밟고 묘목을 이식한 그들의 논리에 일침을 가하는 말씀을 해주셨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을 당시 우리가 문화재와 호흡하지 못하고 - 둘러쳐진 접근금지 울타리 바깥으로 밀려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신다던 선생님. 당시 선생님의 문화재 설명을 애써 듣지 않고 친구들과 놀겠다고 까불고 다녔던 과거의 내가 밉다. 진심으로 과거로 돌아가 그 설명들을 듣고 싶다.

 사회 교생 선생님. 방학 보충수업에 나오시다가 수업 마지막 날에 학생들이 낸 보충수업료를 전부 학생들에게 다시 돌려주셨던 분이었다. 이유는 -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 아이들은 다 비싼 학원에 등록했겠지, 학교에서 여는 방학 보충수업에 등록했을리가 없다는 이유였다. 지금 7:3에서 8:2로 가는 중인데 그것이 느껴지느냐 - 우리가 한창 일할 나이엔 9:1이 될 것이라고 - 수능 문제풀이로 바쁘던 아이들에게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경고를 해주셨던 분.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겨 주신 교육자셨다. 아마도 지금은 정식 교사로서 교단에 서계실 것 같은데 - 요즘 아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실까?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만 계셨던 것은 아니었다. 신경질적으로 아이들 뺨을 때리던 양아치 같은 선생도 있었고, 돈봉투 밝히게 생겨가지고선 - 진짜 챙긴 돈봉투로 메이커 양복 입기를 즐기던 쌍놈의 새끼도 있었다. 그리고 수학 담당 선생님들은 딱히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냥 애들 패는 게 일이셨던 것 같다. 아니, 모르는 걸 어쩌라고. 차근히 알려줘야 할 게 당신인데 - 왜 그저 패기만 하는가? 중학교 이후로 진도 못따라온 내 잘못인가?

 이상이 내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구성해 본, 내가 받은 고교시절의 교육들이다. 교과서 내용은 머릿속에 온데간데 없고 이런저런 에피소드 몇 개만 진하게 남았네. 서울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입시교육의 전초기지 중 하나였으면서도 - 나처럼 입시교육의 변두리를 돌던 아웃사이더에게까지 양질의 교육을 전달해 주던 곳이었다. 캠퍼스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동 수업도 있었고,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교복이 없었다. 아쉽지만(?) 졸업 즈음 교복이란 게 생겼고,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는 소식으로는 - 대치동 아이들이 개포동 아이들이나 송파구 아이들과 어울리길 꺼려한다고 했다. 아마 사회 교생 선생님 말씀대로 8:2로 가는 중이었을까. 아무래도 지금은 9:1일까? 입시에 찌든 요즘 아이들, 그리고 입시로 부터 튕겨져 나와 아웃사이더로 떠돌던 나처럼 현실을 부정하며 어디론가 표류하기 시작한 아이들. 모두들 어떤 미래를 갖게 될까?

 어렸을 때부터 공부 훈련을 받으며 성장한 공부기계들이 있다. 그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로 '기계'라는 단어를 고른 것이 아니다. 수능 고득점에, 군입대 전에 사시패스를 해버렸다는 등의 - 고교시절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들려오는 그들의 업적은 - 뭔가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진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면 뭐 어쩌겠는가. 누려야지. 성적 좋으면 이득 아닌가. 좋은 성적으로 좋은 출발 하면 될 일이다. 창의력? 그게 그냥 땅에서 샘솟던가? 공부기계들은 아마도 창의력도 좋을 것 같다. 레고도 블럭이 많아야 큰 작품이 나오듯 머릿속에 든 재료가 많아야 응용할 꺼리가 많지 않겠나. 어차피 응용 또한 훈련의 영역이 아닐까? 그래도 훗날 나올 내 아이는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항상 건강함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관심영역에 탐구심을 발휘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만의 아름다운 에피소드들을 간직할 줄 아는 인간미를 갖춘 아이였으면 좋겠다. 함몰된 구덩이 바깥에서의 아웃사이더라면, 아웃사이더여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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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생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