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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으로 매개된 착각의 장 속에서 - 네트로피를 녹이는 뜨거운 인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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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27. 22:05 일지/해외여행

늦잠을 실컷 자고 천천히 짐 챙기며 준비하느라 호텔 조식은 건너뛰었다. 호텔 근처 거리의 현지 모습을 조금 구경하다가(동남아인들과 스쿠터가 꽤 보였다) 전세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 3박 4일이 너무 짧게 느껴졌고, 아직 더 보지 못한 수많은 것들에 그저 아쉬움만 크게 남을 뿐. 그동안 잘 이끌어주신 가이드 분과 버스 기사 분께 감사 표시를 한 후 비행기 탑승까지 대기. 배가 고파 공항 푸드코드의 돼지족발 선택 - 땅콩/간장 소스에 조리된, 밥과 함께 먹는 요리였는데 너무 맛있어서 와이프와 함께 폭풍 흡입했다(반찬까지 남김없이). 고디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상점 구경. 서점의 책들은 펼쳐보니 세로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진행되는 책 - 가로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진행되는 책이 혼재돼있었다. 일본에서 건너온 물품들도 많이 전시돼있다는 것도 특징. 가족들의 남은 공금으로 파인애플 케이크와 누가 크래커를 구매해서 나누어 가졌고, 다시 한 번 복층 구조의 커다란 아시아나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양안관계는 민감한 문제이므로 우리가 왈가왈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중화민국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자국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대만인들이 투표를 통해 어떤 결과를 발표하든 전세계인들은 그 결과를 존중하게 되어있다. 부디 민심을 얻는 정당에게 영광 있으라.

다시 도착한 인천공항. 대만의 동전은 환전이 거부되어 조금 불편했다. 대리석의 대만과 달리 역시나 화강암의 나라 답게 요소요소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익숙한 풍경 - 이곳에 도착한 것이 아쉽다. 너무 아쉽다. 세계는 넓고 아직 더 다녀야 할 곳들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는데. 

posted by 생마
2020. 1. 27. 21:42 일지/해외여행

호텔 조식을 들면서 어머니와도 잠시 이런저런 대화.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와이프는 호텔 조식도 대부분 거르는 편이다. 날씨가 쌀쌀(?)한데도 어제처럼 반바지를 입고 나가자 대만인이신 가이드는 좀 놀라웠던 듯 - 대만의 일교차가 상당히 크긴 하지만 위에도 두겹이나 입었으므로 나름 문제 없었던 날(한반도의 사계절이 워낙 가혹해서 웬만한 온도에는 빨리 적응하는 모양이다). 중간중간 아주 잠깐씩 가는 비가 흩뿌려지긴 했으나 크게 흐린 날은 아니었다.

오전 일정은 타이페이 동북쪽의 예류해양공원. 제주도에서 봤던 것과는 많이 다른 화산 지형, 해변 풍경이었다. 꼭 버섯이 솟아난 것처럼 꼭지가 있고, 그 아래 기둥이 있는 재미있는 바위 지형들. 말 그대로 기암괴석. 군데군데 스펀지가 땅에서 솟아나온 것 같은 모양도 있었고 - 수많은 사람들이 여왕머리와 용머리, 촛대 등 특이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 대부분이 한국인이더라는. 요새 한국 사람들이 일본 대신 대만을 많이 찾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점심은 공원 내 해산물집에서 먹었는데, 특히 해산물을 좋아하는 와이프가 만족스러워했다. 나도 양념으로 볶은 새우가 워낙 맛있어서 꽤 먹어두었는데, 이쪽도 한국식 입맛에 많이 맞춘 식당이어서 신기했다. 심지어 깍두기를 한국 식당 보다 더 잘 담갔더라는. 

예류해양공원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면 있는 스펀으로 이동. 천등을 날린다는 것을 일정표에서 글자로만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직접 스펀에 와보니 - 여길 지나쳤으면 정말정말 아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스펀이란 곳 자체가 기찻길 바로 옆에, 정말로 문 열고 두세 발 걸으면 바로 기찻길을 밟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붙은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기다란 상점가를 이룬 풍경 - 아름답고, 이국적이고(내 입장에선), 포근한 풍경. 그리고 사람들로 북적대는 축제 분위기 - 고개를 조금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여기저기서 소원을 담아 날리는 천등이 계속해서 꼬리를 이어 날아가기 시작하는데 - 가느다란 철사 뼈대에 종이를 발라 풍선처럼 만들고, 바닥 부분에 붙인 기름종이에 불을 붙여 하늘로 띄우면 열기구 날아가듯 그대로 날아가는 천등. 이 천등들이 각자 은은한 빛을 발산하며 날아가므로 상점가의 아름다움과 천등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주고 있었다. 나와 와이프, 어머니도 천등의 4면에 각자의 소원을 적어넣었는데, 모처럼 우리와 같은 번체자 문화권에 왔으니 오랜만에 붓글씨를 써보려고 - 인터넷에서 만사형통을 찾아 내 이름과 함께 한자로 적어넣었다. 물론 한글로도 열심히 이것저것 적어넣었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역시나 많았는데 - 다들 로또라던가 청약통장 같은 것들을 써넣은 것이 - 이사람들 어디 안 가는구나. 천등을 날리기 직전에 실제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도 구경했다. 짧지만 인상깊었던 곳.

다음은 그 유명하다는 지우펀 방문. 스펀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있는 해안가 고지대의 상점 밀집구역. 전세 버스는 전용 주차장에 세우고, 시내버스를 타고 지우펀이 위치한 고지대까지 올라갔다. 조금씩 가느다란 비가 흩날리기 시작. 최근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 지우펀이 아니라 '지옥펀'이라 불린다던 곳임에도 날씨 덕택인지(?) 사람이 지나치게 많지는 않아 상점 거리를 오가는데 불편함은 없었다(한강의 불꽃축제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어딜 가서든 웬만한 인구밀집은 널널하다 느낄 것이다). 나와 와이프는 가이드와 떨어지는 바람에 유명하다는 땅콩 아이스크림은 어느 상점인지 몰라 먹어보지 못했으나, 밀집된 상점가 골목골목의 분위기와 중간중간 뚫린 곳으로 멀찍이 보이는 항구의 운치까지 - 혹시 시간이 널널했다면 높은 곳 경치 좋은 카페의 테라스에도 들려봤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기에 기념품으로 가오나시 장식품도 하나 구입했으나, 솔직히 전체적인 감상으론 해당 애니메이션과의 연결점을 크게 느끼진 못했다(해당 애니메이션에선 일본색만 느껴졌지 중화색을 느꼈던 기억은 없기에). 굳이 해당 애니메이션과 연결점이 없더라도 - 일본의 유후인 상점가가 유명하듯 - 지우펀은 지우펀만의 자연지형과 독특한 상점가를 가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대만의 자랑거리로 손색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타이페이로 복귀하여 충렬사 방문. 마침 버스 도착 시간에 의장병들의 교대식이 막바지여서 관람. 충렬사는 항일투쟁과 반공투쟁시 목숨을 잃은 넋들을 기리는 곳인데, 자금성의 태화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엄숙함이 요구되는 곳이었는데, 충분히 예를 갖추진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 알고보니 원래는 모자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나오는 길에 안내판을 보고 알았다). 한족들은 실제로 우리보다 이민족의 지배를 더 많이 경험해본 민족이다. 그만큼 세계사에서 중원은 매우매우 치열한 곳이었고 - 항일이든 반공이든 무력의 뒷받침 없이, 군인들의 희생 없이 지금의 중화민국을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유는 비싸다.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인 국립고궁박물관 관람. 귀에 가이드의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장치를 끼고 팀으로 움직이며 유물들을 구경했다. 보는 내내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장제스가 중공에게 패할 것을 예상하고 국부천대 전에 자금성에 있던 중요 유물/보물들을 가져온 것들이라고 하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한 - 당시에나 지금에나 어설픈 재력으론 소유할 수 없는, 최고 권력자들마저도 지출에 휘청거렸을 것만 같은 사치품들이 많았다. 치열한 중원 쟁탈전이 한바탕 마무리되면, 그 핵심부에는 온갖 세상의 부와 기술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명청시대의 해금정책은 중원이 부와 기술의 정점에 있다는 자각과 그 이면의 불안에서 나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적 사실이 그랬듯 흥망성쇠의 이치에 따라 세력은 점점 기울었고, 다시 새로운 대의사상이 잉태되기 시작 - 지금의 양안관계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지금 세계의 부와 기술들은 어디에 몰려있는가? 우리 민족은 타민족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가? 신문물을 열심히 받아들이며 부패와 싸우고 있는가? 박물관이 묻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근처 샤부샤부 가게(크진 않았고 현지인들도 많이들 오는 곳인 듯)에서, 그리고 오늘밤 술자리는 호텔방이 아닌 식당에서 열고 마무리하자는 의견을 모아 - 식당의 금문고량주를 두 병 시켜서 마셨다. 확실히 다들 잘 마시긴 잘 마신다. 58도가 아닌 38도라 확실히 부드러운 술이라며 금방금방 비워댔으니. 식후에는 마지막 방문지인 서문정 거리 - 이곳은 대만의 명동이라 볼 수 있을 듯하다. 번화한 도심 거리에 요즘 한국인들이 열광하는 대만식 먹거리(버블티, 지파이, 카스테라, 샌드위치 등등) 중 망고빙수와 버블티를 맛봤다. 망고빙수의 망고가 너무너무 달고 맛있어서 놀랐고(한국에서 먹는 파인애플/망고는 저질품이 분명하다), 가게 안의 벽면에 온통 한글로 방문 낙서가 돼있어서 또 놀랐고(내가 지금 명동에 있나). 버블티도 베이스인 밀크티가 아주 깔끔했고, 빨대를 통해 올라온 떡을 씹기 시작해야 비로소 은은한 단맛이 느껴지는 것이 정말 일품이었다. 이렇게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고, 아쉬운 마음만 잔뜩 안은 채 어제 묵었던 주도 플라자 호텔로 복귀했다.

posted by 생마
2020. 1. 27. 18:43 일지/해외여행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나 붉은 물로 반신욕도 한 번 더 하고, 훌륭하게 차려진 호텔 조식 - 상어고기와 각종 과일, 맛있는 커피까지 모두 챙겨먹은 후 기차역으로 출발. 표를 끊고 현대중공업에서 만들어 새마을호로 사용했었다는 기차에 탑승해 화롄으로 향했다(고속철도는 따로 있다고 한다). 차창 밖 풍경은 포근한 시골 풍경 - 하지만 아열대 식생과 번체자, 원주민 문양이 뒤섞인 매우 낯선 풍경 - 광활한 해안선과 바로 맞닿아 있는 거대한 산맥의 풍경.

사실 대만 섬은 인류사에서 대항해 민족의 원조라 볼 수 있는 폴리네시안들이 먼저 정착해 살던 섬이었다(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마나 개념도 모두 이들이 가진 정신 유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항해 민족의 후예들이 높은 산으로 들어가 고산족이라 불리우고 있는 지금 상황은 한편으론 아이러니하기도. 대만의 산맥들이 어디 보통 높던가 - 한라산 정도의 높이는 우스워지는 영기어린 산들이 구름을 뚫고 솟아있으니, 기본적인 생활지대의 해발고도 자체가 다른 셈이다. 덕분에 화롄까지 오는 모든 길들도 이리저리 산을 돌고 터널을 뚫으며 오는 길들이 아니었던가. 나중에 띠동갑 형의 의견을 들어보니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기까지는 두 세대 정도, 즉 50년 정도면 충분하다고 - 더해서 후손들끼리 서로 이질감을 느끼기까지도 50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폴리네시안들이 높은 산의 기운을 받아 멧돼지 사냥으로 성인식을 치르고, 산양의 기운을 받들고, 아직도 사냥을 위해 산에서 산으로 캠핑을 하며 겨울철을 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스스로 그러하게 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이치임을. 여담이지만 고산족이 사냥한 곰 가죽을 소파 밑에 깔고 싶다는 욕심도 든다만,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야생동물들을 잘 지켜줘야겠지.

처음 도착한 화롄역의 풍경은 일단 타이페이에서 꽤 떨어진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화롄 '시'라고 부르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번화한 풍경이었다. 화롄역에서 현지의 전세 버스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대만 원주민들의 모습이 쉬이 눈에 띄기 시작. 대만인의 인종은 한족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님이 분명 확인되는 지점. 식사 장소로 이동하던 중 - 광활함을 느낄 수 있는 해안가에 잠시 내려 그 풍취를 만끽하며 사진 찍는 시간도 가졌다. 우리나라 동해 바다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고 확언할 수 있는데, 해안가도 해안가 자체로 굉장히 광활했지만 일단 파도의 높이 - 일렁이며 다가오는 바닷물의 기운 자체가 확실히 달랐다. 바람이 거센 제주도 해안가에서도 이정도 기운의 거대한 일렁임은 보지 못했다. 더해서 난개발 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된 듯한, 멀리 구름에 가려있는 높은 산의 모습들 - 내가 서있는 광활한 해안가에서 저 높은 산까지 이어지는 시야에 인간의 난개발 흔적은 없었다. 원주민들 자체가 산이나 바다의 난개발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얼마나 감사해 했는지.

점심 식사는 Fullon Hotel에 차려진 점심 뷔페. 한국인들 입맛에 맞는 한국식 음식들이 추가되어 잘 차려져 있었다. 해외에 와서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도 하나의 여행 즐거움이지만, 식성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민감하게 다른 부분이라 - 지속적인 체력 소모에 앞서 제때 끼니를 챙기고 다니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한국식으로 배려받는 것 또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신나게 한국식 치킨과 볶음밥, 서구화된 입맛에 맞는 피자 등을 가져다 먹었다(한글로도 잘 씌여있었다).

타이루거 국립공원. 첩첩산중. 옥색 석회물이 힘차게 굽이치는 거대한 협곡. 석회물 근처에 보이는 천연 회반죽 토양과 산 옆구리 대리석 지층 무늬가 자아내는 압도적인 장관. 사실 거대하다, 압도적이다란 수사만으로는 이 장엄한 풍경을 표현하기가 힘들다. 웬만한 저층 빌딩 보다 더 커보이는 바위들이 산에서 떨어져나와 바닥에 굴러있는 장면은 - 혹시 호빗에 나왔던 바위 거인들끼리의 전투가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닐까 - 국립공원 안의 저 높은 산꼭대기에서 흘러나오는 폭포 풍경은 오히려 이를 찍어놓은 사진이 원망스러워질 정도다. 왜? 내가 직접 보고 느꼈던 그 장엄함이 사진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전혀 담겨있질 않으니까. 타이루거 국립공원에 관한 기록은 많지는 않으나, 이것은 글의 한계 때문이다(마음속 비중은 가장 높다). 사진은 일부러 많이 찍어두었으나 사진의 한계까지 뼈저리게 느끼고 마는 시점. 여기저기 많이 다녀보지 못한 짧은 식견이지만, 그동안 봐온 한계 안에서는 - 제주도의 성산일출봉과 주상절리대, 일본 아소시의 거대 분지와 원시림의 연못 풍경, 그리고 이번에 본 대만의 거대한 대리석 협곡과 광활한 해안가 - 깊은 감동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감동을 계속해서 찾아다닐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저녁은 근처 역 앞 마을에서 한국식과 대만식이 혼합된 밥상. 아무래도 한국인 손님들이 많이 오다 보니 이쪽 식탁도 이미 적응이 끝난 듯했다. 대만의 기후에선 쌀이 많게는 4모작까지 된다던데, 어딜 가나 쌀밥 상태가 괜찮아서 한국인으로서 만족스러운 점이었네. 식후 기차역에서 대기하는 동안 커피숍을 끝내 찾지 못해 멀리 있는 편의점까지 다녀왔는데, 마을에 나와있는 개들이 전부 - 애완견이나 푸근한 대형견, 더해서 투견종도 하나도 없고 - 전부 날렵하고 강인한 사냥개 체형 뿐이어서 조금 무서웠다(목줄이 없다). 정말로 수렵이 생활의 일부인 듯. 편의점에선 되도 않는 영어 막 던졌는데, 서로간에 어쨌든 의사는 통한 듯해서 다행(그거 좋다는 뜻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건 대부분의 국가에서 통하는 듯). 역 근방에는 고양이들도 서성이고 있었다. 새는 예상과는 달리 갈매기가 아닌 까마귀들만 소수 보였고, 겨울이라 그런진 모르겠으나 하루종일 다니던 동선에 벌레가 하나도 안 보였던 것은 상당히 놀라웠던 점.

다시 우리가 출발했던 역으로 되돌아가는 기차에 탑승. 이 기차는 일본에서 만든 기차였는데, 대만의 꼬맹이들 - 나이가 많아봤자 초등학교 1~2학년생 정도로 보이는 까맣게 탄 꼬맹이들이 왁자지껄 탑승해서 널찍한 입석 공간에 앉아 함께 있었다. 가이드 말씀으론 야구부 아이들이라고. 보아하니 한쪽 꼬맹이들은 핸드폰 하나에 모여서 게임을 구경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 꼬맹이들은 다른 핸드폰 하나에 모여서 야구 영상을 시청하고 있더라는. 그러고보니 대만의 화폐에는 쑨원과 장제스 외에도 야구부 학생들의 사진이 실려있지 않던가. 이 학생들의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건강함, 그리고 이렇게 어린 나이에 집에 돌아가는 기차에서까지 야구 영상으로 연구를 계속하는 열정 - 이 친구들이 장차 대만의 미래. 저녁 밥상에 올라왔던 숭어도 대만의 화폐에 들어있던 것이고, 가장 고액 지폐에는 대만의 위성 시설이 들어가있는데 - 이는 끊임없이 천재지변과 싸워야 하는, 그리고 사실 대만에 오기 전에는 대만을 ASUS와 MSI로만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기술로서 살아나가야 하는 - 실로 대만의 많은 것들이 화폐에 담겨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대리석 산도 지진에 의해 그 지형이 바뀌고 사람들도 위험에 노출되지만, 큰 지진 이후엔 땅에서 많은 광물/보석들이 솟아나온다고 하니 - 하나의 인류애로서 - 항상 시련 뒤에 번영이 있기를.

새로운 호텔로 가기 전 타이페이 시내에서 발 마사지도 받았는데, 나는 온갖데가 다 아파서 고생 - 신음소리 안 내고 소처럼 참았는데, 알고보니 아픈 지점이 있으면 아프다고 하면서 마사지사와 대화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인 듯. 끝나고 구매한 특수 슬리퍼는 바가지를 좀 쓴 것 같긴 한데, 여행 온김에 산 것이니 - 뭐, 판매측에서 덕분에 행복했으면 그걸로 되었다. 엄청 비싼 물건은 아니었으므로. 지금 집에서 잘 신고 다니는 중이다.

새로 도착한 호텔은 주도 플라자 호텔. 공항과 가까운데다 주차장이 잘 돼있어서 나름의 역사와 평판을 가진 호텔이지만, 방음은 좀 부족한 편이었다. 역시나 방 자체와 시설들이 널찍한 편이었고, 와이파이도 잘 돼있었고 - 이곳 또한 어제 호텔과 마찬가지로 대리석이 풍부한 대리석의 나라라는 것을 뽐내듯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방 안 테이블도). TV에서 한국 채널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고. 호텔에서 벌인 가족들 술모임에는 근처 편의점과 꼬치집에서 사온 것들이 올려졌다. 특히 대만의 금메달 맥주가 참 맛있었다. 해외에 나올 때마다 느끼지만, 우리나라 대기업 맥주들은 왜... 그냥 말을 말아야지.

 

 

posted by 생마
2020. 1. 27. 16:32 일지/해외여행

이번에도 외가 친척들과의 단체 여행. 이번에는 연세가 많으신 큰이모/큰이모부께서도 참여하셨고, 우리쪽 12명만 가이드 분과 움직이는 한 팀이 되었다. 다들 어렵사리 시간 맞춰 모인 만큼 비행 거리가 짧은 곳으로 알아보다 보니(비행 시간도 소중하므로) 대만이 선택되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인천에서 타이페이로 2시간 정도 비행(이번에는 복층 구조의 큰 비행기) - 타이페이 서쪽의 타오위안 국제공항 도착 후의 첫 느낌은 '습하다'는 느낌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적응되었다. 다행히 여름이 아닌 겨울 시즌에 온지라 우리나라 가을 정도의 포근한(?) 온도였다. 경비원이 탐색견에게 '요메이요우'를 반복해 말을 걸고 있었고, 짐을 찾은 후 현지 가이드와 컨택.

전세 버스는 관광용으로 특별 제작된 버스인 듯 좌석이 일반 버스 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창문 밖 풍경을 내려다 보는 구조였다. 창문 밖으로는 '전봇대 야자수'라 불리운다는 높다란 야자수들과 이름 모를 나무들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고, 스쿠터가 상당히 많은 도로 - 차는 일본 차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거리의 풍경은 적당한 높이의 시멘트 건물, 벽돌 건물 - 낡은 건물과 새 건물이 뒤섞여 밀집해 있는 풍경. 간판에 써있는 번체자와 중간중간 보이는 중화식 지붕이 바로 여기가 한족들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첫 일정은 점심 식사. 도심 거리를 지나다 버스를 멈추고 다같이 대만식 철판볶음/샤부샤부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접시에다 철판볶음에 넣을 재료를 직접 골라담은 뒤 주방에 차례로 줄서서 갖다주면, 우리가 보는 앞에서 거대한 철판 앞의 직원이 볶아주는 구조였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우삼겹과 파인애플을 메인으로 넣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고, 밥 대신 면을 넣어 볶도록 되어있었다. 커다란 원형 철판을 직원 3명이 공유하는 중이었고, 덕분에 대기시간도 길지 않았다. 식재료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으나, 워낙 철판의 불맛이 잘 묻혀져서 맛있었다. 다른 음식들 이것저것 맛보느라 테이블 중앙의 샤부샤부 냄비에는 음식을 조리하지 않았다. 버블티의 원조인 나라 답게 음료 쪽에는 버블티도 마실 수 있게 돼있었는데, 버블티를 미지근하게 먹기도 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식후 중정기념당 방문 - 장제스를 기념하여 세운 곳인데, 정문을 지나는 순간 탁 트인 전경 가운데 우뚝 버티고 있는 팔각 지붕의 거대한 대리석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를 따라 내부를 돌며 장제스의 일대기 훑어보기. 여행 오기 전 대만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던 부분들을 보충해줄 만한 글, 사진, 물건 등을 직접 보니 재미있었다. 이후 메인 홀로 이동하여 장제스의 거대한 동상 앞에서 의장병들의 절도있는 교대식도 관람하였다. 의장병이 내쪽을 향해 걸어올 때는 혹시나 눈이 마주치진 않을까, 그 엄숙함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조금 두려웠는데 - 필사적으로 엄숙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하나의 웃음 소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으므로(이건 코미디언 유세윤의 웃음참기 영상 때문이다). 교대식이 끝난 후엔 대리석, 편백나무, 대나무로 만들어졌다는 메인 홀 내부(특히 천장)를 더 구경하다가 기념관 밖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계단에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만리장성, 자금성 등을 건축했던 역사의 민족이라 그런가 중정기념당은 스케일 크게 잘 지어놨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쑨원의 대의사상으로 중화민국을 세운 이후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던 '국가' - 이 무거운 실체를 자기 두 어깨 위에 받들어 굳건하게 유지시킨 인물 장제스. 자신의 실력/세력을 앞세워 초한지 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평가할 수도 있는 일대기를 남긴 거인. 물론 비판의 목소리들도 있으나(부패와 독재에 관한) -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러시아의 지원을, 때로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새로 맞은 부인인 쑹메이링 여사의 재력도 결정적이었다고 하고) - 때로는 마오쩌둥과, 일본과 목숨 걸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면서 - 삼민주의의 불꽃을 끝까지 꺼트리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군벌들을 요령있게 장악하고, 내부의 부패를 단속할 만한 모사 - 저우언라이 같은 큰 비중의 모사가 없었던 점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다음 방문지는 대만의 랜드마크인 타이페이 101 빌딩.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이전까지 세계 최고층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는데, 대도시의 마천루 빌딩들이 그렇듯 도시 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솟아오른 머리 모습을 볼 수 있었다(버스로 오는 동안). 마치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아래 석촌호수에서 꼭대기를 올려다 보았을 때 느꼈던 위압감 처럼 - 타이페이 101 빌딩 또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고, 엘레베이터까지 이동하는 동안 보여진 내부 구조는 넓고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명품 상점들의 밀집). 예전 도쿄에서 봤던 스카이트리는 빌딩이 아닌 타워에 그치고 말았는데, 대만 또한 상시 지진의 위협에 노출돼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터에 - 이렇게 압도적인 크기의 빌딩을 뽐낼 수 있는 비결 - 빌딩 내부의 거대한 무게추를 직접 눈으로 보고 또 설명을 들으며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쇠로 된 무게추는 - 크기는 말 할 것도 없고, 무게가 600톤이 넘는다고 - 지진 발생시 빌딩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라고 하며, 관람객들은 빌딩의 마스코트인 이 무게추를 매우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간 만큼 무조건 보게 되어있는 전망대 - 도시의 전경을 360도로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만도 우리나라 처럼 중국발 황사/미세먼지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설명 그대로 어디서 많이 보던(서울에서 많이 보던) 대기질이 보였다. 전체적인 도시 풍경은 낮에 빌딩 아래에서 봐온 것처럼 적당한 높이의, 낡음과 새로움이, 시멘트와 벽돌 건물들이 엄청나게 밀집돼있는 풍경 - 그리고 요소요소에 보이는 중화식 지붕들. 우리나라 처럼 동네를 크게 묶어 한방에 재개발하여 커다란 아파트 단지로 묶어버리는 정책은 없는 듯했다(자세히는 모르지만). 일본의 아기자기한 계획 도시의 느낌과는 또 다른, 마치 우리나라의 종로 근방을 계속해서 붙여놓았다면 비슷한 표현일까(지금 우리나라 종로 근방이 바로 낡은 건물과 새 건물이 공존/밀집된 형태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각종 암석 공예품과 산호 공예품 구경. 해양 오염에 의해 섬 주변의 산호들을 보기 힘들어졌다고 - 그만큼 산호의 가치가 올라가는 중이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라오허제 야시장과 그 옆의 도교 사원. 절이나 신사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의, 매우 화려한 도교 사원을 먼저 구경했다. 실제로 현지 사람들이 와서 일상적으로 점을 치는 모습 - 끈 떨어진 캐스터네츠 같은 것을 바닥에 몇 번 던졌다가, 기다란 작대기를 꺼내서 무엇이 쓰였나 확인해보는 등 - 한족들의 전통적인 신 모시기, 영감의 장소인 듯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야시장에선 대만의 특산품/먹거리를 신나게 구경해볼 수 있었다. 아열대 지방의 과일과 함께 이름 모를 여러 음식들 - 특히 취두부가 궁금했는데, 실로 그 냄새는 특이하고 강렬했다. 말 그대로 두부 쉰내가 좀 더 강렬해진 것이랄까. 사촌형은 전갈 꼬치를 찾아다녔는데, 나와 사촌형 모두 각각 취두부와 전갈 꼬치를 실제로 먹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굳이 먹으려면 못 먹을 것도 없을 것 같았는데, 비위라는 것은 어차피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 외국인들 입장에선 한국의 메주/청국장 냄새나 홍어 냄새는 물론 묵은지 냄새도 꽤나 어려워 한다고 하니 - 취두부는 대만의 청국장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오히려 전갈을 죽었다 깨도 못 먹었을 것 같네. 여하간 가족들이 모았던 공금으로 각종 과일과 대만식 엿 등등 몇 가지 먹거리들을 미리 사두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과일이 파인애플인데, 이곳의 파인애플 상태가 한국의 마트에서 구입하는 파인애플과는 당연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품질이어서 - 훗날 정말로 돈이 많이 생기면 대만의 파인애플 농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파인애플 외에는 특히 '석가'라는 과일이 아주 달고 맛있었다.

저녁은 딤섬 식당에서 먹었고, 식후 식당 앞에서 잠시 모여있었는데, 둘째이모부의 귀띔으로 눈치 챈 부분 - 근방 모든 건물들의 입구쪽이 - 서로 다른 빌딩임에도 불구하고 꼭 약속이라도 한 듯(아무래도 건축법상 무언가 조항이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필로티(기둥) 구조를 통해 빌딩 1~2층 정도에다 사람들의 통행로를 만들어 일자로 곧게 잇고 있었다(처마 내어놓듯). 대만 사람들은 1년 중 거의 절반을 태풍의 영향권 안에서 살게 되므로, 이렇게 비를 피하며 다니기 좋은 구조로 만든 듯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술에 그렇게 관대하지 않은 나라라 밤 늦게 술에 취한 상태로 대중교통에 탑승하거나 택시를 타는 게 금지되어 있다고 - 해서 호텔 근방의 술집 보다는 호텔에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서 술을 사가지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는 가이드 말씀 - 이런 제도는 우리나라도 좀 따라했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다(동생이 지하철 주취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터라).

첫 날 묵을 숙소까지는 거리가 좀 멀었다. 타이페이에서 동남쪽으로 산을 지나 만나게 되는 이란 현 해안 수아오에 위치한 Lakeshore Hotel Suao. 방 안에는 거대한 탕이 마련돼있었고, 화장실에서 연결되는 이 탕은 유리를 통해 방 안과도 시야가 트여있었다. 가족들와의 술 모임을 마친 후 방으로 돌아와 철분이 많이 함유된 온천수(붉은 빛이 도는 물)를 틀어 탕을 채웠고, 와이프와 시원한 온천욕을 즐겼다. 일본의 호텔과는 다르게 세면대나 변기는 물론 탕도 생각보다 크고 깊은 것이, 섬으로 왔어도 대륙인의 기질은 어디 안 갔구나 싶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이 호텔의 옥상에 경치 좋은 수영장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는 것을 다음날 아침에서야 눈으로 확인한 것 - 사실 수영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듣긴 했었으나, 여행 중 피곤할텐데 무슨 수영복까지 챙겨서 수영장까지 가겠느냐 - 예단하고 준비 안 했던 것이 꽤 아쉽다(멀리 항구까지 내다보이는 수영장이 정말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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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9. 17:59 일지/해외여행

마지막 밤을 불태우겠다고 대부분 과음하셔서 그런가 - 호텔 조식을 제대로 드신 분이 몇 분 안 되신 듯. 중요한 일정은 없었고, 후쿠오카 공항에서 간단한 선물 등등 쇼핑(나마 초콜릿은 돈이 아깝지 않다) 진행한 후 11시 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함께해주신 여행사 가이드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덕분에 지난번 도쿄 자유여행과는 또다른 느낌의 단체/패키지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확실히 3박 4일은 짧았지만 규슈 지방의 자연풍경, 항구와 내륙, 전통과 현재를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또 쉴 땐 좀 쉬고 싶다는 핑계로 - 여행을 다녀온지 한참 지난 지금 시점에서야 지난 여행 때의 기록들을 모아 이렇게 정리하면서 - 아직 규슈를 다 본 것도 아니므로 나가사키, 가고시마, 오키나와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또 짜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한국인들이 마음의 장벽 없이 언제든 편하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방문하여 즐길 수 있도록 - 양식 있는 일본분들이 과거사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고 별 것 아닌 장벽 하나만 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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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9. 17:45 일지/해외여행

3일차에는 다시 후쿠오카로.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다는 태재부 천만궁(다자이후 텐만구)을 둘러보았다. 스가와라라는 인물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가이드의 안내로 간략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관광객들도 관광객들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제를 올리고 있었는데 혹시 학부형들이 아닐까 추측.

점심은 기타큐슈로 이동 중 어느 거리의 스시집에서 스시 정식으로 먹었고, 기타큐슈 도착 후에는 르네상스풍 옛 건물들을 둘러볼 수 있는 모지 항구를 둘러보았다. 도개교의 풍경도 인상적이었고, 유럽식으로 지어진 옛 건물들의 외부와 내부 그 자체의 위용은 물론 그 안에 채워진 컨텐츠도 볼만했다. 유럽식 석조 건물들의 위용/튼튼함은 더 말해 무엇하랴. 항구에 배를 대며 들어온 서양인들의 건축술을 빠르게 받아들인 일본인들의 건축술이 - 뒤늦게까지 흙을 발라 짓던 우리의 건축술을 앞서갔던 것은 당연한 이치. 현재 옛 서울역 건물과 부산의 옛 동약척식주식회사 건물도 아직 굳건하지 않은가.

다음 일정은 고쿠라의 부엌이라 불리우는 탄가이치바(탄가 재래시장) 둘러보기와 고쿠라의 상징으로 꼽히는 고쿠라 성 둘러보기. 항구에서 본 풍경과는 또 확연히 다른, 일본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장 근처에는 탐정 홍보 포스터도 붙어있던데, 퇴직 경찰들이 주로 선택한다고 한다. 고쿠라 성의 높게 지어진 천수각을 배경으로 사진도 넉넉하게 찍어두었다. 

석식은 호텔로 이동 중 일본 가정식이 나오는 곳에서 먹었고, 식사 후 잠시 대기하는 동안 근처 하비샵(hobby shop)에서 매드맥스2의 인터셉터 모형 발견. AUTOart 사의 1/18 모형인데, 본 김에 사둘 걸 - 아직도 후회가 남는다.

체크인한 호텔은 고쿠라역과 바로 이어진 리가로얄 호텔. 이곳은 얼음이 공짜로 제공되는 호텔인데다 도심을 내려다보는 야경도 좋았다. 일가족 모두 각자 방에 짐을 풀고 다시 만나 고쿠라역 번화가에서 즐겁게 먹고 마시고 -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는 우리 집안이 술 잘 마시는 집안이라고 - 엄청나게 퍼마신 뒤 기절했다(물론 집안이고 뭐고 술 앞에 장사 없다 - 나이들수록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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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9. 16:58 일지/해외여행

세키아 호텔의 조식 뷔페로 속을 채운 후 쿠로가와로 이동하던 중 가이드의 안내 - 평소에 보기 힘들다는 아소산의 전경이 마침 날씨 덕택에 깨끗하게 잘 보인다고 알려주셔서 - 잠시 버스를 세우고 광활하게 내려다 보이는 분지 지형과 함께 멋진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다. 실로 아소산의 전경은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동 중 버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의 새로움이 나를 흥분시켰는데, 한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갈 때 보던 풍경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강산이 다르다란 말이 이럴 때 나오는 것이구나 - 우리가 삼림이라고 할 때 들어가는 '林' 자는 평소에도 여기저기 많이 보이지만, '森' 자는 항상 생소한 느낌이었는데 - 빽빽하고 울창하다는 표현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는 높다란 삼나무/편백나무 삼림의 풍경은 그냥 말 그대로 '森林'이었다. 띠동갑 형이 기후가 좋아 나무도 잘 크겠다고 귀띔해 주었다.

쿠로가와 도착 후에는 온천마을 산책 관광. 그냥저냥 온천이 있는 마을이겠거니, 들여다 보지 않고 지나쳤다면 아까웠을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곳이었다.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느껴지는 것일까 - 아기자기하게 '마을'을 이룬 일본식 가옥들의 숲을 언덕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그리고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풍경 - 그리고 이 풍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나의 '마을'이라는 따듯한 느낌. 바로 지금 이곳이 아니면 전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라는 점 또한 매력이 아니었을까. '마을' 요소요소 아름다운 상점들을 구경하며 맛보는 것 또한 디테일한 재미였다.

점심 식사는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걸로 유명하다는 이케야마 수원지의 식당에서 일본 가정식 닭튀김으로 먹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최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이케야마 수원지 산책. 수원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무지막지하게 더운 여름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발을 담근 뒤 15초를 버티기 힘들 정도로 - 너무 차가워서 으악 소리와 함께 발을 빼면 발이 빨갛게 얼어있을 정도로 깨끗한 물. 그리고 수원지의 풍경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에서 본 것 같은 원시림 속 얕은 연못과 같은 풍경이었다. 땅 밑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맑은 물과 풍경을 실컷 즐기면서 물통에 물도 가득 담아두었다.

벳부로 이동하여 온천마을의 특산품이자 천연기념물인 유노하나 재배시설 구경 및 가마도지옥 관광.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6개의 온천들을 순서대로 구경하고 있었다.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며 족욕 즐기기.

그리고 그 유명하다는, 여성들이 꼽은 여행지 1위에 랭크됐다는 유후인 상점가 방문. 한국에 헤이리 마을이 있다면 일본에는 유후인이 있다 -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긴린코 호수를 둘러보면서 -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를 연주해주는 오르골도 하나 구입했고, 와이프의 인생템 중 하나인 고양이 에코백도 구입했다. 이 고양이 에코백은 확실히 유니크한 것이어서, 이 에코백을 메고 나가면 주변 반경 5km 이내의 에코백들은 모두 알아서 찌그러지게 되어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유후인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나나이로노카제 료칸에 체크인 했다. 일본에 와서 다다미식 료칸에 묵은 것은 처음 - 일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이불도 깔아주셨다. 잘 차려진 일본식 밥상을 눈으로도 즐기고, 혀로도 즐기고 - 전체적으로 숙소가 아늑하고 조용한 가운데 딸려있는 노천 온천도 사실상 혼자 쓰다시피 했네(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은 여탕). 어두운 밤에 벌거벗은 상태로 무릎까지만 온천에 담근 채 우두커니 서서 저 멀리 말의 두 귀가 쫑긋 솟은 듯한 산의 형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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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9. 16:03 일지/해외여행

외가 친척들과 일본의 서남쪽 규슈 지방 단체 여행이 성사되었고, 인원은 우리 식구 10명에 모르는 분들 4명 정도 - 여행사 베테랑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객을 위해 특별 제작되었다는 버스(풍경을 감상하기 좋도록 창을 높고 크게 달아놓은)를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2017년의 도쿄 도심 여행과는 다르게 자연풍경 위주로 즐길 수 있는 점, 그리고 가이드를 믿고 요소요소를 방문하여 편안하게 즐기면 되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다.

먼저 오전 10시 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후 하카타 항구를 감상. 한국에선 들어본 적 없는 듯한 매미 소리가 벌써 타지의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침 광복절인 8월 15일, 역사적으로는 광복 소식을 듣고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카타 항구에 줄지어 서 있었던 곳이라고. 점심 식사는 짱꼬나베를 먹었고, 이후 인공 운하 위의 도시라 불리우는 복합쇼핑몰 캐널씨티를 즐겼다. 캐널씨티는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의 작품이라는데 - 건물에서 내다보는 건물, 건물에서 들여다보는 건물이라면 맞는 표현일까 - 무척 독특한 느낌이었다. 상점들을 신나게 구경한 뒤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피자 한 조각.

후쿠오카에서 야나가와로 이동하면서 가이드의 설명도 열심히 들었다. 일본의 차 번호판은 일반적으로 흰색, 영업용은 초록색, 경차는 노란색, 그리고 올림픽용 특수 제작 번호판이 바로 무지개 색깔이라고. 야나가와 도착 후 야나가와 뱃놀이 시작. 역시나 일본의 무시무시한 햇빛과 더위는 여전했지만, 수로를 따라 유유자적 - 노 젓는 분의 노랫소리도 감미로웠다.

다시 농업이 크게 발달했다는 구마모토로 이동 - 산 속의 세키아 호텔에서 저녁 뷔페를 들었다. 음식 중에 맛있는 반건조 생선이 있길래 뭔가 했더니 둘째이모부 말씀이 정어리라고. 정어리라고 하면 기억나는 건 - 옛날에 외할아버지께서 밥상에 올라온 정어리를 보고선 왜 기름 짜고 버리는 생선을 밥상에 올렸냐며 화를 내셨더란 이야기 - 막상 먹어보니 맛있기만 한 것을. 식후 호텔 온천욕을 즐긴 뒤 일가족이 따로 방에 모여 왁자지껄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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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4. 21:20 일지/해외여행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8일차. 나름 교통의 중심지에 잡는다고 잡아두었던 신주쿠 가부키초의 호텔과 작별을 고하며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한국의 마트 처럼 규모가 큰 약국(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에 들어가 한국에 가져갈 물건 몇 가지를 샀다. 점원과 직접 돈을 주고받지 않고 앞에 놓인 돈통에 돈을 내려놓는 문화를 체험할 일도 얼마 남지 않은 작별의 시간.

 신주쿠 역에서 다시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길에 출국 게이트가 헷갈려 한 정거장 먼저 내린 일도 있었다. 그리고 공항 편의점에서 적당히 담배와 과자를 산 뒤 일식집에서 소바와 덴뿌라를 먹었다. 이쪽도 돈이 아깝지 않게 맛있고 푸짐했다. 옆옆자리 서양인 여성은 장어를 시킨 듯했는데, 아무래도 장어를 먹기 힘들어하는 듯했다. 가만히 일본에 와서 뭘 먹었나 생각해 봤다. 스시, 사시미, 츠케멘, 라멘, 돈부리, 돈가츠, 함박스테이크, 카레, 소바, 덴뿌라, 오코노미야키, 규동, 타코야키, 샤부샤부, 꼬치, 화로구이, 스시집에서 시켰던 여러 요리 등등. 다음에 오면 안 먹어본 것들을 먹어볼 생각이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서울 상공을 내려다 보니 떡하니 홀로 높이 솟은 롯데월드 타워가 보였다. 이명박 정권 때 공군과의 마찰 등등 여러가지로 시끄러웠었지만, 어쨌든 세워놓고 보니 여기가 서울인 줄 알겠더라는. 그리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확실히 일본의 것에 비해 보다 넓고 쾌적한 지하철. 하지만 내가 서울에 살아서 그런가 - 별로 가볼 만한 곳도 없고, 편의점이든 식당이든 내 돈이 아까운 느낌(그래도 병신같은 지도자를 끌어내릴 땐 시원하게 끌어내릴 줄 안다). 열심히 지하철 안에서 중국어로 통화하는 아주머니. 등산복을 입고 걸어가며 길바닥에 침을 뱉는 할아버지. 그리고 캐리어를 끌고 부랴부랴 - 일본 식당들의 위생 관리와 비교해 보면 꾀죄죄하기 그지없는 분식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시켜먹기 시작하는 우리 부부. 좋든 싫든, 고향에 돌아왔네. 철도는 여러 회사가 난립해서 어딘가 난잡하지만 컨텐츠가 많고 진짜 중요한 인프라엔 철저한 일본과 지하철 인프라는 어쩐지 통일됐지만 컨텐츠는 없고 진짜 중요한 인프라는 허술한 한국. 지겹게들 떠드는 말이지만,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인 것 같다. 수탈로 이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더 큰 나라인 건 분명했다.

posted by 생마
2017. 9. 4. 21:03 일지/해외여행

 그동안 도쿄 시내를 쭉 둘러봤으니(물론 여전히 더 봐야 할 것들이 많지만), 도쿄 근교의 자연을 좀 만끽해보자는 생각으로 노숙자가 자리를 깔아놓은 굴다리를 지나 신주쿠역 오다큐 선으로 이동했다. 사무소 직원 분이 한국어를 워낙 잘 하셔서 편하게 하코네 프리패스를 끊은 후 로망스카에 탑승했다. 창밖으로 도쿄 근교 경치를 감상했는데, 제주도에서 봤던 '오름' 같은 언덕들이 몇 군데 보였다. 생각해보니 일본이 섬 지형인 게 당연. 그래서 말들을 많이 키우고, 말고기도 먹는 것인가? 

 하코네유모토 역에서 내린 후 스위스에나 있다던 등산 전차라는 걸 처음 타봤다. 정말로 전차가 산 속 이리저리 철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산 속 여기저기 역마다 사람 사는 마을들이 있었다. 신기한 경치였다. 등산 전차에서 내린 후 등산 케이블카를 탔는데, 보통 한국에서 생각하는 케이블카는 일본에서는 로프웨이라고 부르는 듯했다. 등산 케이블카는 로프웨이가 있는 높은 곳까지 운행되는 열차였고, 높은 산 위에서 다시 로프웨이로 갈아타며 본격적인 하코네 여행 시작. 그러나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 기상이 좋지 않아 온통 안개만 보였는데, 날씨가 좋을 때는 멀리 후지산 경치도 볼 수 있다는 곳이었기에 아쉬움이 더욱 컸다. 원래 산 날씨가 지랄맞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하필 오늘 말썽이란 말인가. 가스를 뿜는 화산 지형이 보인다는 오와쿠다니 역에 내리고 보니 온통 짙은 안개에 비구름이 껴있어서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전방 2미터 앞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후지산은 개뿔 화산 가스 냄새만 맡았다. 에리뉴우요크라는 게 있어서 호텔에 묵지 않더라도 노천 온천만 이용할 수 있다길래 후지산이 보이는 노천 온천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봐 두었었는데, 꼼짝없이 일정을 취소하게 된 상황. 해적선도 날씨 때문에 출항하지 않고 있어 항구 식당에서 카레에 소시지로 배를 채우고(맛있었다) 다시 우리가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로프웨이를 탔다. 로프웨이 안에선 뒷자리 영어권 관광객들이 'We are wasting time' 같은 말들을 하고 있었다. 나도 'We bought Hakone donation pass'라고 농담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날씨를 사람이 어찌 알겠나. 이마가와 요시모토도 안개가 그렇게 낄 줄 모르고 있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죽었겠지. 옆자리에는 인도인 가족들이 타고있었는데, 역시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하산 전차 맨 앞칸에서 근처 경치를 감상하다가, 산과 산을 잇는 커다란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무지개라는 걸 대체 언제 보고 못 봤는지 기억도 제대로 없는 시점에, 엄청나게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무지개는 또 처음 보는 풍경. 출발할 때 탔던 로망스카는 쾌적했지만, 복귀할 때 탄 일반열차는 통근하는 사람들과 함께 타는 시루떡 열차였다. 서울도 이렇게 매일매일 돌아다니라고 하면 힘들어서 다 못 다닐텐데, 그동안 정말 열심히 도쿄를 쏘다녔던 터라 쌓였던 피로가 왕창 몰려오고 있었다.

 다시 신주쿠로 온 뒤 저녁을 대체 뭘 먹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와이프가 오모이데요코초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해서 오모이데요코초를 다시 방문. 그리고 일본식 화로구이 집에서 소, 돼지, 닭의 여러 부위와 야채를 구워먹었다. 웬 검정색 탄을 집어넣어 놓고 숯불이라고 뻥치는 한국의 여러 식당들에 크게 한 방 날려주는, 새하얀 숯이 눈부신 화로였다. 그리고 이 가격대에 비싼 소를 쓸 리가 없는데 - 어차피 수입산인 게 뻔하지만 - 희한하게 구워도 구워도 육즙이 계속 삐져나오는 소고기여서 와이프와 어이없어했던 장면도 있었다. 나마비루(생맥주)와 사케(니혼슈)를 번갈아 마시며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 역시나 편의점에서 맛있는 것들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여기는 모든 편의점이 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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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4. 20:07 일지/해외여행

 6일차. 아주 잠깐 흐렸지만 대체로 맑았던 날. 이제는 주변 지리가 은근 익숙해져서 신주쿠 역 말고도 주변 세이부신주쿠 역이나 신오쿠보 역 등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도 세븐일레븐의 91엔짜리 2리터 물을 사서 호텔의 제빙기 얼음과 함께 휴대용 물통에 담아 다니는 노하우가 생겼다.

 먼저 우에노 공원으로 향했다. 원래는 네즈 신사도 보기로 했는데, 신사는 커다란 신사와 자그마한 신사를 모두 봤으니 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빼기로 했다. 한국에 교회가 많은 것처럼 곳곳에 신사가 심심찮게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친구에게 일본은 양식도 잘 발달돼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대체 어떤 느낌인지 몰랐는데 - 우에노 역에서 내려 함박스테이크를 사먹으면서 딱 알 수 있었다. 이건 진짜 고기만 똘똘 뭉친 것이라는 강렬한 맛과 향이 느껴졌다. 하기야 편의점에서 파는 게맛살도 게맛살이 아니라 그냥 게살만 똘똘 뭉친 것 같았고, 크림빵에 크림은 또 얼마나 빵빵하게 들어차있던가. 뭘 사먹든 돈 값은 하는 곳이었다. 우에노 공원으로 들어서기 전 우에노 시장 처럼 보이는, 마치 남대문 같은 상점 거리도 둘러보았다. 별의별 상점들이 다 들어와 있었고, 규모도 상당했다. 내가 죽은 상권에 가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어디든 잘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

 우에노 공원 안에는 아름답게 지어진 사당들이 있었고, 감탄이 나오는 연꽃 호수와 그 안의 내 허벅다리 만한 잉어들. 절에 들어가서는 향도 하나 사다가 꽂아두었다. 미대 근처라 그런지 그림 그리는 미대생들도 보였고, 불교 관련 포인트들이 있어서 천주교인들이 성당 투어하듯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우에노 공원에 온 가장 큰 목적 - 도쿄국립박물관 앞으로 갔다. 그리고 좌절했다. 하필 오늘이 문을 닫는 날이었던 것이다. 미리 알아보지 않고 온 내 잘못인가 한참을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꼭 내 잘못이라기 보다는 경험 부족 - 사고를 확장할 수 없었던 경험 부족이랄까? 내가 한국인으로서 가진 사고방식으로 보자면, 국립박물관이 평일에 문을 닫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은 1년에 딱 신정, 설, 추석만 쉬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도 그러할 것이라는 예단을 했던 것이었다. 와이프와 벤치에 앉아 잠깐 쉬다가 도쿄 스카이트리 이야기를 꺼냈다. 며칠 전에 비싸다고 올라가 보지 않았던 그곳 - 넉넉치 못한 환경에서 자라 아끼는 게 습관이 된 삶, 지평을 넓혀야 할 순간에 멈칫멈칫 어딘가 부서진 경험을 가지게 된 삶을 반복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 이왕 도쿄 구경하러 온 거 높은 곳에서 한 번 둘러보고 싶었다.

 다시 도쿄 스카이트리에 도착해 외국인 전용이라는 빠른 티켓을 끊고 높이 450미터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도쿄 전체를 한눈에 본 건 아니고(360도니까), 창문 여기저기로 빙빙 돌면서 마음껏 내려다 보았다.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도시. 대체적으로 건물들이 모두 낮은 가운데에 높은 빌딩들은 곳곳에 조금씩 모여있는 도시. 지진 때문에 높은 건물들은 허가를 받기 위한 허들이 높고, 돈도 많이 든다고 이야기 들었다. 그리고 목조 건물들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고. 꼭 누군가 심시티 게임을 해놓은 것처럼 항구에서부터 여기저기 강줄기와 철도, 다리가 적절하게 - 그리고 학교와 수영장, 운동장, 녹지 또한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런 적절한 배분이 서울 보다 훨씬 큰 규모로 펼쳐져 있는 메가시티. 한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중심에 시멘트로 큼직큼직하게 발라서 여기저기로 쫙쫙 뻗어놓은 풍경과는 확실히 달랐다. 서울보다 훨씬 큰 곳? 훨씬 번화한 곳? 왜 좀 더 일찍 경험해보지 못했을까? 와이프와 도쿄 스카이트리 위 카페에서 도쿄 풍경을 감상하며 차와 케이크를 즐기고 내려왔다.

 다음 행선지인 시부야에 도착. 그 유명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한가운데서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와이프와 동영상을 찍었다. 신주쿠가 교통의 중심지이자 관광객들이 많고 유흥가가 섞여있는, 살짝 연령대가 높은 곳이라면 - 시부야 첫인상은 확실히 보다 젊은 곳이라는 느낌. 신주쿠 보다는 거리가 약간 더러운 편이었지만, 하라주쿠 처럼 연령대가 확실히 내려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번화가 어딘들 안 그렇겠냐마는 '우리 인구 많고 내수 죽여준다'고 외치는 듯한 인상. 시부야에선 오코노미야키를 사먹었다. 처음 시킨 건 점원이 해주었고, 두번째 것은 내가 직접 해서 먹었다. 일본식 두꺼운 부침개 같은 음식이었는데 맛있었다. 신주쿠로 돌아와서는 거리에서 파는 과일 슬라이스를 사먹어 보았다. 가격도 싸고, 상태도 괜찮고, 양도 많았다. 멜론, 파인애플, 수박 등등 - 한국에 이런 상점이 있었다면 매일매일 사먹었을텐데.

 호텔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도쿄에 관광 다니는 서양인들은 서양인들대로 확실히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핫팬츠와 나시, 슬리퍼 등 매우 편한 차림에 타투도 즐겨 하는 - 남 의식 잘 안 하는 사고방식. 의자가 아닌 길바닥이나 계단 등지에 철푸덕 잘 앉는 사람들은 내가 목격한 범위에선 모두 서양인들이었다(예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고가 더 자유로운 부분들이 있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남들을 철저히 의식하는 기본 베이스(동양적인)에 사적인 영역을 구축했고, 서양인들은 남들을 그렇게 의식하지 않는 기본 베이스에 공적인 영역(에로망가를 보고 어이없어했듯 - 아마 공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만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을 구축한 것 같다는 짧은 생각. 확실히 한국 사람들은 서구화된 측면이 있는 것 같았다. 일본에 와보기 전엔 한국 사람들이 대체로 서양인들처럼 시원하게, 편하게 입는 편인지 몰랐기도 했고(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수 없었으니), 요새 한국 젊은이들은 타투도 즐겨 하지 않던가. 어느쪽이 잘났니 못났니 따지려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사고방식의 차이를 어느정도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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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4. 19:03 일지/해외여행

 5일차. 조금씩 비가 내려서 습도가 상당히 높았지만 더위는 조금 주춤했던 날. 오전부터 배가 고파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전날 친구에게 추천받았던 이치란 라멘(신주쿠)을 방문했다. 다행이 줄이 전날 봤던 것처럼 바깥까지 길게 늘어있진 않았으나, 어쨌든 자판기에서 식권을 구입한 후에도 꽤 기다려서 들어가야 했다. 줄을 서있는 동안 음식의 세부사항 - 매콤한 정도라던가 면의 쫄깃한 정도 등등을 골라서 점원에게 제출했다. 이후 칸막이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독서실 부스 같은 곳에 앉아있으니 점원이 완성된 라멘을 정면에서 내어준 후 정면의 대나무 발을 내려주었다. 와이프와 나 사이의 칸막이를 접지 않았다면 완벽하게 누구의 눈치도, 방해도 받지 않는 사적인 공간이 생기는 셈이었다. 벌써 음식의 주문 단계에서부터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주문을 받지 않았던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나라다웠다. 이후 국물을 한 번 떠먹은 뒤 와이프와 함께 깜짝 놀라버렸다. 국물의 깊이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국물의 깊이가 담보되니까 - 그 위에 쫄깃한 면을 넣든, 푸석한 면을 넣든 - 맵게 하든, 느끼하게 하든, 어떻게 하든 근본 없는 맛이 나올 일은 없겠지 싶었다. 이치란 라멘이 뭔가 베이직한 라멘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는데, 어떤 평가를 내리든 일단 내 혓바닥은 대만족을 외쳤다.

 신주쿠 가부키초 호텔과 신주쿠 역(교통의 중심지 느낌)을 기점으로 여기저기 다닌지 4일이나 되었는데, 이제 좀 헷갈리지 않고 잘 다닐 수 있겠다 싶은 시점에 또다시 신주쿠 역에서 좀 헤매고 말았다. 왜 일본사람들도 헷갈려하는 신주쿠 역인지 알 수 있었다. 역시나 철도 회사마다 자기들만의 사적인 영역을 구분해놓은 덕분이겠지. 

 첫 행선지는 구단시타 역의 키타노마루 공원. 먼저 일본의 무도관(부도칸)이 보고 싶었다. TV로 격투기 행사를 볼 때 봤던 그 무도관. 한국의 국기원에 해당하는 곳. 검도인들이 각자의 검을 가지고 북적북적 몰려서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 한국 격투기가 침체였을 때 한국의 많은 파이터들이 일본에서 활동했었는데, 그만큼 무(武)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았다. 검도 뿐이랴. 유도와 가라데를 배우는 사람들도 무도관이 얼마나 친숙할까. 이후 무도관을 거쳐서 과학기술관을 지나 히가시 교엔으로 이동했다. 커다란 해자(연꽃잎으로 온통 뒤덮인)를 건너 불타 없어진 성의 성터와 아름답게 꾸민 공원, 정원, 호수 등등.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본인들이 작고 좁게 쓰며 아낀 공간들을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된 - 통 큰 녹지로 잘 활용한다는 느낌이었다. 넓은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았으나, 아쉽게도 고쿄와 궁중삼전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긴자로 향했다.

 긴자의 쇼핑 거리는 볼까말까 고민했던 곳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 앞 북적이는 도로도 인상적이었지만, 긴자의 주말은 차도를 모두 막고 사람들만 다니게 해두었는데 - 높다란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각종 명품샵과 패션 상점, 기기 상점 등등을 품고 있었다. 한국에 대입해 보자면,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그대로 합친 후 상권이 대활황인 상태로 5~10년 정도 더 발전하면 이런 느낌이 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수많은 관광객들도 관광객들이지만 역시나 한국의 세 배에 육박하는 인구 - 확실히 이 사람들이 인도만으로 다니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그러니까 차도를 막고 길을 열었겠지). 그리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유럽식 복장을 즐겨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귀족 느낌인가), 특히 노인들이 신사적으로 잘 차려입고 다니는 게 놀라웠다. 내가 복장에 크게 신경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질구질한 옷이나 등산복 차림으로 다니는 노인들만 보다가 - 꼭 비싸고 화려한 옷이 아니더라도 - 단정하게 차려입고 손수건을 챙긴 그들의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긴자에서 벗어나 아키하바라까지 걸었다. 슬슬 취미 상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메이드 카페 홍보 모델들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와이프와 함께 간식으로 - 한국 길거리에서 파는 것 말고 - 진짜 일본의 푸짐한 타코야키도 사먹어 보았다. 이런저런 상점들을 하염없이 둘러보며 체력을 불태웠다. 동생이 좋아했던 버스와 기차 모형 상점들도 많았고, 어렸을 때 플레이 했던 에로게 상점들도 있었다(천사들의 오후와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 그리고 앨리스소프트의 작품들이 기억난다). TCG 게임장이 눈에 띄었는데, 뭔가 행동은 서투르지만 카드 컬렉션 만큼은 혼모노였던 사람이 인상적. 사실 TCG가 흥하려면 이렇게 잘 마련된 친목의 장, 오프라인 게임장이 필요한데 - 역시 아키하바라는 세계적인 중심지이니 잘 발달이 되어있을 수밖에. 세가 빌딩 안의 게임기들은 입력 디바이스 종류가 상당히 다양했다. 단순히 카드를 올려놓는 것 이상의 경험을 추구하는 듯했다. 실물 카드를 들고 다니며 이렇게 사람의 눈과 귀를 홀리는 멋진 기기를 통해서 혹은 살아 숨쉬는 앞 사람과 직접 대전할 수 있는데 그깟 조그마한 휴대폰 화면이 눈에 들어올까 싶었다. 일본을 잘라파고스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세상 안에서는 충분히 즐길거리가 발달되어 있었다. 에로망가 상점에선 서양인 부부가 뭔가 자기들 기준으론 너무 희한하다는 듯 웃고 있었는데, 이렇게 일본인들 처럼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룰을 지키고 - 어제 저녁 식당에서 봤듯 절도를 유지하려면 정신적인 피곤함을 풀 수 있는 사적인 영역도 분명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크가 트롤을 강간하는 만화든, 문어가 정어리로 자위하는 만화든 뭐든 -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그 사사로운 발상의 자유가 무슨 문제겠나. 물론 그 서양인 부부의 기준에선 우스웠겠지만. 엠스타워라는 성인용품점도 둘러봤는데, 생각보다 통로가 너무 비좁아서 고생했다. 나오는 길에 인형뽑기 기계 앞에서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진 청소년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인도인인 듯했는데, 동전 지갑에 동전이 엄청 두둑했다. 일본은 관광객들 상대로 돈 참 쉽게(?) 버는구나 싶었다(일단 유명 캐릭터가 많으니까).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신오쿠보 역의 돈키호테 상점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종합 마트였다. 멘토스 콜라맛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저녁은 요시노야 규동집에서 먹었는데, 와이프는 얇은 불고기 몇 개 올린 밥 무더기라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한국인 입장에선 큰 메리트를 느끼기 힘든 음식이었던 것 같다. 어김없이 편의점에 들려 이것저것 맛있는 것들을 사서 호텔로 복귀했다. 북적대는 신주쿠 중심 편의점에선 영어 잘하는 동남아 점원이 여전히 활약중이었고(관광객들 정말정말 많았다), 풍속점 앞의 흑인 형님들도 역시나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일본 AV에 나오는 흑인 형님들은 대체 어디에서 데려오는 걸까 궁금했는데, 뭔가 궁금증이 해소된 느낌이다).

posted by 생마
2017. 9. 4. 18:02 일지/해외여행

 4일차. 하라주쿠 역에서 내려 메이지 신궁으로 향했다. 커다란 나무들이 즐비한 숲길을 따라 걸어들어갔는데, 아쉽게도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신궁은 보수공사중이어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처마와 등(燈), 제사 지내는 사람의 복식 등을 구경하다가 옆길로 꺾었다. 숲 속을 계속 걷다 보니 햇빛이 화사하게 내리쬐는 너른 잔디밭이 나왔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풍경 - 마치 서양인들이 너른 잔디밭에 비키니만 입고 누워 일광욕을 즐기듯 - 그렇게 즐길 만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비키니를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아저씨 하나가 팬티만 입고 깔개 위에 누워있었는데 -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니 무도장(武道場)과 궁도장(弓道場)이 보였는데, 외부인 출입 금지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이렇게 자라 가족이 목을 빼고 일광욕을 즐기는 호숫가 앞 숲냄새가 나는 곳에서 수련하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다시 길게 돌아서 메이지 신궁을 나와 바로 옆 요요기 공원도 가보았다. 이렇게 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반팔과 긴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일본인들은 이런 더위를 어떻게 견딜까). 수많은 사람들이 동아리 모임도 하고, 소풍도 즐기고 - 일본 여기저기에서 수시로 목격할 수 있는 까마귀들까지 신바람이 난다는 듯 총총거리고 있었다. 요요기 공원을 나와서는 역 앞 타케시타 거리도 구경했다. 곳곳의 숨은 상권들이 꽤나 활황인 느낌. 북적북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매장인 '설빙' 앞에 줄줄이 줄을 서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이미 수요일에 맛 없는 빙수를 맛봤던 터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에서 면 종류 음식도 많이 팔지만, 일본인들이 크레페도 많이 먹는 듯 크레페 매장도 많이 보였다. 녹차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다시 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녁에는 일본의 모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커플과 저녁식사. 신주쿠 역 자체가 복잡하니 친구 커플이 우리가 찍어준 주소를 보고 호텔 앞까지 와주었다. 넷이 함께 신주쿠산초메 근처 무지 커피숍(무지가 커피숍도 하는 줄은 몰랐다)에서 음료를 한 잔씩 마신 후 - 예비 제수씨(?)가 예약해 두셨다는 흑돼지 샤부샤부 집으로 향했다(일본의 샤부샤부는 고급 음식에 속한다고 한다). 친구가 주문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주문을 모두 마친 후 친구가 절도있게 '하이!'라고 하자 점원도 절도있게 '하이!'라고 하며 주문을 마쳐주었다. 마치 무도인들간의 대화 같았다(오쓰!). 코스요리를 들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다이바의 'Zepp Tokyo'는 공연장이라고 한다. AKB48 처럼 SKE48도 해당 지역에서 48명을 선발한 아이돌 그룹이라고. 그리고 우리 부부가 가보려고 했던 쓰키지 시장은 새벽 3~4시 쯤 가서 자리를 잡아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팁을 주었다. 그때그때 제대로 된 수산물을 가져와서 싱싱하게 회를 쳐 먹는 곳이라 점심 때 가면 제대로 문 연 곳도 없고, 있더라도 수산물이 별로일 거라고. 덕분에 쓰키지 시장 일정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도쿄에 대한 감상도 이야기 나누었는데, 도쿄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고 하니 일본의 47 도도부현 중에 도쿄도(東京都)만 도(都)를 쓰는 곳이라고 했다. 나리타 공항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알 수 있었다. 나리타 공항을 확장하려는 정부에 저항하는 농민들의 투쟁이 아주 강렬해서, 결국엔 정부가 포기하고 하네다 공항을 다시 확장하고 있다고 - 나리타 공항에 내리기 전 하늘에서 봤던 풍경이 떠올랐다. 농민들 쉽게 보고 저렴한 땅에 밀고 들어가려다 실패한 모양인가 - 그래도 자기 나라의 농업을 존중해서 손해본 나라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술집은 신바시 역의 카라쓰모리를 추천해 주었고(일정상 가보진 못했다), 맥주는 같은 브랜드여도 각 지역의 공장 마다 맛이 달라서 입맛에 맞는 걸 마셔야 한다고(친구는 맥주 보다는 하이볼을 즐기는 듯했다). 라면은 이치란, 규동은 요시노야, 둘러볼 만한 쇼핑몰은 신오쿠보의 돈키호테 상점.

 자연스레 음식 이야기로 깊게 들어가다 보니 일본의 가쓰오 국물과 한국의 멸치 국물 이야기가 나왔다. 확실히 가깝지만 다른 나라인 것 같았다. 한국이 멸치와 마늘이라면, 일본은 다랑어와 생강이라는 느낌인가? 멸치 잡는 기술이 일제시대에 한국에 들어왔다는데, 일본인들이 멸치를 즐기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멸치가 비싸지니까). 김치 얘기도 나왔는데, 솔직히 나는 일본의 베니쇼우가도 좋아하기 때문에 우열의 문제는 아닌 듯. 와이프가 어렸을 때 잠깐 살았던 적산가옥 이야기에선 - 난방 시스템은 확실히 한국의 바닥 난방이 승리하는 것으로 결론. 깨끗한 길거리 이야기도 나왔는데, 신주쿠 길거리가 특히 더러운 편에 속한다는 게 어이없었다. 이정도면 진짜 양반인데. 예비 제수씨의 고향이 큐슈인데, 큐슈인들의 자부심(친구의 표현에 따르자면)에 비춰보자면 - 도쿄는 난폭한 도시라고 했다. 난폭? 부딪히면 바로 고개 숙이면서 스미마셍을 연발하고, 지하철에서 절대 전화 통화 안 하고, 수수해 보일 정도로 단정하고 보수적으로 입는 회사원들이 남에게 피해 안 주려는 인상을 팍팍 풍기는 도쿄 사람들이 난폭하다니? 그럼 서울 사람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친구와 결혼 후 한국에 살아보고 싶어하시는 예비 제수씨에게 한국은 더욱 조심하시는 게 좋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내가 매국/사대주의로 자국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인상이 그렇다 - 그들의 혼네가 어떻든 일단 겉으로라도 서로 조심하면서 사는 게 얼마나 쾌적한지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른다 - 물론 그들만의 정치와 사회체제 속에서의 삶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더운 열기를 참으며 샤부샤부를 열심히 조리해 주신 예비 제수씨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2차는 신오쿠보의 한국식 디저트 카페. 한국식 디저트 카페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하라주쿠 역의 '설빙'에서 한 번 확인했고, 저녁에 신오쿠보에서 다시 확인했다. 물론 한국 인구의 거의 세 배에 육박하는 일본 인구가 연출해내는 상권 활황의 열기가 어딘들 뜨겁지 않을까 - 그래도 카페 전국(戰國)시대가 열렸던 한국 나름의 노하우가 있겠거니. 카페에서 친구가 추천해준 켄트 스파크를 한 대 피운 뒤에(친구의 '글로'는 옥수수 찐 냄새가 났다) 모두 함께 거리로 나와 한국 식품점을 둘러본 후(예비 제수씨가 한국을 좋아해 주셔서) 신주쿠 역에서 즐겁게 헤어졌다. 친구가 일본으로 유학갈 준비를 하던 시절, 친구 방에 들어갔을 때의 생각이 났다. 마치 영화에서 보던 한 장면 처럼 온 방안이 - 일본에서 쓰는 한자를 적은 포스트잇으로 말 그대로 '도배'가 되어있었던 장면. 내가 무언가에 그렇게 활활 불타올랐던 적이 있었나 궁금해졌다. 

posted by 생마
2017. 9. 4. 16:59 일지/해외여행

 3일차. 아사쿠사 역에서 내려 나카미세도리를 거쳐 들어가 그 유명한 센소지사 방문. 호텔에 비치된 제빙기에서 뽑은 얼음을 가져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무지막지하게 몰려드는 관광객들 머리 위로 무시무시하게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일본. 정말 뜨겁다. 확실히 남쪽 나라다. 거대한 절을 둘러보며 향 냄새도 맡고, 길흉화복도 점쳐 보았다. 유카타를 빌려입고 나막신을 신은 관광객들이 각자의 언어로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유카타 대여로 벌어들이는 수익만 해도 엄청날 것 같았다. 센소지사 이곳저곳에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가 많아 유행 지난(?) 셀카봉으로 와이프와 마구 사진을 찍었다.

 다음 행선지는 도쿄 스카이트리. 시원한 물줄기의 스미다강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가기 전에 어느 역 밑 모스버거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를 내주는 점원이 '오네가이시마스~'라고 했는데, 이건 부탁한다는 뜻이 아닌가? 대체 뭘 부탁한다는 걸까? 갸우뚱하며 햄버거를 봤는데 소스가 말도 안 되게 푸짐하게 뿌려져 있었다. 이놈을 잘 처리해 달라는 뜻이었을까? 부탁받은대로 아주 공격적으로 처리해 주었다. 일본인들이 자주 마신다는 진저에일도 곁들었다. 개인 주택들이 있는 거리를 걸으며 멀리서도 보이는 높다란 도쿄 스카이트리로 이동했다. 주택가는 말도 안 되게 쾌적하고 깔끔했다. 도보와 자전거, 자동차가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유카타를 입고 나막신을 신은 여인 둘이서 우리 부부 앞을 걷고 있었다. 나막신 딸각거리는 소리를 직접 듣는 건 처음이었다. 그 나라의 전통 복장을 어디론가 놀러갈 때 거리낌 없이 즐겁게 입을 수 있는 사고방식. 정말 부러웠다. 전통은 어렵다 - 발견해야 하고,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보전해야 하고, 홍보해야 한다. 언젠가 한복도 우리네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스카이트리는 일단은 사진만 남기고,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 올라가보진 않았다(결국 며칠 뒤에 올라간다). 부부가 무더위에 꽤 지쳐있던 상태라 도쿄 스카이트리 아래 상권을 둘러본 후 일찌감치 신주쿠로 돌아왔다. 일본의 지하철 안은 조용할 줄 알았는데, 며칠 다녀 보니 서로 이야기 나눌 사람들은 즐겁게 나누는 풍경이었다. 물론 절대 전화 통화를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은 철저하게 지키는 듯했다. 신주쿠에 도착해 주의깊게 살펴보니 의외로 나시를 입은 일본인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햇빛이 너무강렬해서 그런가?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대체적으로 수수하고 단정하게 입는 회사원들이 많이 보였다. 물론 멋을 낸 젊은이들도 금요일을 즐기러 많이들 나와있었다.

 저녁은 스시집에서 무제한 가격을 내고 엄청나게 먹어대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있는 터치패드로 주문하면 주방에서 만들어 내오는 시스템이었는데, 이곳에도 동남아 출신 점원이 있어 의사소통에 문제 없이 먹을 수 있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밥 위에 올려진 수산물들이 아주 크고 길었다. 계산할 때 나오는 영수증에는 그냥 한국 처럼 '무제한 X 2' 같은 글씨가 씌여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 시킨 모든 것들이 영수증에 줄줄이 찍혀나와 영수증이 너무 길어져서(무제한이라고 너무 많이 시켜먹었나 - 어쨌든 남김 없이 다 먹었다) 보기에 좀 우스웠다. 어쨌든 후쿠자와 유키치를 내밀었으니, 가게가 손해는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나와서는 마루한 파친코에서 파친코도 돌려보고, 파치스로도 돌려봤다. 순식간에 4천엔이 증발해 버려서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와버렸다. 역시나 호텔로 돌아가기 전 편의점에 들려 여러가지 맛있는 것들 - 돈이 아깝지 않게 잘 만들어져 있는 먹거리들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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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4. 16:19 일지/해외여행

 간밤에 창밖으로 국제전시장역과 도쿄 빅사이트를 오가는 대규모 인파를 내려다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첫 호텔에서 체크아웃. 다시 캐리어를 끌고 나와 오다이바를 마저 둘러보기 시작했다. 야경을 보며 건너온 꿈의 대교를 다시 건너 다이버시티로 향했다. 걸어가는 길에 보니 유니폼을 입은 중장년 인력들과 차트를 든 관리 인력들이 주변 조경을 관리중인 장면을 목격했다. 아기자기하면서 깔끔하고 아름다운 일본의 조경은 섬세한 관리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손길로 유지되는 것이었다. 투자한 만큼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런 여유가 내심 부러웠다.

 다이버시티에 도착. 사실 건담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관광 포인트로 소문난 커다란 건담 조형물을 한 번 보고 싶었으나 - 마침 유니콘 건담으로 바꾸는 교체 작업중이어서 다리만 조금 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돈가츠 덮밥을 먹었는데, 엄청난 충격이었다. 안에 든 돼지고기가 지나칠 정도로 두터웠고, 겉의 튀김옷은 지나칠 정도로 얇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 돼지고기가 얇고, 튀김옷이 두터운 돈까스와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복합쇼핑몰의 식당이라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한국의 복합쇼핑몰에서도 이정도 가격인데 - 가격 대비 품질이나 양이 확실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관광객들도 관광객들이지만 주변 직장인이나 학생, 방문자 등등 다이버시티 안에 사람들 자체가 워낙 많아 상권이 활황. 다음 행선지는 그 유명한 후지TV 건물. 그냥 겉에서 특이한 모습만 보고 지나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직접 가보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그 긴 행렬을 앞뒤로 감상할 수 있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바닷가의 높은 지대여서 바람도 아주 시원했고, 때마침 원피스 관련 행사중이어서 커다란 원피스 캐릭터들과 함께 즐거운 사진 촬영도 할 수 있었다. 후지TV에서 내려와 오다이바 자유의 여신상 구경하고, 오다이바 해변에서 휴식도 취했다. 곳곳에 흡연 부스가 있어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햇빛이 너무너무 강렬해서 온 살갗이 빨갛게 익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도쿄텔레포트 역에서 신주쿠 역까지 철도로 이동. 길 잃기 쉽다고 소문난 신주쿠 역에서 어찌어찌 거대한 지하도를 거쳐 동쪽 출입구로 나와 두 번째 호텔로 향했다. 두 번째 호텔은 가부키초라는 신주쿠의 유명한 골목 안에 있었다. 이 호텔도 전날 호텔과 거의 판박이일 정도로 좁은 공간을 상하 인테리어로 커버한 곳이었다. 욕조도 좁지만 깊고, 변기도 작지만 깊었다. 서양인들은 글로벌 숙박 앱에 너무 'Tiny'하다고 표현했지만, 중간 정도 캐리어 하나에 부부 둘이 묵기에 이정도 가격이면 괜찮다고 생각했다(물론 침대는 조금 좁았지만). 무엇보다도 어제 공항에 내린 이후 첫 호텔을 거쳐 여기까지 오는 동안 캐리어를 끌기에 단 한 번도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장애인들도 다니기에 편한 동네일 것 같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와 신주쿠 교엔으로 향하는 길에 하나조노 신사에 들렸다. 처음 보는 일본의 신사. 화려한 일본식 지붕과 처마 - 붉은색과 금색의 조화. 봉황과 여우. 사람들이 기도 드리는 곳에 가서 나도 동전을 던지고, 굵은 밧줄을 흔들어 방울을 울린 뒤 합장을 했다. 박수는 어느 타이밍에 치는 건지 깜빡해서 치지 않았다. 기왕 놀러왔으니 복 좀 주십사. 그리고 신주쿠 교엔으로 이동. 가는 길에 어느 회사원에게 길을 물어보았으나, 영어를 전혀 모르는 분이어서 지도를 함께 보면서도 소통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모르는 줄 알고 인사 나눈 뒤 조금 더 걸어가서 어느 건널목 앞에 서있었는데, 아까 그 회사원이 다시 우리를 찾아와서는 자기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저 사람들이 잘 모를테니 내 휴대폰으로 직접 보고 다시 그 사람들을 찾아와 알려준다? 정말 감사한 장면이었다. 

 신주쿠 교엔은 우리가 입구를 잘못 찾은 줄 알고 교엔 근처를 따라 다른 입구가 또 있나 살펴보며 쭉 걸었는데, 새로 발견한 커다란 입구에서 실상을 알게 되었다. 오후 4시까지만 여는 공원이었고 - 한국처럼 여기저기 뻥 뚫리게 만들고서 아무나 막 들어오게 하는 게 아니라 - 철저하게 담을 쳐서 입장료를 받고 관리하는 곳이었다. 관광지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 건 봤지만, 도심 속 공원에 이렇게 담을 치고 시간 제한을 두며 입장료를 받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아쉽게 4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일본의 방식대로 철저하게 운영하는 곳이니 - 분명히 아름답게 잘 보존된 곳이겠거니. 바깥에서 담 너머로 봐도 큰 나무들이 즐비해 보였다.

 갈곳을 잃은 뒤 다음 행선지로 정한 곳은 오모이데요코초. 신주쿠 역 옆의 유명한 꼬치 골목인데, 이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신주쿠 교엔 입구에서 오모이데요코초까지 천천히 도쿄 시내 풍경을 감상하며 걸었다. 빌딩 공사 현장의 덮개가 아주 촘촘하게, 철저하게 둘러쳐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너덜너덜한 거적때기 사이사이에 흉물스러운 철봉 튀어나오게 해놓고선 할일 다 했다고 해버리는데 - 확실히 철저한 나라구나 -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걸으면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이세탄 백화점도 구경했다. 육중한 건물 자체가 벌써 문화재급이었다. 그리고 쇼윈도에 걸려있는 화려한 유카타(솔직히 기모노와의 엄밀한 차이점을 잘 모른다). 길거리를 휙 둘러보았다. 고풍스런 유럽식 건물의 쇼윈도에 걸린 유카타 처럼 - 얼핏 써놓고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 유럽식 복장을 한 사람과 유카타를 입은 사람, 정장과 셔츠를 입은 회사원들, 반바지와 나시를 입은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거대한 상권 안에서 서로 어울리고 있었다. 확실히 한국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근처의 서점도 잠시 구경. 넓지 않은 공간 안에 빽빽한 책들, 그리고 빽빽한 사람들. 언젠가 일본의 잡지 시장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그래도 잡지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 보였다. 자그마한 문고본 책도 많이 보였고. 서점에서 나오는 길에 그림을 파는 상인이 보였는데, 우연히 둘러보다 그림 하나에 꽂혀버렸다. 어느시대인지 모를 옛날의 일본 풍경 속에 화가로 보이는 사람이 붓을 들고 엎드려 있었는데, 그가 붓으로 그리려는 종이는 360도로 둘러쳐진 원통형 종이였다. 일단 360도 나무 뼈대에 롤러코스터가 한바퀴 돌아가듯 원통형으로 종이를 둘러친 것 자체가 너무 기발했고, 거기에 붓을 들고 이제 막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려는 사람 - 그림 속의 저 사람은 저 순간에 얼마나 행복했을까(표정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 창작의 무궁무진함. 너무너무 갖고 싶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액자까지 해서 3만4천엔. 부담스러운 가격에, 한국까지 잘 들고올 자신도 없었기에 포기했다.

 다시 일본 사람들도 길을 헤맨다는 신주쿠역 지하도로 들어가 한참동안 우왕좌왕하다가 B14번 출구로 나와 오모이데요코초에 도착했다. 확실히 철길 옆으로 자그마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꼬치 굽는 냄새가 멀리까지 진동하고 있었다. 한바퀴 쭉 둘러보니 외국인을 위한 메뉴판을 구비해둔 곳도 있었고, 철저하게 일본인 위주로 운영중인 곳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한국어 메뉴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동남아 출신 점원이 영어를 잘 해서 의사소통이 아주 편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꼬치를 맛보면서 사케(니혼슈)와 맥주를 곁들였는데, 별미가 많았다. 한국 사람들이 돼지나 소 잡으면 이것저것 안 버리고 다 먹는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못 먹어본 자궁이나 질 같은 부위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 여행 온 기분 내며 하나씩 맛보았다. 네이버 어느 블로그에서 봤을 때는 오모이데요코초가 좁고, 비싸서 별로라는 느낌이었는데 - 직접 와보니 딴판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주 만족스럽게 먹고 마시며 즐겼고 - 남들 이야기 보다는 우리가 직접 판단하자고 합을 맞추었다. 우리 부부도 부부지만, 가족들과 친지들을 위해서도 건배했다.

 이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신주쿠 오락실에서 철권도 한 판 했고,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맛있는 것들도 많이 샀다. 오락실 철권 레버가 한국의 레버와 너무 달라서 - 일본의 사탕 레버에 적응하지 못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정말로 레버 탓이었다). 호텔 TV로 아니메 스테이션을 시청하다가 다음날을 위해 취침.

posted by 생마
2017. 9. 4. 14:56 일지/해외여행

 여태껏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발버둥치며 살아가다 보니 왕복 비행기 삯과 체류비, 무엇보다도 휴가를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갖추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래도 아웅다웅 살다 보니 주변에서 이런저런 도움도 받게 되고, 마침 내가 일을 쉬고 있어 시간도 넉넉하기에 일본으로 여행 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물가가 아주 싼 동남아시아에 갈 생각이었지만, 동사무소에 비치된 팜플렛에는 여전히 지카바이러스 경고가 있었기에 - 가까우면서도 즐길 거리가 많다고 평가 받는 일본을 택했다. 한국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일제 침략에 대한 원망은 잠시 제쳐두고, 그저 평범한 외국인으로서 일본을 보고 싶었다. 딱히 특별한 내용들을 기록한 것은 아니며 - 이미 일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보기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 그저 스쳐가는 여행자로서 느낀 수박 겉핥기식 인상 평가가 주된 내용일 것 같다.

 처음에는 오사카, 교토, 나고야 등을 거쳐 도쿄로 들어가는 10일 정도의 일정을 짰었는데, 해외여행 초보가 캐리어를 끌고 이곳저곳 교통편이나 숙박편을 능숙하게 컨트롤하기 힘들 수 있겠다는 우려로 도쿄 위주의 1주일 일정을 짜게 되었다. 그리고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보다는 부부 입장에서 보다 안전하면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호텔(저가 호텔)을 선택하기로 했다. 출발 전날까지 이런저런 세부 일정을 짜맞추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도쿄 관광 공식 사이트가 워낙에 잘 만들어져 있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구글 지도와 글로벌 숙박 앱들(트립어드바이저 등등) 또한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7시 2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끊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 첫째로 도착지가 나리타인지 하네다인지 헷갈리지 말았어야 했고, 둘째로 각종 출국 수속을 감안한다면 7시 15분은 꽤 이른 시간이라는 점을 알았어야 했다. 하네다는 도쿄 안에 있어 곧바로 도쿄 여행이 가능하지만, 나리타의 경우에는 도쿄에서 동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곳이라 도쿄까지 시간과 돈이 추가로 들어간다. 그리고 공항에서 비행기 표 발권 및 수하물 맡기기, 보안 검색 등의 시간을 감안한다면 넉넉잡아 한 시간 반 또는 두 시간 정도 일찍 공항에 도착해 있는 것이 좋은데 - 지하철 첫 차나 공항 리무진 첫 차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 보여 그냥 지하철 막차를 타고 미리 공항에 가 쉬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지하철 막차를 타고 막상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보니 예상 달리 각 항공사의 발권은 정해진 시간에만 진행되는 것이었다. 세계 각국의 항공사와 승객들이 24시간 북적이는 곳이 아니었다. 노숙자 처럼 적당한 벤치에 몸을 뉘여 애매하게 잠을 청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 와이프와 다짐했다. 다음번엔 편한 시간대로 선택하자고. 출발하기도 전에 공항에서 이미 피로가 쌓인 상태라 비행기 안에서는 거의 기절하듯 잠들었다. 왼쪽 창가 좌석에는 와이프가, 오른쪽 좌석에는 나보다 덩치가 큰 청년 하나가 앉았는데 - 제주도에 갈 때는 몰랐지만, 2시간 넘게 걸리는 나리타행 비행기를 타보니 저가항공이 왜 불편한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가항공으로 4시간, 8시간씩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참는 걸까?

 거의 도착 즈음 스르르 눈이 떠졌고, 창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창밖에는 꼭 자로 잰 듯한 논밭 구획들이 마치 바둑판 처럼, 그리고 농촌 가옥들이 바둑판 위의 포석처럼 고르게 퍼져 있었다. 적잖이 놀라운 풍경이었다. 이렇게까지 칼 같게 똑바로 나눈 논밭 구획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듣던대로 철저한 나라라는 인상이 첫인상으로 심어졌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경으로 다듬어진 녹지가 곳곳에 잘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철저하게 갈라놓은 논밭과 가옥들, 시가지 주변으로 여유와 멋을 부린 녹지와 자연 그대로의 산림이 조화로워 보였다.

 일본어 공부를 제대로 해두지 않았던 터라 나리타 공항에 내린 뒤부터는 영어를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입국 전 각종 정보 확인과 지문 날인의 절차도 있었는데, 치안 관리상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한국도 지문을 활용하니까). 다행히 세계 곳곳에서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나라여서 영어로 안내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고, 구글 지도와 스프레스시트가 본격적인 길안내 및 일정의 훌륭한 매니저가 되어주었다. 나리타 익스프레스라는, 도쿄와 나리타 공항을 직통으로 이어주는 기차를 타고 일단 도쿄 역으로 이동한 후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했다.

 도쿄 역에서 나리타 익스프레스 하차 후 야마노테 선(線)으로 신바시 역까지 이동했다. 곳곳에 어느 회사의 무슨 선을 타려면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가 표시가 잘 되어 있어 길 찾기는 쉬운 편이었다. 특히 각각의 노선마다 특유의 색깔과 알파벳 첫 글자가 상징으로 되어있어 인지하기 편했다. 신바시 역의 '신'이 영어로는 'Shim'으로 되어있는 듯했는데, 아무래도 'Shim'과 'Shin'의 중간 정도 발음인 듯했다. 신바시 역 도착 후에는 와이프가 가장 먼저 찜해두었던 오다이바에 가기 위해 오다이바를 한 바퀴 훑어주는 모노레일인 유리카모메로 환승했다. 널리 알려진대로 일본은 지상철과 지하철이 나뉘어있고, 각각의 노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이 달라 환승할 때에도 - 같은 구역임에도 해당 회사의 역 바깥으로 나왔다가 다른 회사의 역으로 들어가는 일이 꽤 잦다고 한다. 유리카모메로 환승할 때에도 일단 역 바깥으로 나왔다가 다시 바로 옆의 역으로 들어갔는데,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승강장에 스크린 도어가 없는 곳도 있고, IC 카드를 찍지 않는 사람들은 종이로 된 표를 사용하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한국은 무조건 IC 카드를 사용하며 스크린 도어가 없는 역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유리카모메를 타며 본 바깥 풍경은 상당히 낯설었다. 인천 같은 항구의 느낌이면서도, 고층 빌딩이 촘촘하게 들어서있었고 - 빌딩 외벽을 장식하는 식물이라던가, 빌딩 근처에 조경으로 다듬어진 녹지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점 등은 역시나 한국에서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와이프는 기분 탓이라고 했지만, 빌딩 디자인들도 미려했다. 시간대가 점심 때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남자들이나 여자들 모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어느덧 예약해둔 호텔 근처 역에 도착해 역 바깥으로 나오니 도쿄의 무더운 날씨가 나를 반겨왔다. 햇빛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마치 한국의 강릉이나 속초 해변을 걷는 듯한 느낌. 남쪽 나라라고 하기에는 적도와 거리가 좀 있지만, 그래도 한국 보다는 확실히 남쪽에 있는 일본이 아닌가. 남쪽 나라의 강렬한 햇빛은 정말 대단했다. 땀을 닦으며 도로를 따라 걸었는데, 바닷바람과 짠내가 은근히 기분을 돋워주었다. 일본의 수도이자 항구도시이니 엄청난 물류가 몰려드는 게 당연 - 대형 화물차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으나 자동차 자체가 많지 않아 도로 사정은 여유로운 편이었다. 도쿄 빅사이트라는 멋진 건물과 국제전시장 사이로 양복을 입은 회사원 부대가 우르르 이동하고 있는 풍경.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구 대이동이었다. 길을 찾던 도중 눈에 띈 어느 병원에 들어가 호텔 위치를 물었고(곳곳의 상점 안에는 엄청난 에어컨 냉기가 몰아치고 있었다 - 이렇게 더운 나라이니 당연한 것인지도), 근처 편의점에서 일본 담배를 좀 사보려고 했는데 - 켄트 멘솔에도 종류가 많아 편의점 직원과 손짓발짓을 좀 했다. 일본 담배는 뭐가 맛있는지 잘 모르니 일단 아무거나 고르고 봐야지.

 호텔 체크인. 캐리어를 끌고 다가간 뒤 잠시 머뭇머뭇. 체크인이냐고 묻길래 영어로 예약을 해두었다 답했더니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여권을 보여주면 글로벌 숙박 앱으로 예약한 내용과 대조해 보는 듯했다. 방에 들어가 제일 먼저 했던 행동은 에어컨 버튼을 찾아 누르는 일이었다. 방 안은 상당히 습했다. 이후 TV를 켜고 화장실 탐색. 화장실이 생각보다 좁고, 구성이 오밀조밀했다. 일본의 주택들이 생각보다 좁고, 오밀조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 일본의 인테리어 문화 자체가 좌우 보다는 위아래 공간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문화인 듯 - 이미 좁은 고시원에 살던 시절 일본에서 건너온 다이소의 여러 제품을 통해 경험해본 바가 있다(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호텔도 그런 견지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았다.

 짐을 대충 정리해 두고, 잠시간 몸을 추스른 후 호텔 밖으로 나와 오다이바 일정을 마저 소화하기 시작했다. 대관람차 쪽으로 다리를 건너면서 건널목에 도착했는데, 이쪽은 건널 예정인 사람이 버튼을 눌러야만 파란불로 바뀌는 구조였다. 확실히 대량의 물류가 오가는 곳이라 교통의 흐름에 신경을 쓴 듯했다(한국에도 간혹 이런 곳이 있다). 걷다 보니 'Zepp Tokyo'라고 쓰여있는 곳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몇 천 명 단위). 처음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버스 대기중인 줄 알았으나, 외모나 언어를 보니 확실히 일본 사람들이었다. 궁금증을 뒤로 하고 잠시 더위도 피할 겸 비너스포트를 둘러보았다. 마치 한국의 롯데월드에 입장한 듯, 건물 바깥에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유럽식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아기자기한 공간,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입점해 있었다. 상점가를 구경하면서 중앙의 분수대와 입구쪽 무대에서 기념 사진도 촬영했다.

 비너스 포트에서 나와 목적지인 오오에도 온천에 찾아가기 위해 구글 지도를 켜봤다. 가만 보니 우리가 탑승했던 유리카모메의 레일을 그대로 따라가면 될 것 같았다. 고층 빌딩과 커다란 화물차가 줄지어 지나다니는 풍경, 여기저기 처음보는 나무, 처음보는 새, 몸통이 짧고 동글동글한 개미가 보였다. 확실히 다른 나라에 왔다는 느낌. 건널목 신호등의 멜로디 템포마저 느리고 여유로웠다. 텔레콤센터 역 앞의 폭포 광장도 포인트였다.

 드디어 도착한 오오에도 온천. 정확한 명칭은 '오오에도 온센 모노가타리'. 에도시대의 민속 거리를 재현한 곳 - 입장할 때 대여한 유카타를 무조건 입어야 하는 곳이라 확실히 분위기가 색달랐다. 입장시 타투(문신) 했냐고 물어보던데, 타투를 새긴 사람은 입장이 불가능한 듯했다. 유카타는 허리띠를 매야 하는데, 허리띠가 워낙 크고 길어 매느라 엄청 고생했다. 이왕이면 똑부러지게 잘 매고 싶은 게 인지상정.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결국에는 손으로 유카타를 여미고 나와 와이프에게 부탁했다(허리띠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이곳은 한국에 흔히 있는 목욕탕/찜질방과 다르게 유카타를 입고 일단 공용 공간으로 나온 뒤에 다시 각각 남녀로 찢어지는 목욕탕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와이프와 시간 약속을 한 후 온천욕을 즐기러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목욕탕에서는 기분도 낼 겸 나무로 된 바가지에 따뜻한 물을 연거푸 받아 몸에 부으며 씻었다. 몸을 담그는 탕이 실내에 서너군데 있었는데, 모두 온도가 똑같은 듯 - 모처럼 노천 온천을 즐기러 온 것이니 만큼 노천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 물이 진짜로 지하에서 끌어올린 온천 물인지 아닌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오다이바의 시원한 바닷바람과 잘 꾸며진 조경 안에서 즐기는 반신욕은 확실히 기분 좋았다. 워낙에 피로가 쌓여있었던 터라 반신욕의 효과가 더욱 좋았던 것 같다. 그만 나도 모르게 와이프와 약속한 시간을 15분 정도 넘긴 상태로 다시 에도시대 분위기의 공용 공간으로 나왔다.

 피곤하고 덥지만, 이국적인 풍경에 점점 기분이 달아오르는 시간. 확실히 만화책 등에서 봤던 - 유카타를 입고 즐기는 거리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나서 와이프와 함께 아사히 수퍼드라이 엑스트라 콜드라는 걸 한 잔 시켜서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한 모금씩 들이킨 뒤 둘이 동시에 감탄사를 크게 내뱉었다. 와! 이게 대체 뭐지? 한국에 있을 때 다니엘 헤니가 찍은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 CF를 봤을 때는 별 감흥 없이 무슨 설국열차 흉내내기인가 하고 말았는데, 꽁꽁 얼은 듯한 스테인리스 잔에 엄청나게 차가운 맥주가 담겨져 나오는 아사히의 감동. 여세를 몰아 나는 츠케멘, 와이프는 라멘을 주문했다. 따뜻하면서 시원한(한국식 표현으로 시원한) 간장 국물에 버섯이 엄청 푸짐하게 들어있었고, 따로 담겨져 나온 면을 넣어 휘저어 먹는 것이었다. 맛있게 폭풍흡입했다. 간장 종지에 나온 참치는 젓가락으로 떠먹었다(나중에 알았지만 다데기였다). 하지만 후식으로 시킨 빙수는 의외로 맛이 없었다. 그냥 갈아놓은 얼음 위에 시럽만 덜렁 뿌려놓은 것이어서 실망. 세계 각국에서 놀러온 관광객들도 이것저것 열심히 즐기느라 바빠 보였다.

 오오에도 온천을 나와 오다이바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 팔레트 타운의 대관람차로 향했다. 그리고 대관람차로 향하는 길에 'Zepp Tokyo'라는 곳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낮에 봤던 인파가 왜 줄을 섰던 것인지 깨달았다. SKE48이라는 걸그룹이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는 날이었던 모양. 팔레트 타운의 대관람차는 엄청나게 큰 규모였고, 우리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시스루에 탑승하기로 결정. 그런데 대관람차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높이가 워낙 높았던 탓에 와이프가 무서움을 호소해서(평소에 땀도 잘 안 흘리는 사람이 손바닥이 축축해질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큰 소리는 내지 않고 조심조심 야경만 구경했다 - 원래는 대관람차 안에서 뽀뽀도 하고 이것저것 하기로 했었는데. 어쨌든 오다이바의 야경은 소문대로 볼만했다. 레인보우 브릿지도 멋있었고, 쌍둥이 왕관 빌딩도 멋있었다.

 대관람차에서 내린 후 바로 옆에 붙은 자동차 전시장을 잠깐 둘러본 뒤 대관람차에서 내려다 봤던 꿈의 대교(멋진 불빛들이 줄지어선)를 가로질러 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던 애니버서리 도쿄의 아름다운 유럽식 건축과 야경도 좋은 사진 촬영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아무래도 웨딩샵들이 모여있는 곳인 듯했는데, 정말 아름답게 꾸며놓은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들어서기 전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사봤다. 한국의 1.5리터 개념은 없고, 1리터짜리가 그중에서 큰 용량인 듯했다. 

 호텔 TV를 틀어놓고 첫날을 정리해 보았다. 사람사는 곳 어디나 똑같다는 말처럼 일본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 잔디를 밟고 사잇길을 만들어 다니거나, 빨간불임에도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간혹 보였지만 - 길바닥은 정말로 깨끗했다. 물론 모든 곳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거리를 관리하고 있고 - 그 전에 사람들 자체가 쓰레기를 아무곳에나 잘 버리지 않는 느낌. 가장 놀라웠던 점은 길바닥에 침을 뱉는 사람, 뱉어져 있는 침 자국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 쾌적함은 직접 느껴보기 전엔 전혀 몰랐던 것이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어쩌다 길바닥에 침을 퉤퉤 뱉는 습관을 가지게 된 걸까? 일본에 오기 전 공부했던 후쿠자와 유키치 - 만 엔권의 주인공을 합리주의자이자 사적인 영역에서의 약진을 꿈꾼 개인주의자로 요약해 볼 수 있다면, 첫 날 만난 일본의 지상철/지하철에서 확실히 그의 사상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의 지상철/지하철 시스템이 한국에 비해 비싸고, 갈아타기 번거롭고, 내부가 좁지만 - 사회 기저에 깔려있을 이러한 사상적 토대를 통해 얻는 장점들 또한 분명히 있으리라.

posted by 생마